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표 흐름 바뀌어…보수층, 기존 보수에 등 돌려

보수층, 전략적 선택…보수 후보 맹목적 지지 안해

보수층 향배 따라 대권 주인 달라질 수도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보수 적자’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4일 홍 후보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 자유한국당이 보수 우파의 본당이고 바른정당이 떨어져 나간 서자 정당”이라며 “그렇기에 지금 이뤄지는 양상은 좌파들의 대결은 되지 않고, 우파 후보 대 좌파 후보의 양자 대결 구도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까지 됐으니 탄핵 원인 행위는 끝이 났다. 끝났는데 다시 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대선판이란 대전제가 생겼으니 이제 함께 가자는 식으로 설득을 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 후보가 홍 후보의 뇌물 혐의 재판을 문제 삼으며 연대를 반대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기에 대꾸하지 않겠다. 그래도 우리가 큰 집이고 큰 형님인데 동생이 대든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 있냐”며 “오는 15일 대선 후보 등록 전까지 합당이나 단일화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했다.

지속적으로 연대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홍 후보와는 달리 유 후보 반응은 싸늘하다. 유 후보 측 지상욱 수석대변인은 “서자정당? 핏줄이 다른데 무슨 소리를 하시나. 국민은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이 서로 다르다는 DNA 검사소견서를 이미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바른정당은 합리적 보수혈통의 적자, 자유한국당은 수구적폐 혈통, 게다가 홍 후보는 불량 돌연변이 혈통이다. 홍 후보는 이제 그만 막말과 말장난으로 흥할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고 품격있게 사퇴하라. 형사피고인으로서 자숙하면서 재판 준비나 잘 하실 것을 촉구한다”고 비꼬았다.

유 후보도 직접 연대 불가를 주장했다. 그는 “홍 후보는 대선 출마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 단일화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자격이 없는 사람이 돼 버린다. 때문에 단일화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내가 분명하게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그 자체가 전혀 변한 게 없다. 홍 후보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런 정당, 그런 후보하고 무슨 단일화 이야기를 하겠느냐. 바른정당을 시작한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단일화는 있을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유 후보의 연대 불가 방침에도 홍 후보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친박 끌어안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홍 후보는 지난 4일 자유한국당 대구·경북 필승 결의대회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그것은 국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용서한다는 뜻”이라며 “TK(대구·경북)는 다시 뭉쳐서 5ㆍ9 홍준표 정부를 만드는 것이 박근혜를 살리는 길이다”고 역설했다. 이에 화답하듯 친박계도 홍 후보 돕기에 나서고 있다. 같은 행사장에 친박계 좌장격인 최경환 의원과 조원진 의원이 참석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최 의원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구속까지 됐는데 지금 친박, 비박이 어디 있나. 보수 적자 후보인 홍 후보의 당선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왔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최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결의대회 참석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튿날 열린 부산·경남 필승 결의대회에는 친박계 유기준·박대출 의원이 참석했다. 당초 자유한국당과의 연대 전제로 ‘친박 청산’을 내건 유 후보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두 후보 간의 치열한 ‘보수 적자’ 논쟁에도 보수층의 반응은 냉랭하다. 여론조사 상으로 두 후보의 전국 지지율 합이 15%가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MBN·매일경제·리얼미터의 4월 5일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9.2%, 유 후보는 3.0%에 그쳤다. ‘보수의 성지’ TK(대구·경북) 지지율은 홍 후보가 15.5%, 유 후보가 6.5%로 나왔지만 안철수(36.4%) 후보와 문재인 후보(32.2%)에 비하면 초라한 수치다.

4월 4~5일 실시한 중앙일보·중앙일보 조사연구팀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TK 지역에서 홍 후보 지지율은 15.2%, 유 후보는 3.4%로 홍 후보가 한 발 앞서 있지만 지난달 조사와 비교할 때 두 후보 모두 TK 지지율은 답보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조사에서 홍 후보는 15.8%, 유 후보는 5.8%였다. TK지역에서 비호감도가 높은 문재인 후보의 23.2% 지지율은 보수 후보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다.

TK 민심이 지금처럼 단결되지 않는 모습은 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이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는 대구에서 70.69%를 득표했고, 15·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70%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69.4%의 지지를 받았다.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대구에서 80.4%를 득표했다. 마음 기댈 곳 없는 TK 유권자도, 지지율 답보 상태의 홍준표, 유승민 후보도 혼란스러운 것이 현재 상황이다.

허인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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