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 인격모독에 '피멍'

입주민 모욕에도 '마지막 직장' 때문에 참아
경비는 기본… 청소, 주차관리 외 잡무도 처리
'열악한 근무여건'에 학교 경비원 숨지기도
근로계약법·근로계약서 규정 잘 지켜지지 않아

약 11만 명에 이르는 경비원은 경비업무는 기본이고, 청소와 재활용 분리수거, 주차관리 업무 외에도 아파트 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일부 입주민들이 참기 힘든 모욕을 주기도 하지만, 퇴직 이후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근무여건이 열악하지만 경비원 자리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으로부터 폭언을 듣고 모멸감을 느낀 경비원이 분신해 숨지기도 했고 지난 8월 청담동의 한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요구해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경비원에게 이어지는 '갑질'에 지난달 30일에는 택배 수령시간 문제로 언쟁이 오가다 "사표 써라"는 말에 격분한 경비원이 입주자대표를 살해하기도 했다. 갑질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얼룩진 경비원의 노동실태를 살펴봤다.

경비원 무시한 입주자대표 살해사건

경비실에 맡겨지는 택배 문제로 말다툼하다가 아파트 경비원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를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입주자 대표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경비원 김모(67)씨를 체포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10시쯤 시흥시의 한 아파트 내 관리사무소에서 입주자 대표 정모(69)씨를 흉기로 두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시 김씨는 경비실로 배송된 택배 문제와 관련해 "택배 찾는 시간은 오후 11시까지로 제한돼 있는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주민들이 새벽 시간대에 택배를 찾아가는 것으로 정씨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씨가 "그럴 거면 사표를 써라"고 말하자 이에 화가 난 김씨는 소지하고 있던 손톱깎이에 달린 예리한 흉기로 정씨를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관리사무소장과 협의해 지난달 26일 '경비실 택배 전달 시간을 오후 11시까지로 제한한다'는 공고문을 아파트 게시판 등에 부착했다. 이에 입주자대표인 정씨가 "주민들 편의도 고려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해 지난 28일 안내장을 모두 수거한 뒤, 사건 당일 김씨를 불러 안내장 부착에 대해 질책하는 과정에서 언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다른 아파트에선 택배 찾는 시간이 오후 10시로 제한된 곳도 있어 관리사무소장과 상의해 오후 11시로 제한하자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정씨가 사표를 쓰라는 발언을 하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평소 정씨에 대한 경비원들의 감정이 좋지 않아 총대를 멘다는 심정으로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숨진 경비원

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던 50대 비정규직 근로자가 근무 도중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31일 충북 충주경찰서와 충주교육지원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전 7시 40분께 충주의 한 중학교에서 경비 근무를 서던 박모(59)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학생과 교사들이 119구조대와 경찰에 신고해 박 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경찰은 평소 몸이 약했던 박 씨가 잇단 밤샘 근무를 하다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3월 한 용역업체에 고용돼 해당 학교에서 경비로 일하면서 매일 혼자 숙직을 전담하다시피 해왔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직전에 주유소에서 일했던 박씨는 경비 업무는 처음이었다고 전해졌다.

박씨는 오후 4시 30분께 출근해 이튿날 오전 8시께까지 15∼16시간 정도 일한 뒤 퇴근했다가 8시간을 쉬고 다시 출근하는 일을 반복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한 달에 주어지는 휴무일은 나흘뿐이었고 월급은 100만 원이 채 안 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처럼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비정규직 학교 경비원은 교사의 숙직이 없어진 뒤 빈자리를 대신해 왔다. 지방자치단체와 학교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학교 경비원의 근무시스템과 처우는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계약서상 휴식 지켜지지 않아

지난 3일 인터넷 한 사이트에 '부산 모 아파트의 갑질'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사진 속에는 나이 든 경비원이 여고생과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장면이 담겼다. 글쓴이는 "몇 명 아주머니들이 아파트 대표회의에서 '다른 아파트는 출근 시간에 경비가 서서 인사하던데 왜 우리는 시키지 않느냐'고 불만을 제기해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갑질 논란'으로 번진 문제는 경비원 택배 수령 문제와 함께 경비원의 노동권익이 도마 위에 올랐다. 택배 수령 문제가 불거진 아파트는 5개 동으로 이뤄졌었는데 그동안 경비 인원을 절반으로 줄여 경비원들의 업무 강도가 높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아파트에서 경비원들을 많이 써야 하는데 4명밖에 안 쓰고 있다. 2인 1조로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숨진 박씨가 근무한 학교의 경비직은 2013년까지만 해도 쉬는 날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명절 연휴 때 하루도 쉬지 못해 자녀나 손주들의 세배를 학교 숙직실에서 받아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가 근무한 환경은 한 달에 주어지는 휴일이 약 4일로 주 90시간 정도를 근무지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기준법에선 주 60시간 이상을 근무하다가 사망할 경우 이를 과로사로 인정한다. 또한 법정 근로시간 8시간 외에 연장근로 시간은 주 12시간으로 정해져 있어 통상적인 계약서상 주 90시간 근무는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박씨와 같은 야간 경비원은 예외 근로자로 분류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로로 인한 사망 판정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용역업체 대표는 "나이 드신 분들의 근무여건이 너무 열악해 개선해 보려고 애쓰지만, 업체 입장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개선될 부분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부천노동교육상담소 김성호 실장은 "경비원은 용역업체를 끼고 고용하는 간접고용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낮은 임금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24시간 맞교대 근무자는 통상근로자보다 업무 강도가 낮다는 이유로 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현재는 분리수거, 주차와 택배 업무 등이 가중된 것이 현실이다"고 전했다.

이어 "최저임금이 실행된 후 경비원의 새벽 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적용했지만, 실질적으로 휴식시간이 온전히 부여되지 못하고 있다"며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실질 휴식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며 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