도처에 도넘은 '권력 갑질' 만연… 사회 차별과 불평등'갈등의 골'국회의원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비난 봇물청년 실업 최악인 상황에서 국민적 공분 일어다양하고 교묘한 '갑질'… 피해자 울분우회적 간접 갑질 늘어… 보좌관 갑질도 횡행

왼쪽부터 윤후덕 의원, 김태원 의원
국회의원이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에 사실상 압력을 넣은 인사 청탁 의혹이 제기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청년 실업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녀들의 취업 특혜에 힘을 썼다는 '슈퍼 갑(甲)질' 때문이다.

취업 청탁이 국회에 만연해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권력의 갑질 행태가 도를 넘고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 청탁 문자를 주고받아 물의를 빚는가 하면 지역구 기업이나 산하기관에 취업은 물론, 협찬 등을 강요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권력의 갑질은 국회의원에 한하지 않고 지방의회 의원, 보좌관들까지 마구잡이로 행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은 차별과 불평등의 모순된 구조에서 파생한 것으로 권력(힘)의 불균형에 기반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민낯이기도 한'권력의 갑질'을 짚어봤다.

국회의원 지위 활용 취업에 입김 의혹

왼쪽부터 문희상 의원, 김태호 의원, 윤명희 의원
여야 국회의원이 로스쿨 출신 자녀가 취업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경기도 파주시갑)이 지역구에 있는 대기업에 딸의 취업을 청탁한 사실이 불거진 가운데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경기 고양시 덕양구을)의 아들 취업청탁 의혹이 터진 것이다.

윤후덕 의원은 2013년 9월 지역구의 LG디스플레이가 경력 변호사를 채용하는 과정에 회사 대표에게 전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 의원은 "부탁한 것은 아니고 딸 아이가 지원했다는 사실을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대표에게 알렸다"면서 "(딸은) 학부에서 올 A를 맞을 정도로 우수하다"고 말했다. 취업 청탁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도 "특혜는 없었다. 변호사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입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는 당초 공정거래 분야 경력 변호사 1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윤 의원 딸은 채용 공고를 내지 않은 법무팀에 합격해 결국 2명이 채용됐다. LG디스플레이가 없던 자리까지 만들어 윤 의원의 딸을 채용했고, 윤 의원의 전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태원 의원의 아들은 로스쿨 수료 후 변호사 자격증을 딴 뒤 지방 고등법원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2013년 11월 정부법무공단에 채용됐다. 이 과정에 대해 청년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한 법조인 572명은 17일 특혜 의혹이 있다며 정부법무공단에 김 의원 아들의 채용 당시의 서류심사 및 면접평가 자료 등을 요구하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이들은 정부법무공단이 2013년 9월 채용 공고를 낼 때 지원자격으로 "법조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라고 공지했다가 불과 두 달 만에 "2010년 1월 1일부터 2012년 3월 1일 사이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해 법률 사무에 종사한 법조경력자"로 변경한 것은 김 의원 아들을 위한 특혜 조치라는 입장이다. 또한 업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을 제쳐놓고, 재판연구원 근무기간이 끝나지 않은 김씨를 채용해 100일이나 지나서야 근무를 시작하도록 한 것도 특혜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김씨의 아버지인 김태원 의원이 당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이었던 손범규 전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며 김씨의 취업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만약에 책임질 일이 있으면 정치 생명을 걸겠다"며강력하게 부인했다.

이들에 앞서 야당 중진인 5선의 문희상 새정치연합 의원은 친인척 취업 알선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2004년 대한항공 회장에게 처남의 취업을 부탁하고 급여 명목으로 8억여 원을 거저 받게 해줬다는 혐의다.

문 의원이 취업 청탁을 했다는 '슈퍼 갑질' 은 지난해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공기 강제 회항'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상황에서 알려졌다. 당시 문 의원의 처남인 김모씨가 문 의원과 누나 부부를 상대로 낸 12억여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서다.

재판부는 "문 의원이 대한항공의 회장을 통해 미국에 거주하던 처남의 취업을 부탁했고 고교 선후배 사이인 대한항공 회장은 미국의 브리지 웨어하우스 유한회사 대표에게 다시 취업을 부탁했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2012년까지 8년 동안 한진그룹 관련사로 보이는 기업에서 맡은 직무나 일이 없는 데도 급여 명목의 돈 8억여 원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고 이에 한 보수단체가 문 의원을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 수사에 따라 청탁 당시 현직 의원 신분이던 문 의원에게는 제3자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문자메시지'로 취업 자리 알선?

국회의원의 '갑질'은 '문자메시지'로 행해진 의혹도 있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은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문제를 두고 진통을 겪었던 5월 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지인과 "이력서 한 장 보내놨소" "오케이, 받았어요. 고문 월 300만 원 맞나요? 6월부터요" "감사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취업 청탁 의혹에 대해 김 최고위원은 당시 "지인이 어려워 도와주는 과정이다. 일자리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새누리당 의원)은 내정 전인 2013년 5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 모 비서관으로부터 "의원님, 공OO 회장 아드님 취업 관련 부탁 연락 왔음. 국방과학연구소 의견 주십시오" "조만간 직원채용공고가 추가로 날 수 있어 이 부분은 따로 확인하여 보고드리겠음" "5월 6일 이후추가 공고 뜨고 6~7일 경에 지원 가능여부 확인됩니다" 등 국방과학연구소의 취업 일정과 국회 국방위원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6통의 문자를 받았다.

