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문화 확산에 청신호 켜지나복지수요 정부 재정에 한계… 민간 참여 역할 필요기부 문화 활성화 위해서는 '믿음'이 전제되어야'아너 소사이어티' 1000번째 회원… 나눔으로 따뜻한 겨울

지난 12월29일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 회관에서 허동수 공동모금회장(왼쪽)이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1000번째 회원인 이심 대한노인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는 정부의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양극화를 완화하고 계층 간의 위화감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 기부의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제도적 변화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한편, 한국형 고액기부 문화를 주도하는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1000명을 돌파하며 긍정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나눔 문화 확산 돼야

지도층의 사회적 책임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천되는 소식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주목됐다. 작년 말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31)와 그의 아내 프리실라 챈이 우리 돈으로 52조 원에 달하는 페이스북 주식의 99%를 기부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그에 앞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부부는 자산 대부분을 자선 재단 설립에 사용했고 공익 재단을 통한 질병 퇴치 등의 사업을 지원했다. 워런 버핏은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는 약속 후 현재까지 29조 원이 넘는 돈을 기부했다. 세계 15위 부자인 중국의 마윈 역시 2014년 3조 원을 기부했다.

우리 사회도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대해 정부의 재정만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국가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사회가 급변하며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정부가 충분히 공급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를 대비하고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공익사업에 민간의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다. 사회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분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특히 기업 중심의 기부문화 활성화는 계층 간의 위화감을 해결해 우리 사회가 통합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재벌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 국내 나눔실태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기부 총액은 국세청 신고 기준으로 12조4900억 원이다. 8년 전인 2006년 8조1400억 원에 비하면 1.5배 커졌다.

조사결과 우리나라의 기부 등 나눔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총액은 11년 11조1500억 원에서 13년 12조4900억 원으로 증가했다. 현금기부 참여자 1인당 평균 참여횟수도 11년 6.2회에서 13년 6.5회로 0.3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 참여율은 09년 32.3%에서 11년 36.0%로 3.7%p가 증가하였으나 13년은 34.5%로 다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의 기부금은 7조 8300억 원이며, 법인의 기부금은 4조 6500억 원이었다.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모범적 기부증대가 필요하며, 기부금액의 투명한 운영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관련 기관 간 협조를 통해 나눔 통계 생산의 신뢰성을 높이는 한편, 민간 나눔 활성화를 위한 지원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기부 활성화 가로막는 제도 걸림돌, 기부 문화 인식 부정적

기부총액은 증가했지만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부 문화에 제도적 맹점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 등 제도 개선을 통해 기부를 장려하고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2년 개인 재산 215억 원을 모교인 아주대에 기부해 장학재단을 설립한 황필상(68)씨에게 2008년 세무 당국은 140억 원의 증여세와 가산세를 내라는 고지서를 보냈다. 세무 당국은 현행법에 맞춰 장학재단을 지주 회사 삼아 무상 증여하는 것을 막으려 세금을 부과했다고 밝혔지만, 평생 번 돈을 기부한 황씨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법적 다툼을 벌이며 시간이 흐르자 가산세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제는 황씨가 기부했던 액수보다 10억 원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황씨는 세금 폭탄에 불복하며 소송을 내 1심에서 이겼지만, 2심에서는 졌다. 법원이 세무 당국의 손을 들어 현재 소송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기부문화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은 지난 12월 30일 전국 만 19~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기부'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한국의 기부문화 수준이 낮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의 기부문화 수준을 낮게 평가하는 이유로는 '기부를 받는 기관의 불투명성'(66.6%, 중복응답)과 '솔선수범하지 않는 사회지도층'(56.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조사 결과 기부 대상기관에 대한 불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지도층에 대한 실망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한국사회의 기부문화를 바라보는 전망도 밝지 않았다. 앞으로 한국에서 기부문화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생각하는 과반수 이하인 42.6%로 조사됐다. 기부문화 활성화의 전제조건으로는 '믿음'을 많이 꼽았다. 응답자의 70%가 기부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믿음이라는 데 동의했다.

고액기부자클럽 '아너 소사이어티' 1000번째 회원 나와

민간기업의 기부활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고액기부 문화에 청신호가 켜졌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사회지도층의 나눔을 선도하고 한국형 고액기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누적 기부액이 2007년 12월에 출범한 이후 8년 만에 1087억 원을 기록했다.

또한 지난 12월 29일 이심(76) 대한노인회장이 아너 소사이어티에 1000번째 가입했다. 이 회장의 기부금은 공동모금회를 통해 노인 의료취약 계층 지원사업과 미래세대 육성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2008년 6명에 불과했던 아너 소사이어티의 연간 가입자 수는 2010년 31명, 2013년 210명. 2015년 290명을 기록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2년 100번째 회원(주기영 쌀눈조아 대표) 가입 이후 빠른 속도로 회원이 늘어나 2012년 12월 200호(배우 수애), 2013년 6월 300호(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 2013년 12월 400호 (목영준 김앤장 사회공헌위원장), 2014년 5월 499, 500호(부산 치과의사 부부 배기선ㆍ김선화)를 돌파했다.

이어 2014년 10월 600호(김재수 네츄럴엔도텍 대표), 2014년 12월 700호 회원(정형철 한우 전문점 칠억조 대표), 2015년 4월 800호 회원(팝페라 테너 임형주), 2015년 10월 900호 회원(길광준 미8군 제1 지역 사령부 민사 처장)을 맞았고, 두 달 만에 1000호 가입자를 맞았다.

직종별로는 기업인이 458명(45.8%)이 가장 많았고 전문직 129명(12.9%)이 그 뒤를 이었다. 농·수산업에 종사하거나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45명(4.5%), 법인, 단체 임원이 35명(3.5%), 국회의원, 지자체장 등 공무원 17명(1.7%), 방송연예인 13명(1.3%), 스포츠인 9명(0.9%) 순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익명 회원은 127명이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나거나 유산을 기부해 가입된 고인 회원은 19명이었다. 최다 기부액은 2013년 익명의 재일동포가 독거노인을 위해 마련한 29억 원이다.

허동수 공동모금회장은 "1000호 회원 가입이 우리 사회가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이자 추운 겨울 따뜻한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정 인턴기자 mj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