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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칼럼] 한국당 조강특위 운명, 3가지에 달렸다


명분ㆍ세력ㆍ시기 3대 핵심…보수층 공감할 ‘명분’ 갖춰야

지지츨 '세력' 이끌어내고, '시기'의 절박함 행동으로 나서야
  •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김용태 위원장과 위원들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원, 김석기, 김 위원장, 전원책, 이진곤, 강성주 위원.(연합)
무엇이 혁명의 성공을 좌우할까. 가장 극적인 혁명 중의 하나가 프랑스 혁명이다.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장발장’은 프랑스 혁명이 그 배경이다. ‘장발장’에 나오는 시대상처럼 프랑스 왕정은 자유의식이 고취된 인구의 대다수인 평민들의 불만을 불러왔다.

정신적으로 절대 왕정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상의 변화가 컸지만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1789년에 찾아온 기근이었다. 불평등한 사회체제였고 프랑스 민중의 사회개혁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던 때였다. 여기에 국가 재정 파탄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혁명을 하기에 명분은 분명했다. 프랑스의 구체제 하에서 인구의 2%밖에 되지 않는 특권 계급은 부와 명예를 독점했다.

인구의 약 98%를 차지하는 제 3계급인 평민은 무거운 세금을 짊어진 채 고통스러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신분이 낮은 평민들 가운데 전문지식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계몽사상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여야 한다’는 의식은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뒤집어야 한다는 의지로 표출됐다.

프랑스 혁명이 성공한 배경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다. 앙상레짐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명분이 확실했다. 98%의 평민들이 계몽사상으로 하나가 된 세력이 만들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기였다.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시점이었다. 정치적인 혼란과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흉작의 영향으로 여성들마저 무기를 들고 생존권 투쟁을 할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명분, 세력, 시기 3가지 기준으로 볼 때 프랑스 혁명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필연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개혁과 혁신의 조건 역시 다를 리 없다. 가장 중요한 동력은 민심을 모으는 일이다.

한국당 ‘기울어진 운동장’ 상황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 또한 마찬가지다. 적게는 당원들의 여론을 모아야 개혁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지지층들의 공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현재의 정당 지지율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 2일과 4일 실시한 조사(전국1004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4%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물어본 결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48%로 응답자 절반에 육박했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11%였고 정의당은 9%였다. 바른미래당은 7%, 민주평화당 1%였다.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24%나 되었다. 응답자 4명 중 1명은 선택지가 여러 개나 있지만 지지할 정당조차 없다는 소리다. 갈 길이 가장 급한 정당은 자유한국당이다. 여당과 지지율 격차가 무려 37%포인트다. 정의당과의 지지율 차이는 불과 2%포인트다(그림1).

지난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로 참패했다. 낮은 지지율은 정부에 대한 견제 능력마저 상실하게 만든다.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다음 총선도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출범 이후 당의 지지율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김병준 비대위는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 카드를 꺼내들었다. 인지도가 높은 전원책 변호사를 위원으로 임명했고 사실상 전권을 넘겨준 셈이다. 혁신위원회의 노력조차 미봉책에 그친 자유한국당의 조강특위 카드는 성공할까.

  •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임원단 소통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
보수층 공감할 ‘명분’ 갖춰야

먼저 전원책 조강특위의 운명은 ‘명분’에 달렸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정당을 표방한 정치결사체다. 당헌과 당규의 내용이 그렇고 소속 의원들의 성향이 그렇다. 당의 쇄신을 내건 조강특위가 보수층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무기력해진다.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지난 두 번의 정권을 가져온 보수정당이지만 더 이상 보수층은 보수정당의 강력한 후원자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과 탄핵으로 인해 보수성향의 국민들은 심리적으로 피폐해졌다.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했던 인물이 하염없이 추락하는 모습에 실망감과 더불어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충격으로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을 계속 옹호하는 집단이 있지만 대다수는 박 전 대통령의 몰락과 함께 이른바 ‘샤이(shy) 보수’로 내몰렸다. 그리고 침묵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다.

