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8ㆍ25 전당대회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지난달 26일 예비 경선을 통과한 이해찬ㆍ김진표ㆍ송영길 의원의 3파전으로 압축된 상태다. 세 후보는 모두 친문(親文, 친문재인)으로 꼽힌다. 작년 대선 이후 커지고 있는 민주당 내 친문의 힘이 다시한번 확인됐다.

이해찬ㆍ김진표ㆍ송영길 당권전쟁, 승자는?

이들은 3일 제주도에서 첫 합동연설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당심 잡기에 나섰다. 이해찬 후보는 ‘20년 집권론’을 제기하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이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노, 친문의 좌장으로,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역임한 풍부한 국정 경험과 당내 최다선(7선) 의원으로서의 정치적 경륜이 최대 강점이다.

그는 “더 이상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며 “이번 일이 저한테 주어진 마지막 역사적 소임이라 생각한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김진표 후보는 유능한 경제 정당 구축을 강조하며 ‘이제는 경제다’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는 “국민 삶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여당이 해야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라면서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20년 집권론’에 대해 “이 후보는 ‘우리 당이 가진 129석으로는 야당과의 협치가 불가피하다’고 했는데, 불필요한 논란이 야당과의 소통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고 지적했다.

86 운동권의 대표 주자인 송영길 후보는 “죽은 세포는 물러나고 새로운 세포가 생성돼야 조직이 건강하다"면서 세대교체론을 내세웠다. 그는 이ㆍ김 두 경쟁 후보에 대해 “이미 오래전 정치적 기회를 얻었던 분들 아니냐”며 “이제 후배가 기회를 얻을 때”라고 주장한다. “이 의원은 53세 국무총리 시절에 이미 정치적으로 정점을 찍었고, 김 의원도 62세 때 이미 당 원내대표를 지냈다”며 “내 나이가 국회의원 평균 나이에 가까운 56세다. 가운데에서 위 세대와 아래 세대를 잘 아우르겠다”며 ‘세대교체론’을 기치로 통합 당 대표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친문, 비문을 넘어 하나로 모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을 넘어 영ㆍ호남이 모이고 세대를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후보는 1일 부산에서 출정식을 갖고 부산 표심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송 후보의 세대교체론에 대해 이 후보는 “정책으로 하면 설득력이 있는데 정책 없이 그러니 적절치 않다”며 “당내 혁신과 개혁은 나이나 스타일이 아닌 철학과 정책으로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 후보 모두 집권당 대표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하지만 세 후보들간에는 뚜렷한 차별성과 장단점이 있다.

<민주당 당권 경쟁 후보들에 대한 스왓(SWOT) 분석>

이해찬 김진표 송영길
핵심 슬로건 ▦20년 집권론 ▦‘오직 문재인’ ▦ 유능한 경제정당 ▦ ‘이제는 경제다’ ▦세대교체론 ▦‘문으로 통하는 길’
장점(Strength) ▦친문 좌장 ▦7선의 정치 경륜 ▦정통 경제 관료 ▦풍부한 국정경험 ▦유일 호남 출신 ▦86 운동권 세대의 대표 주자
약점(Weakness) ▦올드 이미지 ▦종교인 과세 유예 입법 ▦옅은 친문 성향
기회(Opportunity) ▦적폐청산에 대한 강한 욕구 ▦경제악화에 대한 불안심리 고조 ▦당 통합에 대한 필요성 대두
위협(Threat) ▦강성 및 불통 이미지 ▦민주당 지지층에서의 약한 지지도 ▦운동권 독식에 대한 반감


민주당 일각에서는 “어차피 대표는 이해찬이다”는 뜻의 ‘어대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는 몇 가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 같다.

민주당 전당대회 좌우할 세가지 변수

첫째, 총 40%의 투표권을 갖고 있는 친문 성향이 강한 권리당원의 향배다. 이를 의식해 각 후보들은 친문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후보는 ‘강한 민주당, 오직 문재인, 결국 이해찬’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캐치프레이즈에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넣은 것은 이 후보가 유일하다.

김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 부총리와 교육 부총리를 역임했으며 문재인 정부 초반 국정기획위원장을 맡은 것을 강조한다.

