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왼쪽)이 7월 16일 청와대를 방문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인사하고 나서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朴-金' 차기 대권 '동상이몽'…'반기문 대망론', 金ㆍ文 대권행보에 '변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논란 박근혜-김무성 사실상 '결별' 수순?
'현재권력-미래권력' 충돌…'박심(朴心)' 김무성 대권행보 걸림돌 될 수도
차기 대선 '반기문 대망론' 변수…문재인 대권행보 당 안팎 곳곳에 '암초'

여야 정치권이 추석 연휴기간 불쑥 등장한 낯설은 총선 공천 문제로 연일 험악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9월 28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실시하기로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안심번호제)가 발단이 됐다.

이후 새누리당은 친박-비박 간 공천 갈등이 폭발하고 청와대까지 나서면서 당청 대립이 더해져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당내 주류인 친노 그룹에 대해 비주류인 비노 그룹이 비판에 나서면서 계파 갈등이 한층 격화되는 모양새다.

이러한 여야 갈등과 힘겨루기의 근저에는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이 자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결국은 대권 싸움" "내년 총선은 대선 전초전" 등의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여야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에게 총선 공천은 차기 대선과 직결돼 있다. 이번 안심번호제 파문 이면에 두 잠룡의 대권 야망이 어른거리는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왼쪽)이 지난달 26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ㆍ문 대표의 대권 행보가 가속화되면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막이 오른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문재인 대표 간 얽히고설킨 '대권 파워게임'을 짚어봤다.

'안심번호제'는 金ㆍ文 대표의 묵계?

지난 추석연휴인 9월 28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부산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에 잠정 합의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과 청와대는 김 대표를 원색적으로 공격하면서 '철회'를 요구했다. 새정치연합 비주류인 비노(비노무현) 그룹도 문 대표를 비판하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김 대표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에 따라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안을 제안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표는 "새누리당이 주장해온 오픈프라이머리에 비해 동원경선의 폐단을 없애고 비용을 크게 줄이는, 훨씬 합리적인 국민공천제이기에 의견 접근을 이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와 문 대표가 안심번호제를 실시하기로 잠정 합의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근저에는 '동병상련'의 처지와 함께 대권에 대한 전략적 계산이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친박계와 청와대의 압박을 받고 있는 김 대표나 역시 당내 입지가 굳건하지 못한 문 대표 입장에서 총선 공천장의 주인을 좌우할 공천제도는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최대의 카드중 하나이다.

안심번호제는 결국 여론조사 형식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인지도나 조직력이 강한 현역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에게 유리하게 돼 현재 당 주류인 김 대표와 문 대표 측 인사들이 20대 국회에 대거 입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김 대표와 문 대표의 대권 가도에 큰 힘, 큰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는 반대로 새누리당 친박과 박 대통령에겐 위협적 요인이 되고, 새정치연합 비노 그룹은 고사당할 수도 있다.

박 대통령-김 대표 '루비콘 강' 건너

안심번호제에 대해 청와대까지 나서 비판하면서 김 대표와 청와대, 나아가 박 대통령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안심번호제의 5가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김 대표는 "오늘까지만 참겠다", "내가 있는 한 전략 공천은 없다"며 청와대ㆍ친박과의 일전을 불사할 뜻을 내비쳤다. 1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의원총회 추인이 보류되자 김 대표는 공식일정을 전면 보이콧하며 청와대와 친박에 맞섰다.

사실 안심번호제 이면에는 총선 공천에 청와대와 친박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김 대표의 의중도 반영됐다. 반면 친박과 청와대는 김 대표의 독주를 방치할 경우 새누리당이 급격히 '김무성당'으로 기울고 내년 총선 이후 '김무성대세론'이 형성될 경우 박 대통령의 위상이 추락할 것을 우려한다.