탄핵 이전 보수성향 이었던 국민들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중도나 진보 쪽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사실상 보수 기반은 그라운드 제로가 된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이 비대위를 구성하고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옷을 갈아입을 2012년 당시와 비교하면 보수정당의 보수기반 붕괴는 심각하다.

한국갤럽의 지난 2012년 1월 조사(16~20일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개명되기 전)에 대한 보수층 지지율은 44%였다.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직전 해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보수 기반이 흔들렸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보수기반은 강화되었다. 2014년 지방선거 직전의 조사(2014년 3월 4~6일)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보수층 지지율은 64%였다. 압도적인 지지율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조사(2016년 1월 5~7일)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보수층 지지율은 69%로 보수성향의 유권자 10명 7명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다.

사실상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체면을 구긴 총선 결과 이후의 조사(2016년 5월 2~4일)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보수층 지지율은 59%였다. 총선 전보다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지지율이다.

그렇지만 탄핵 직후 상황은 달라졌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의 조사(2017년 2월 21~23일)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보수층 지지율은 26%였다. 자유한국당 주자로 나선 홍준표 후보가 대선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기본적으로 어려운 구조였다. 왜냐하면 보수 기반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최근 조사(2018년 10월 2일과 4일)에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보수층 지지율은 32%였다(그림2).

탄핵 국면과 비교하면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잘 나가던 때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보수층이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구속 수감된 현실에서 보수층이 찾을 명분은 없어졌다. 탄핵 이후 최근까지 당의 중심 역할을 한 인물들이 새로운 명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직강화 특위는 계파 청산, 인적쇄신을 내걸었지만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들릴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 줄기차게 인적 쇄신, 계파 청산 논의가 있었지만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적은 없었다. 전원책 조강특위는 도덕성을 검증 잣대로 들이댄다고 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을 잡기 힘든 도덕성 또는 윤리 등으로 대상자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통해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보수층들이 공감하고 조강특위의 천군만마 후원자가 되는 까닭이다. 조강특위의 운명은 공감 가능한 명분에 달렸다.

  •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운데)가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
보수 본산 중심으로 지원 세력 형성해야

다음으로 전원책 조강특위의 운명은 ‘세력’에 달려있다. 프랑스 혁명도 98%의 대다수 평민들의 집단 행동이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몇몇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혁명을 이끌었다면 왕정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대중의 힘을 등에 없고 앞으로 전진할 때 혁명도 개혁도 성공가능한 법이다. 전원책 조강특위의 세력은 무엇일까. 바로 지지층이다.

당성이 충만한 당원이 있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지지층이 존재한다. 2011년의 한나라당 위기 국면에서 당 지도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비대위 체제로 갈 수 있었던 동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개인의 힘이 아니었다. 당의 변화를 만들고 대선 승리를 염원하는 당내 세력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뭉친 세력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세력의 지역적 본산은 대구경북 이른바 TK지역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구경북은 보수정당이 공을 들여야 할 최후의 보루다. 현재는 어려운 처지가 되었지만 지난 두 번의 보수정당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 당선자는 TK출신이다.

한국갤럽의 조사 추세를 분석하면 대구경북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아직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기 직전이 지난 2012년 조사(1월 16~20일)에서 TK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42%였다. 지역 맹주로 자리매김할 정도의 지지율이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2014년 조사(3월 4~6일)에서 TK지역 새누리당 지지율은 55%였다. 지역 기반이 더 견고해진 추세로 나타났다.

2016년 총선이 있기 직전의 대구ㆍ경북 지역의 보수 기반은 더 단단해졌다. 총선 전 조사(2016년 1월 5~7일)에서 새누리당의 TK지역 지지율은 56%였다. 그러나 공천 논란으로 피투성이가 된 대구경북 지역 민심에 변화가 발생했다. 총선 직후의 조사(2016년 5월 2~4일)에서 새누리당의 TK지역 지지율은 47%였다. 지역 기반의 추가 붕괴는 탄핵이 원인이었다. 탄핵 이후 조사(2017년 2월 21~23일)에서 자유한국당의 TK지지율은 16%로 주저앉아 버렸다. 텃밭이니 아성이니 하는 표현을 갖다 붙이기조차 무색한 수준이다.