송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고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을 지낸 것을 내세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의 ‘문(文)’과 자신의 이름 마지막 자 ‘길(吉)’을 합쳐 ‘문으로 가는 길을 열겠다’라는 선거 슬로건을 만들었다.

핵심인 이른바 양정철, 이호철, 전해철 등 3철의 의중이 권리당원 표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부산 출신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해찬 의원, 경기도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전해철 의원은 김진표 의원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은 중립을 지키고 있다.

세 후보 모두 친문(親文)으로 꼽히는 만큼 권리당원은 누가 문재인 대통령과 더 친분이 있고, 문 대통령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인가를 놓고 투표할 개연성이 크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김진표 후보가 다소 유리한 면이 있다. 이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정치적 경륜에서 훨씬 앞선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 때 이 후보는 국무총리직을 수행했다. 더구나, 이 후보는 2012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로 문재인 대통령 대선 후보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런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비중이 너무 큰 이 후보는 분명 버거운 존재다. 따라서 이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수평적 당청 관계가 이뤄질 것이고, 정치 상황에 따라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할 개연성이 있다. 무엇보다 2020년 총선 때 공천권을 무기로 친이 진영을 구축해 2022년 대선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 후보가 대표가 되면 상왕을 모시는 꼴이 될 수 있다.

김 후보와 송 후보는 반대로 문 대통령이 우월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최근 한국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국가 경제의 3대 축인 생산, 투자, 소비가 동반 부진에 빠지면서 경기 불황이 가시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달 31일에 발표한 6월 산업 활동 동향을 보면, 생산은 전달 대비 0.7% 줄어 석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설비투자는 전달 대비 5.9% 감소해 지난 3월 이후 4개월 연속 감소했다. 설비투자가 4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2000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소비 역시 만성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 기조는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임금(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면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이런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 수단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그런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현실에서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저소득층 일자리는 줄어들고, 물가는 상승하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이로 인해 내년도 최저 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최저임금 불복종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기업경기 실사지수(BSI)를 보면, 산업 업황 BSI는 75로 전달보다 5포인트 급락했다. BSI가 100이하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행의 7월 소비자심리지수(CCSI) 역시 4.5포인트 떨어져 1년 3개월 만에 최저치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 한국 갤럽 8월 1주(7월 31일∼8월 2일) 조사 결과,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7주 연속 하락하면서 연중 최저치인 60%를 기록했다. 지방선거 직후인 6월 2주(79%)때와 비교해 무려 19%p 하락한 것이다. 특히, 자영업자층(49%), 주부(51%), 저소득층(54%)에서 지지도가 가장 낮았다. 최저임금 인상 등 민생경제가 대통령 지지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대로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28%로 역대 최대였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38%)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부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기 침체 상황을 조기에 극복하지 못하면 대통령 지지도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50%대가 무너지고 40%대까지 떨어 질 수 있다. 투자 절벽, 생산 및 소비 부진, 경기 비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고도의 정치 학습 능력을 갖고 있는 권리당원들은 어느 후보가 이런 과제에 가장 적합한지를 판단해 투표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의식해 김 후보는 “소득주도성장 부작용을 없애려면 경제 당 대표가 혁신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이 권리당원에 어떻게 투영될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이다.

둘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논란이다. 김진표 후보가 지난 달 30일 같은 당 소속 이재명 경기 지사의 탈당을 요구했다. 이 지사는 ‘패륜’‘불륜에 이어 ‘조폭 연루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 후보는 이 지사를 향해 “각종 의혹에 휩싸인 이 지사는 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며 사실상 이 지사의 탈당을 촉구했다. 더욱이 최근 문 대통령 지지도와 민주당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 것도 이 지사 조폭연루설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갤럽 8월 1주 조사 결과, 민주당 지지도는 7주 연속 하락하면서 41%를 기록했다. 지난주와 비교하면 7%포인트 하락했고, 지방선거 직후인 6월 2주(56%)때와 비교해 15%포인트 하락했다.

