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완전한 비핵화 위해 최대 압박…北,핵 포기 거부하고 종전선언 요구


북ㆍ미 입장차 못 좁혀…2차 북미정상회담에 기대 대북 압박에 北 버티기 관건…美, 새 압박 카드 꺼내나

지난 9월 평양선언으로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에 본격적인 속도를 낼 것으로 보였다. 미국 역시 북한의 전향적인 비핵화 태도에 화답하며 2차 미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겉으로는 미북관계가 전향적인 대화국면으로 돌입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비핵화 방법과 속도, 종전선언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신경전은 오히려 더 격화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 문제를 두고 더 이상 시간싸움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최대의 압박수위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종전선언과 비핵화 문제는 흥정거리가 아니라며 대미 비난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미북 간 대화국면은 재개됐지만 양국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못했다.

美 비핵화-北 종전선언 ‘맞짱’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6일부터 4차 방북 일정을 포함한 동북아 순방일정에 돌입했다. 폼페이오의 방북은 이번으로 네 번째다. 이번 순방 일정엔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이 미북대화 실무 사령탑으로 동행했다. 대북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미국의 치밀한 준비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 의제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얼마나 진정성 있고 실질적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확인하고, 북한은 미국의 종전선언 수용여부를 저울질했다.

미국은 시종일관 북한의 비핵화 조건으로 FFVD를 고수하고 있다.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가 우선이며 이것이 완전히 증명됐을 경우 후속조치가 진행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종전선언’이다. 종전선언을 통해 체제보장을 확고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북한은 종전선언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종전선언으로 주한미군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한반도 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이 북한의 의도로 분석돼 왔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평양선언에서 주한미군 철수 없는 종전선언을 직접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한미군 주둔과 종전선언은 별개의 문제로 한미동맹의 선상에서 논의될 문제라고 일축한 바 있다. 그래서 이번 2차 미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비핵화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여전히 강경하다. 오히려 대북 압박 수위를 더 높이는 모양새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일 북한과의 무기를 거래한 협의로 고발된 터키의 방산업체와 경연진, 북한의 외교관을 독자적으로 제재했다. 터키의 ‘시아 팔콘 인터내셔널 그룹’은 북한과 수출입 및 재수출의 방식으로 무기와 사치품 교역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군수, 가축,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으로 해외 지사도 갖고 있는 큰 기업이다. 이 기업은 북한 외교관과의 무역 거래 협상으로 미국의 독자 재제 대상에 올랐다.

이는 폼페이오가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에 이뤄진 독자재제로서 의미가 크다. 미국의 대북압박 기조는 여전하며 비핵화 협상과는 별개로 압박 원칙은 그대로 가져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시아 팔콘이 북한과의 무기 교역에서 유엔의 오랜 제재를 명백하게 무시하려고 시도했다”며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그때까지 제재 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차원에서 대북압박은 여전하며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시아 팔콘의 최고경영자인 후세인 샤힌, 총지배인인 에르한 출하, 주몽골 북한대사관의 경제상무참사관인 리성운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이들은 터키에서 무기 거래를 위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독자재제 대상에 오르면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면 미국과의 일체의 거래도 금지된다. 미국의 독자재제 대상은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 기업이었다. 하지만 터키 등 제3국까지 범위가 확대되면서 북한에 대한 압북 수위가 최고조로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압박과 제재를 지속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소리 (VOA) 방송은 지난 5일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는다면 제재는 완전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국무부 관계자의 입장을 전했다. 또한 지난달 26일 미국 상원에서는 북한의 강제수용소 철폐 축구 결의안과 대북정책에 대한 의회의 감독 강화 법안이 외교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북한, 미국 강경 태도에 맞서…대북 제재 푸는데 전력