최근 조사(2018년 10월 2일과 4일)에서 대구ㆍ경북 지지율이 22%로 조금 올라갔지만 과거의 영화는 찾아보기 어렵다(그림3). 보수정치의 본산으로 해석되는 TK지역의 힘을 받지 못한다면 전원책 조강특위는 목적했던 변화를 만들어내기 힘들어진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관우라도 혼자서 백만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지도가 매우 높고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전원책 변호사라 할지라도 개혁과 혁신을 지지할 우군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불과 ‘100일 천하’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보수 본산을 중심으로 얼마나 지원 세력을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전원책 조강특위의 운명은 좌우된다.

‘시기’의 절박함 행동으로 나서야

마지막으로 전원책 조강특위의 운명은 ‘시기’에 달렸다. 바로 지금이 보수의 위기이자 자유한국당의 위기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절박함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위기에 휩싸였다. 당시 한나라당을 이끌었던 인물이 바로 홍준표 전 대표였다. 위기감은 홍 전 대표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지 않았다.

지도부를 해체하고 당을 변화시킬 인물로 박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탁월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2012년 총선과 대통령선거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선거를 2~3년 앞둔 시기였다면 당시 홍 전 대표가 자리를 내놓았을까. 아니면 다른 세력이 홍 전 대표로 하여금 자리를 내 놓으라고 요구를 하고 힘을 모을 수 있었을까. 시기가 변화를 만든 힘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지만 자유한국당에 변화의 물결은 찾아보기 힘들다.

변화없는 자유한국당 모습에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이대로 2020년 총선을 마주한다면 어떤 후보도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들과 지지층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정도의 혁신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기 때문이다.

2012년 초, 한나라당 비대위의 혁신은 총선을 6개월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단행되었다.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1년 하고도 반년 정도의 기간을 남겨둔 당사자들에게 조직강화특위의 칼날이 얼마나 예리하게 작동할까. 인적 쇄신과 물갈이를 주장하지만 100명의 넘는 소속 현직 국회의원들의 엄청난 반발은 명약관화해보인다.

결국 혁명은 대상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은 ??어빠진 귀족과 왕정을 겨냥했다. 그 힘은 프랑스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전원책 조직강화특위가 의원들의 생사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유권자들의 힘을 확보해야만 가능할 일이다. 보수정당의 숙명적인 핵심 지지층은 60대 이상 유권자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50대 중반을 기준으로 정치적 성향이 나누어지는 추세다.

보수 정치인이 비빌 언덕은 60대 이상 유권자가 되는 셈이다. 운명을 좌우하는 무게추가 60대 이상 유권자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다. 보수정당의 핵심 기반인 60대 이상 유권자마저 선호 정당 선택에 변화가 오고 있다. 분명 자유한국당의 위기이고 전원책 조강특위가 반드시 주목해야할 일대 사건이다.

한국갤럽의 자체조사 경향을 주목하면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변화는 충격이다. 한나라당 마지막 시기였던 2012년 1월 조사(16~20일)에서 60대 이상 지지율은 42%였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2014년 3월 4~6일)의 조사에서 60대 이상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61%였다. 핵심 지지층이 분명해 보인다.

2016년 총선 전의 조사(1월 5~7일)에서 60대 이상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69%로 절대적이었다. 총선을 치르고 난 후의 조사(2016년 5월 2~4일)에서 60대 이상의 새누리당 지지율은 56%였다.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던 공천이 60대 이상 유권자 민심 변화의 분수령이 된 모양새다. 대통령 탄핵 후의 조사(2017년 2월 21~23일)에서 60대 이상의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6%로 곤두박질쳤다. 백약이 무효인 상태로의 변화다. 가장 최근 조사(2018년 10월 2일과 4일)에서 60대 이상의 지지율은 22%로 추가 하락세다(그림4).

가뜩이나 60대 이상 지지율이 낮아지는 마당에 보수를 보수라고 내놓고 말하지 않는 ‘샤이보수층’은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원책 조직강화특위가 아무리 혁신을 부르짖어도 소속 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여론을 가져오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무감각한 쇄신 대상자들로 하여금 시기의 압박을 받게끔 만드는 것이 조직강화특위의 승부처다.