한편, 이해찬 후보는 이재명 경기지사 문제가 “전당대회와는 관계가 없을 것”이라면서 당대표 선거에 파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후보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엔 이해찬-이재명 교감설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이 지시가 이 후보를 밀고, 이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이 지사를 대권 주자로 만든다는 그럴듯한 연대 시나리오가 대두되고 있다. 문제는 강성 친문 세력에서 이 지사에 대한 비토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송 후보도 이 지사의 탈당에 대해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당내 문제로 이전 투구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안 좋게 본다””면서 “수사를 하고 있으니까 지켜봐야 할 문제다. 철저히 규명하고 수사하고 그 이후에 원칙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맞다”며 선을 그었다. 여하튼 김 후보의 이재명 경기지사 탈당 요구는 ‘친문 세력 표심잡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해찬 후보가 앞서고 있다는 판단 아래 이 지사를 싫어하는 친문 세력의 표 결집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정두언 전 의원은 이를 ‘암수’라고 평가했다.

셋째, 드루킹 특검의 파장이다. 특검은 김경수 경남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고, 6일 소환하기로 했다. 특검은 김 지사 강제 수사를 위해 법원에 제출한 압수수색 영장에 인터넷 댓글 조작을 드루킹 김동원과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김 지사가 2006년 11월에 드루킹이 운영하는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를 방문해 댓글 조작 프로그램인 ‘킹그랩 시연회’에 참관한 다음 조작을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특검이 압수수색 영장에 선거법 위반 협의를 적용한 것이다. 그동안 경찰 조사에서는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했지만 김 지사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특검은 정반대의 상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지사가 출마가 예정이었던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해 말 선거를 도와달라며 드루킹에게 먼저 자리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선거를 돕도록 하고 금품을 주거나 약속을 한 경우 처벌을 받게 되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다. 특검은 김 지사와 드루킹은 단순한 지지자 사이가 아니라 재벌 개혁과 같은 정책에 대한 자문을 구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고 밝히고 있다.

법원은 처음에 압수수색 영장을 범죄 정황이 뚜렷하지 않다고 기각했는데 추후 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이 김 지사 주장보다는 특검팀의 수사 내용에 더 힘을 실어 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드루킹이 특검에 제출한 USB(이동 저장 장치)에 담긴 지료들이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 5월 “소설 같은 얘기”라면서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고, 자신이 먼저 총영사 자리를 제안했다는 것에 대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드루킹과 김 지사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향후 치열한 진실 공방이 펼쳐 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특검이 법원에 제출한 김 지사 구속 영장이 발부될 경우, 엄청난 정치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지사 구속은 현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된 만큼 향후 전당 대회는 ‘김경수 변수’에 의해 좌우될 수 밖에 없다.

정부 여당이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면 이해찬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도 있다. 이 후보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야당의 파상 공격을 막아내 당을 구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부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장이 기각되면 오히려 야당과 내실 있는 협치를 할 수 있는 다른 후보들에게 유리한 국면?조성될 지도 모른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7월 28일∼8월 1일) 결과, 이해찬 후보가 26.4%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김진표 후보(19.1%)와 송영길 후보(17.5%)가 이었다. 이 조사 결과로만 보면, ‘이해찬 대세론’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민주당 지지층에서 이 후보가 35.7%로, 송 후보(17.3%)와 김 후보(14.6%)보다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반 판세는 이 후보가 앞서고 있지만 민주당 지지층에서 누가 당 대표로 적합한지 판단을 보류한 유보층(모름/무응답)이 32.4%에 달하고 있어 속단은 금물이다. 아직 당대표 선거에 대한 관심이 낮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향후 판세 변화의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회찬 정치’의 의미와 정의당 지지율 상승

집권당이 당권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다른 정당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정의당이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노회찬 전 의원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지지도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 평생 노동 운동과 진보 운동을 펼쳤고 누구보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해왔던 노회찬 의원은 드루킹이 조직한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며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고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선택과 평가는 구분돼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노 전의원의 비극적인 선택에 대해 서는 동의할 수 없다. 노 전의원의 선택은 참으로 어립석고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30년 동안 외길 진보 정치를 펼치면서 보여준 따뜻하고 굽힐 줄 모르는 소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무한 책임을 지는 자세, 해학과 비유가 곁들인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언어로 대중과 깊이 소통한 것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그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며 “잘못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은 즉각 논평을 내고 “그 누구도 고 노회찬 대표의 죽음을 미화하지 않았다”며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비판했다.