안심번호제를 둘러싼 친박과 청와대의 반격은 김 대표와 박 대통령의 대리전 측면이 있다.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지난달 15일 "차기 대선에 도전할 사람이 영남에도 있고, 충청에도 있다"며 김 대표를 겨냥한 것이나 홍문종 의원이 1일 '반기문 대망론'과 관련해 "우리 국민들이 좋아하는 그런 후보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에 이어 온 10여년 애증관계가 이번 안심번호제 파동으로 '결별'을 넘어 '적대적 관계'로 악화됐다고 분석한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지난 2005년 옛 한나라당 대표와 사무총장으로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이래 10여 년간 다가서다 멀어지고 다시 손을 잡는 일을 반복해왔다.

올해 들어서는 둘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가까워 보였다. 지난 4월 '성완종 파문' 과 6월 '유승민 사퇴' 파동 당시 김 대표는 상황을 수습하며 박 대통령을 도왔고 이후에는 박 대통령의 숙원 사업인 노동개혁을 위시한 4대 개혁 완수의 선봉에 서면서 "박 대통령의 성공이 정권 재창출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김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했던 오픈 프라이머리가 관계 악화의 불씨가 됐고 안심번호제로 회복이 불가능한 루비콘강을 건넌 모양새가 됐다.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정차권의 한 중진은 "박 대통령은 '신뢰'를 중시한다. 김 대표에 대해서는 과거 배신의 경험 때문에 정치적 필요에서 공조를 하는 정도인데 이번 일(안심번호제)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표가 입장을 바꾸더라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김 대표가 조심스럽게 (박 대통령과)관계 유지를 해왔는데 이제 '홀로서기'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든 김 대표를 공격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살아있는 권력의 힘'을 경계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한 정치평론가는 "차기 대권과 관련해 충돌할 수밖에 없는 현재권력(박 대통령)과 미래권력(김 대표)이 총선 공천 문제로 표면화된 것"이라며 "대권전(戰)이 본격화되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기문 변수' 김무성을 넘나?

안심번호제 논란으로 김무성 대표가 정치권의 중심 무대에 선 것과 달리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본인과 무관하게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유엔 방문에 즈음해 정치권에 등장한 '반기문 대망론'은 박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이 7차례나 자리를 함께 하면서 더욱 증폭됐다. 동시에 반 총장은 김 대표를 대신할 수 있는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안심번호제가 여야 유력 대선 주자인 김무성ㆍ문재인 대표의 합작품으로 알려지면서 장외 잠룡인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에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SBS가 9월 23∼24일 여론조사기관 TNS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1.1%가 반 총장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95% 신뢰 수준, 표본오차 3.1%p, 응답률 11.7%) 이어 김무성 대표(14.1%), 문재인 대표(11.2%), 박원순 서울시장(10.1%),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6.3%) 등 순으로 나타났다.

반 총장을 제외하고 진행한 조사에서는 김 대표가 17.3%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고, 문 대표(13.8%), 박 시장(13.2%), 안 의원(8.6%) 순이었다.

데일리한국이 창간 1주년 기념으로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7월 15~16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응답자의 36.4%가 '가장 적합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반 총장을 꼽았다. 이어 김무성 대표가 11.2%로 2위를 차지했고, 문재인 대표는 10.3%로 3위를 기록했다.

이렇듯 반 총장은 지난 1년 동안 차기 대선 주자와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반 총장이 실제 2017년 대선에 뛰어들 경우 엄청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망케 한다.

관건은 반 총장의 출마 의지 여부와 여권의 내부 구조다. 반 총장은 차기 대선은 물론 국내 정차와는 선을 긋고 있다. 그렇다고 '불출마'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적도 없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여건만 마련되면 출마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친박은 김 대표에 맞설 만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반기문 대안론'을 거론하며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런 배경에는 반 총장과 박 대통령의 우호적 관계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이 유엔에서 7차례나 회동하고 유엔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반 총장이 박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새마을운동을 극찬하고 박 대통령도 "감사하다"고 화답하면서 반 총장이 큰 뜻을 품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5월 반 총장의 개성방문 시도는 비록 무산됐지만 '반기문 대망론' 수순으로 해석돼 김 대표를 비롯한 다른 잠룡들을 긴장시켰다.