  •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으로 내정된 전원책 변호사가 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인선과 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
보수 재건 여부 따라 한국당 운명 결정돼

보수의 위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정작 행동으로 자유한국당의 혁신과 개혁을 주도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위기라고 인식하고 선당후사하는 이미지도 아니다. 당의 성적표는 지지율로 설명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정당 지지율은 더 내리막길이다. 지방선거 참패라는 전대미문의 결과를 받아 쥐고도 변화의 물결은 아직 계곡 입구조차 닿지 않은 상태다.

전원책 조강특위는 지지율 50%에 육박하는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 다윗의 처지다. 경쟁 정당인 더불어민주당만 넘어야 할 산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견고하게 철옹성을 쌓고 있는 당내의 벽을 넘어야만 살아남는 운명이다. 미국 공화당은 믿었던 리처드 닉슨의 추한 모습으로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미국 공화당은 무너졌다. 닉슨 대통령의 사퇴이후 승계한 포드 대통령은 재임 중에 도덕성에 먹칠을 한 닉슨 대통령을 사면하고 만다.

미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명분이 사라진 공화당 지지층들은 침묵했다. 지난 대통령 탄핵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수감 이후 많은 보수층 유권자들은 보수정당 그리고 정치인들의 깊은 반성과 넓은 책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지율에 나타난 수치는 지지층들의 희망을 당이 반영하지 못한 결과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성난 미국 유권자들은 1976년 대선에서 ‘시골뜨기’로 취급받던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미국 공화당에 당장의 큰 변화는 없었다. 절박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여전히 의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불세출의 보수 영웅이 탄생하고서야 상황은 달라졌다. 레이건 대통령의 성공은 명분, 세력, 시기가 맞아 떨어졌다.

명분은 분명했다. 미국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일본의 침공’으로 불릴 정도로 미국 경제는 카터 정부에서 흔들렸다. 일본차가 넘쳐났고 미국 제품들의 경쟁력은 하락 추세였다. 레이건 대통령의 명분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였다. 미국 국민들은 마음에 와 닿는 명분을 제시하는 레이건 대통령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오죽했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기간을 비롯해 현재까지 애용하는 슬로건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다.

세력도 중요했다. 공화당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과 보수 정치를 재건하겠다는 의욕을 갖춘 인물들이 레이건에게 몰려들었다. 미국 정가에서 세력은 곧 권력이자 돈이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아이리비그 출신의 정치인일지라고 대중성이 없다면 파괴력은 제한적이다. 레이건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나갔고 궁극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력을 얻었다.

레이건 인맥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대통령을 역임한 부시 부자의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레이건 행정부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한미FTA를 비롯해 미국의 보호무역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미국 무역 대표부) 대표 또한 레이건의 사람이었다. 천우신조라고 할까. 레이건 대통령은 시기마저 맞아 떨어졌다. 카터 대통령은 임기를 한참이나 남겨 놓은 시점부터 안보 문제로 흔들렸다. 미소 냉전시대라 보수층들의 절박함은 한층 더 했다.

카터 대통령이 군사 안보문제에서 헛발질을 하는 동안 레이건 대통령은 그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안보 리더십에 구멍이 난 카터를 집중공격했고 미소 냉전 속에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위협은 절박함으로 이어졌다. 199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명분, 세력, 시기 모두에서 고삐를 쥔 레이건 대통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공화당은 위기에서 일어섰다.

한국 보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전원책 조강특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그 운명은 명분, 세력, 시기에 달렸다. 프랑스 혁명을 이끈 프랑스 국민들은 1793년 파리 집정관 회의에서 ‘공화국을 위해 흩어지지 말고 단결하라. 자유와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임을 달라’고 결의했다. 보수 재건이 목적인 조직강화특위가 어떤 결의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자유한국당의 운명은 결정된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프로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고려대에서 행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전문연구원을 거쳐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길리서치 팀장에 이어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과 치밀한 분석력을 겸비해 정치 판세를 읽는 안목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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