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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직장 내 ‘권력형 성폭력’

늘어나는 직장내 ‘권력형 성폭력’
주변의 과도한 추켜세움…자기 관리 능력 무력화


#1.
토목설계 회사의 경리직원인 A씨는 컴퓨터로 동영상 강의를 시청할 때마다 직장 상사 B씨로부터 “야동 봐? 야동 좀 그만 봐”라는 말을 들었다. B씨의 성적 발언은 퇴근길에도 이어졌다. 버스를 타러 가던 중 B씨는 A씨의 나이를 물어보더니 경험도 없냐며 천연기념물이라고 말했다. 하루는 A씨가 힘이 없고 입맛이 없어하자 B씨는 “혹시 임신이 아니냐?”고 웃으면서 말했다. A씨는 이 같은 B씨의 발언에 성적 굴욕감을 느끼고 인권위원회의 시정을 요청했다. 인권위는 B씨에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관하는 특별인권교육을 수강할 것을 권고했다.

#2.
C씨는 대학교 장례식장 조리원이고 D씨는 같은 장례식장의 특수사업팀 팀장이었다. C씨를 비롯한 조리원 3명과 D씨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D씨는 "같이 근무하는 상례사들이 내가 자리에 없는 동안 책상을 뒤져서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여자들은 입이 두 개라서 이런 얘기하면 옮길 것 같은데. 돌아서 나한테 올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C씨를 비롯한 조리원들이 기분 나쁜 표정을 했는데도 D씨는 이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C씨는 직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D씨가 여성의 신체 특정부위를 비유해 말한 것으로 인해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을 느꼈다. 인권위는 C씨의 성희롱 시정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같은 성희롱 사례들은 전형적인 직장 내 권력형 성폭력에 해당된다. 직장 내 권력자들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성희롱을 포함한 성폭력을 일삼는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전직 비서 성추행 의혹으로 직장내 ‘권력형 성폭력’이 주목 받고 있다. 직장내 권력형 성폭력은 우월적 지위나 권력을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피해자에게 가하는 성폭력을 말한다. 이는 권력자의 가부장적 의식구조, 나르시시즘 등에 기인한다. 문제는 피해자 다수가 구제절차를 통해 가해행위를 호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관계 악화, 업무상 불이익 등을 우려한다. 정부가 마련한 구제절차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구제 및 감시 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게 급선무라고 말한다.

직장 내에서 벌어진 권력형 성폭력은 가부장적 의식구조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해자의 행동이 우리사회의 왜곡된 성통념과 고정된 성역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보호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괘념치 말거라’, ‘너를 가져서 미안하다’, ‘잊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면, 어법과 말투에서 권력을 가진 자의 일방적인 상황 해석과 가부장적인 의식구조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문자메시지들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피해자에게 보냈던 메시지들이다.

나르시시즘도 권력형 성폭력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며 “전지전능한 느낌은 개인의 판단력과 자제력을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장이 갖는 특수성도 있다”며 “지위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나타나는 지지자들의 과도한 추켜세움이 권력자들의 자기 관리 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르시시즘은 오만함과 함께 권력자의 폭력적인 태도로 발전하기도 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권력자는 상대방을 물적 대상화해 자기 소유물로 인식한다. 이때 권력자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며 폭력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자기결정권이란 스스로 내린 성적 결정에 따라 자기 책임 하에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에 속하는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하다.

한편 직장 내 성희롱 통계에 따르면 피해자가 사건을 신고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3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전체 성희롱 피해자의 81.6%가 ‘참고 넘어간다’고 답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참고 넘어간 이유로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가 49.7%(복수응답)였고,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31.8%)’, ‘행위자와 사이가 불편해질까 봐서(30.2%)’, ‘소문, 평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12.7%)’, ‘업무 및 인사고과 등의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돼서(9.3%)’ 등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고에 소극적이라면 피해자를 색출, 처벌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도 높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예방,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박 전 시장 의혹 사건을 보면 젠더 특보 등 성폭력 감시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권위원회 등 제3의 조직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지침 운영에 대한 감시 기능이 촘촘해야 성폭력을 쉽게 덮고 넘어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노유선 기자 yoursun@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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