정황상 지역구의 기업체 회장으로부터 '자녀 취업청탁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김 장관의 비서관은 "지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드리는 정도일 뿐"이라면서 "민원이 들어오면 보고를 드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2013년 6월 13일 본회의에서 민주당(새정치연합) 오제세 의원은 이기용 충북교육감에게 청탁 정황의 문자를 보내는 사진이 찍혀 곤욕을 치렀다. 오 의원은 누군가로부터 "충북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전문상담사 채용에 힘을 써달라"는 문자를 받고, 이 교육감에게 "항상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름 아니라…"라며 자신이 받은 문자 내용을 함께 보냈다. 이에 대해 오 의원 측은 "경솔한 일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의원들의 '문자 메시지'를 통한 취업 청탁 의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정치권에 만연한 '갑질 청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도 넘은, 교묘한 '권력 갑질'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은 지난 3월 자신이 대표로 있던 회사의 쌀 제품에 자기 이름을 사용해 구설수에 올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인 윤 의원은 상임위를 앞세워 산하 기관에 '갑질'을 한 셈이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마트 등 유통업체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국회의원의 이름이 박힌 상품을 매장의 나쁜 자리에 배치할 수 있겠느냐"고 반발했다.

새정치연합 유대운 의원은 지난 5월 술을 마신 뒤 경찰서 지구대에 찾아가 "지역구민 딸을 괴롭힌 바바리맨을 찾아내라"며 직접 수사를 지휘하는 등 소동을 벌였다. 경찰을 담당하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인 유 의원의 행위에 대해 '갑(甲)의 횡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회의원들의 '갑질'은 자신들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구에선 '황제'와 같이 군림하려 든다. 특히 지자체와 지방의원, 보좌진 등에 대한 갑질은 노골적이다.

경기도의 한 지자체장은 "지자체장 공천 과정에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의원의 인사 청탁이나 지역 개발 민원을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방의원들은 "공천을 받으려면 의원의 눈도장을 받아야 하기에 결혼식, 출판기념회 등을 반드시 챙기고, 의원이 상(喪)을 당하면 장례식장에서 온갖 심부름을 다한다"고 털어놨다.

국회의원 지역구의 기업들도 종종 '권력 갑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수도권에 공장을 둔 한 기업 대표는 "의원이 민원을 부탁하면 안들어 줄 수 없어 이런저런 곳에 협찬을 한다"며 "의원이 공장 관련 규제를 담당하는 국회 상임위 소속이라 더욱 신경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국회의원들은 뇌물 대신 지역구 행사 협찬, 인사 청탁 같은 변형된 '갑질'을 하고 있다"며 "이를 거절할 경우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될 수도 있어 의원들의 요구를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 보좌관도 '갑질'

'권력 갑질'은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보좌관들에 의해 행해지기도 한다. 일부 보좌관들은실무를 담당하면서 상임위 산하기관에 여러 '갑질'을 한다. 골프 접대는 흔한 일이고 친인척 기업에 하청을 요구하거나 취업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를 담당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골프는 일도 아니다. 친인척 업체에게 일감을 마련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보좌관들의 최대 무기는 국정감사 때 총수를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를 수 있다고 압박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을 배경으로 '갑질'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의 비서관은 자신의 아버지가 재배한 농산물을 국회 피감 기관에 대량 판매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정 의원의 5급 비서관 유모씨는 지난 7월 아버지가 전북 완주에서 재배한 감자 100상자(20kg들이)를 지난달 말 한국거래소 산하 국민행복재단에 상자당 3만5,000원에 팔았다. 한국거래소는 정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피감 기관이다. 유씨는 시중 은행 등에도 아버지가 재배한 감자 300여 상자를 판매했다.

유씨의 행위를 두고 "사실상의 갑을 관계를 이용한 일탈 행위"라는 비난이 일면서 결국 유씨는 사퇴했다.

최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전 보좌관이 동덕여대에 임용된 것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 자격 미달자가 황 교육부 장관을 배경으로 '갑'의 특혜를 누렸다는 것이다.

18일 교육부와 동덕여대 관계자에 따르면 동덕여대 학교법인인 동덕여학단은 지난달 황 장관의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박모 씨(56)를 교양학부 다문화정책 담당 전임교수로 임용했다. 박씨는 2000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약 6년간 황 장관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학교내에서는 교수 임용에 지원한 5명 가운데 박 씨는 다른 지원자에 비해 학력이나 교육분야 경력이 뒤처지는 것으로 전해져 현직 교육부 장관의 프리미엄으로 임용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박씨는 교수 임용에서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사이버 대학인 버나딘 종교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반면 나머지 지원자들은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일부는 현직 강사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장관은 박씨가 교수에 임용된 것을 알지 못했다고 했고 박씨 또한 황 장관 모르게 교수 지원을 했다고 밝혔지만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자격이 부족한 박씨의 임용에 대해 '갑질'의혹이 가시질 않고 있다.



이홍우 기자 lh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