실제 반 총장의 방북은 박 대통령의 동의 없이는 결행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과 반 총장 간에 차기 대선과 관련해 모종의 '묵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당시 김 대표 측은 반 총장의 개성공단 행보보다 박 대통령의 생각(朴心)을 더욱 의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박심(朴心)'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사건도 있었다. 이른바 '유승민 사퇴' 파동으로 당청 관계가 삐걱이던 6월 25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당리당략에 매몰된 국회와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를 '배신의 정치'라고 일갈했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탈당ㆍ신당설'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가상 시나리오 정도로 치부했지만 박 대통령은 '결행' 의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제3 지대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인사들로 신당(또는 정치연대)을 만들고 차기 대선도 도모한다는 것으로 그럴 경우 신당의 차기 주자로 반 총장이 최우선으로 꼽혔다.

이는 실행 여부를 떠나 박 대통령이 차기 대선과 관련해 반 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인사와 친박 인사 중에 반 총장과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7월 당 대표가 된 뒤 대권 행보의 연장에서 '박심'을 얻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유승민 사퇴'파동에서 보여줬듯 김 대표는 비박과 측근들의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박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고 국정에 힘을 실어줬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김 대표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심번호제 논란은 박 대통령과 김 대표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반 총장이 부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 대표 입장에선 향후 대권 행보에서 박 대통령은 물론, 아직 실체가 없는 '반기문 대안(망)론'의 압박을 받는 형국이 됐다.

문재인 대권행보에 당 안팎 '암초' 많아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안심번호제 논란은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정치적 좌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 대표가 안심번호제 공동 입안자인데다 당 혁신위원회가 마련한 경선룰이 안심번호제 도입을 전제로 한 100% 국민참여 경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심번호제가 무산되면 문 대표는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고 대권 행보도 흔들릴 수 있다. 문 대표가 안심번호제를 놓고 청와대와 박 대통령을 향해 비판 수위를 높이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문 대표는 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안심번호제를 둘러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의 '충돌' 사태와 관련, "내년 총선에서 친박(친박근혜)의 패권을 유지하고 대통령의 호위무사들을 대거 당선시켜 퇴임 후를 보장받으려는 독재적 발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가 공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자율과 책임의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문 대표는 또 "국민참여경선을 법제화하겠다고 했던 박 대통령의 공약을 부정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박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러나 여권이 공천 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함에 따라 새정치연합의 경선룰에도 불똥이 튈 전망이다. 또한 정치개혁특위에 계류 중인 안심번호 도입법이 이번 사태의 파장으로 통과되지 않으면 새정치연합도 경선룰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안심번호제 합의에 대한 당내 반발도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비주류를 중심으로 친노 주류 진영에 유리한 제도가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차기 경쟁 주자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안심번호제에 대해 "국민이 이해못하는 제도라면 안 좋은 제도"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안심번호는 안심을 못하는 '불안심번호'"라며 "국민공천제는 찬성하지만 안심번호제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안심번호제가 잘되기를 바라지만, 완벽하게 검증하지 않으면 미흡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표 측은 안심번호제에 따른 당내 문제를 우려하지만 일각에선 여권 유력주자인 김무성 대표의 낙마를 경계했다. 한 친노 의원은 "김 대표의 낙마는 문 대표에게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차기 대선이 문 대표와 김 대표 간 대결로 간다면 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친박과 청와대가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선 인상"이라며 "김 대표를 대신해 반기문 총장이 출마할 경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문 대표는 안심번호제로 증폭된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여권의 공세에 대응하면서 대권행보를 이어가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당 안팎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야권이 분열된 가운데 내년 총선을 치룰 경우 여권에 크게 뒤질 수 있고 이는 문 대표의 대권 도전을 위협하게 된다. 또한 박근혜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야당의 역할도 문 대표의 몫인데 당내 문제로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문 대표가 당 안팎 암초들을 제거 내지 축소하고 대권행보에 속도를 내기가 만만치 않은형국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