한 정치인이 살아온 삶에 대한 추모와 미화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세대와 이념을 넘어 닷새 동안 전국적으로 7만명이 조문을 하고 수천명이 국회 영결식장을 참석한 것은 결코 미화가 아니다. 노 전 의원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과 노회찬식 정치에 대한 그리움의 표출일 것이다. 노 전 의원의 죽음은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원칙과 소신이 지켜지는 정치,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 국민의 아픔을 보담아주는 정치,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 품격을 보여주는 정치가 이에 해당될지 모른다. 한마디로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다.

노 전 의원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이런 좋은 정치를 위해 노력한 것을 국민들이 인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전 의원은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면서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런 노 전 의원의 간절한 호소에 국민이 동참했다. 정의당 당원 가입과 후원도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정당 지지도에서도 괄목한 만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국갤럽 8월 1주 조사 결과, 정의당의 지지율이 15%로 2012년 10월 창당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지난주까지 3주 연속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동률을 기록한 정의당은 이번 조사에서 자유한국당(11%)을 넘어섰다. 주목할 것은 우리 사회의 중추 세대인 40대(23%)와 50대(21%)에서 정의당이 지지율이 전국 평균을 훨씬 넘는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진보 4명 중 1명(25%)이 정의당을 지지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노회찬 전 의원의 죽음은 정의당을 넘어 집권당인 민주당과 제1야당인 한국당이 향후 좋은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 체제의 과제와 한계

자유한국당은 최근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를 발족시키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김병준 혁신위 체제가 출범한지 2주 정도 지난 현 시점에서 초기 활동에 대한 평가는 기대 이하다. 가령,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도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한국당은 전혀 반사 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혁신위가 활동을 시작했는데도 한국당 지지도는 답보 상태를 보이고, 심지어 정의당에게 뒤지는 참담한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물론 혁신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혁신위 초기에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것들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보수 가치를 재정립한다는 차원에서 김 비대위원장은 국가주의 논쟁을 의도적(?)으로 끌어들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초중고 고카페인 음료 판매 금지, 먹방 규제는 전형적인 국가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월 3일 “이제는 국가주의가 아니라 자율주의”라면서 “새로운 모델의 중심에는 시장과 공동체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문을 배포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가가 경제와 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국가주의적 성장모델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지만, 시장과 시민사회가 이렇게 성장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이 모델은 작동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불행하게도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성공신화 이후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제 또 다른 성장모델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혁신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추상적인 담론 논쟁만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김병준 위원장이 북 치고 장구치고 모든 것을 주도하면서 다른 혁신위 위원들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은 이런 잘못된 행태가 혁신의 대상이다.

이렇다보니 박지원 민평당 의원은 김 위원장을 향해 “비대위원장이 돼서 계속 국가주의, 먹방 적폐, 국민중심성장론 메시지를 던지면서 친박과 비박 모두 안고 가려는 것은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본다”고 말했다.

보수의 새 가치는 비대위원장 개인 한 사람의 생각에 의해 정립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 대해 “내란음모나 쿠데타가 아니라 일종의 위기계획 매뉴얼”이라는 자세로는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혁신을 이룩할 수 없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7월 17일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을 분석한 결과, 문건은 불법을 넘어 위헌이라고 결론지어졌다. “국군기무사령부의 근거와 권한에 관한 법령 등에 비추어 대상문건의 작성과 검토내용은 그 고유 업무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기무사 문건은 의도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계엄령 실행을 위해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고 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사회질서의 교란 상태를 상상적으로 구성한 다음 대처 명분으로 문건을 작성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진정 혁신을 하려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시절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과거를 끊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 하지 않고 추상적인 ‘국가주의 담론 논쟁’이나 벌이고, 한국당내 친박ㆍ비박들을 모두 포용하려는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면 혁신은 물 건너 간다.

김 비대원장의 최근 언행을 보면 자신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적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서 노무현 정신을 토대로 보수를 혁신해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낡은 일방적 사고로는 보수를 설득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보수 가치는 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담은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실현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보수는 더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프로필

아이오와대정치학 박사

한국선거학회 전 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국회 개헌특위 전 자문위원

한국정치학회 전 부회장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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