북한도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물러서지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2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종전선언은 흥정물이 아니다”며 “종전은 결코 누가 누구에게 주는 선사품이 아니며 우리의 비핵화 조치와 바꾸어먹을 수 있는 흥정물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종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도 구태여 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에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지 않는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의 대가로 요구하는 핵 신고서 제출과 검증, 영변 핵시설 및 미사일 시설 영구 폐기 등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궤변”, “광대극”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맹비난했다. 북한에게 영변 핵시설은 ‘핵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실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핵계획의 심장부와도 같은 핵심 시설’이라고 강조하는 곳이다. 북한도 미국을 최대한 압박하면서 ‘핵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서도 대미 비난의 수위를 끌어 올리고 있다. 지난 4일 노동신문은 “제재 문제로 말하면 조미(북미) 협상의 진전과 조선반도 비핵화를 바라는 미국이 알아서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며 미국이 제재로 얻을 것은 비핵화 협상에서의 불리함밖에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재문제에 목소리를 높인 것과 관련한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또한 북한의 여러 선전매체들은 미국 상원의 강제수용소 철폐와 관련한 법안 통과에 대해 조미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도발 행위’라고 규정하며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북한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미국의 대북제재에 대해 “참으로 그 경직성과 무례함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미국을 두고 ‘농사도 짓지 않고 열매를 거두겠다는 행위’로 단정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달 2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언급한 ‘비핵화 구축과 조미관계 개선 열매의 상관성’ 발언과 통하는 대목이다. 성의 있는 미국의 조치가 선행돼야 비핵화 속도가 빨라지고 조미관계도 전환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기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은 북미관계 개선과 비핵화 협상 진전의 조건으로 제재 완화와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대북제재 국면이 지속되면 진정성 있는 비핵화 협상은 이뤄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북한도 실제적인 행동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4일 평양을 출발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러 3각 협상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전통적인 북중러 우호관계를 통해 미국의 대북제재 수위를 낮추고 폼페이오의 방북에 앞서 비핵화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의도였다.

이와 같은 신경전이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과 협상의 본질에 영향을 크게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이어지는 제재와 비난의 수위는 협상에 세세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반면에 미국의 추가제재 자체는 비핵화 협상과는 별개로 진행돼 오던 것이며 판을 깰만한 요소는 아니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북 비핵화 진정성 확인돼야 북미관계 진전

미국의 워싱턴에서는 과거 반복되던 비핵화 협상의 패턴이 그대로 재현될까 우려한다. 북한은 과거부터 비핵화 협상에서 강한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며 협상테이블을 만들곤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비핵화 테이블에서는 말을 바꾸거나 판을 깨면서 핵전력 완성을 위한 시간 끌기에 성공해왔다. 지금도 동창리 실험장 폐기 등의 조건으로 미북대화의 물꼬는 터놨지만, 전격적인 태도전환으로 과거와 같은 ‘협상판 깨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번 폼페이오의 방북 목적도 김정은 위원장의 확고한 비핵화 의지를 사전에 듣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말과 달리 실제 협상장에서 의미 있는 안을 내놓지 않으며 시간을 끌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이 직접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야만 2차 미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 방북대표로 동행하는 스티브 비건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북한에 대해 “다 믿지는 않으나 안 믿는다고 해서 협상을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실수 없는 협상과 신뢰를 구축해 가는 협상을 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비핵화 협상 실패 사례를 떠올리면서도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의 끈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번 방북 성과가 좋으면 10월 안에 북미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추 전 대표는 한 라디오의 방송 출연에서 “미국 정치 입지의 불안 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카드로 잘 활용할 수도 있고, 그것을 놓치지 않는 담대함이 트럼프 대통령에 기질적으로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가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상태에 대해선 “과거의 협상 실패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라며 핵 폐기의 진정성을 보인다면 의구심도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미국의 북한전문매체인 38노스는 동창리 실험장 해체 작업이 두 달째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38노스는 지난달 29일 동창리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하면서 지난 8월 3일 이후 추가적인 해체 작업이 관측되고 있지 않다는 보도를 전했다. 그 이유에 대해 38노스는 “북한이 관련국 전문가 집단의 참관을 준비 중이거나, 방북하는 폼페이오 장관과의 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동창리 해체 시설 중단’이라는 카드를 쥐고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천현빈 기자



천현빈 기자 dynam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