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 부족해 '위작'은 무리"... 과거 '잘못' 시인, 갑자기 '진범 고백' 의문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이 지난 6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씨 아는 미술계 인사들 “이우환 위작 못해, 시현시켜 보면 드러날 것”

공범 이씨 위작 참여, 모사 잘 하나 ‘진품’과 결정적 차이 있어

공개된 위작 판매 커넥션 사실과 달라… 위작 판정 13점 ‘출처’확인돼

이 화백 “경찰 회유” 주장…검ㆍ경 ‘위작’ 결론짓고 수사 강행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80) 화백의 위작 논란이 또 다른 진실 공방으로 인해 더욱 혼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위작 논란이 종결되지 않은 가운데 경찰이 이우환 화백을 ‘회유’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K옥션에서 열린 정기 겨울경매에서 4억9000만원에 개인 컬렉터에게 낙찰된1978년작‘점으로부터 No. 780217’. 경찰은 올해 1월초K옥션으로부터이그림을 압수 해감정위원단에게진위감정을맡겼고,‘ 안목감정’결과위작으로결론났다.
2012∼2013년 불거진 ‘이우환 위작 논란’은 광범위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오지 않자 점차 수그러들어 2014년이 지날 무렵엔 거의 잊혀졌다.

그런데 2015년 초 미술계 알력과 이해관계자들의 불순한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위작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후 이우환 위작 논란은 이 화백이 작품 감정을 하기도 전에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발표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그럼에도 위작범은 잡히지 않아 ‘위작범 없는 위작 사건’이란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그런데 검찰이 최근 위작범이라는 현모(66)씨와 공범 이모(39)씨를 체포, 구속하면서 위작 사건이 실재하고, 이우환 위작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위작범이 현씨와 이씨로 밝혀지면서 미술계는 술렁거렸다. 두 사람을 알고 있는 미술계 인사들은 “이우환 작품을 비슷하게 모사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문제있는 수사”라고 지적했다.

이우환 화백이 기자회견을 통해 위작 논란이 된 13점의 작품에 대해 “내 작품이 맞다”고 소견을 밝히고, 위작 유통책이라는 이씨 또한 범죄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위작 논란은 안갯속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위작범으로 검거된 현씨와 이씨의 정체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일각에서 ‘조작된 위작범’ 일 수 있다는 의혹마저 나오면서 위작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진실공방까지 더해져 혼란스럽게 전개되고 있는 이우환 위작 사건의 실체를 추적했다.

위작범 현씨의 의문스러운 정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김후균 부장검사)는 이우환 화백 작품 3점을 위조해 팔아 총 13억2500만원을 챙긴 혐의(사서명위조ㆍ위조사서명행사ㆍ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화랑운영자 현모(66)씨를 구속기소했다고 지난달 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에서 화랑을 운영하던 현씨는 2011년 일본을 왕래하는 골동품상 이모씨에게서 ‘이 화백의 작품을 모사해 위작을 만들어주면 유통해 수익금의 50%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알고 지내던 서양화가 이모씨와 함께 2012년 2∼10월 고양시 한 오피스텔에서 위작을 만들어 그해 8∼12월 부산과 인사동의 갤러리 운영자 2명을 통해 팔았다.

검찰에 의해 기소된 현씨는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김동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처벌을 감수하고 위조 혐의는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현씨는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공범들의 사기 범행 제안을 받고 수동적으로 응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법원 재판에 따르면 현씨는 이우환 작품을 위작해 골동품상 이씨를 통해 국내에 유통시켰다는 것이다.

현씨는 1980년대부터 서울 동대문구 장안평을 활동 근거지로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고서화(주로 민화류)를 취급하면서 생활했다. 현씨의 고서화 등은 경찰 수사에서 판매책으로 알려진 이씨를 통해 일본에 판매됐고, 수익을 나눠가졌다.

이씨는 1980년대 장안평에서 골동품 등 고미술을 취급한 인물로 1990년대 말 일본으로 건너가 ㈜00고미술연구소를 차리고 고미술을 거래하면서 일본에서 탄탄한 자리를 잡았다.

검찰 기소에 따르면 2011년 판매책 이씨가 ‘이 화백의 작품을 모사해 위작을 만들어주면 유통해 수익금의 50%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신동아 2015년 12월호는 ‘2011년 초순 답십리 소재 모 호텔에서 이씨를 소개받았다. 이우환 그림을 일본에서 꼭 팔 데가 있으니 애걸복걸하며 살려달라고 했다. (중략) 일단 일을 착수하면 분배 과정에서 50대 50으로 정확하게…’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현씨와 이씨는 고미술 관련 일을 하면서도 상대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교분 없이 지내다가 2011년 초 고미술상 김모씨 소개로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검찰 발표나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처음 만난 현씨와 이씨가 바로 이우환 위작 판매를 얘기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구나 현씨와 이씨 모두 고미술 전문가인데다 연장자이자 고미술 분야에 나름 이름이 있는 이씨가 현씨에게 생소한 이우환 위작을 일본에 팔겠다며 애걸복걸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경찰 수사와 검찰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이우환 위작 사건’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위작범 현씨가 단독, 또는 공범 이씨와 함께 이우환 작품을 위작해 판매책 이씨를 통해 유통시켰다는 것이다. 경찰은 판매책 이씨가 위작을 일본을 통해 국내로 들여왔다거나 일본을 거치지 않고 국내에 팔았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그동안 현씨뿐만 아니라 판매책이라는 이씨, 위작을 판매했다는 화랑 대표, 소장자 등을 수차례 조사했음에도 위작범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3년여간 현씨와 이씨를 조사, 수사하고 그들의 국내외 출입을 자유롭게 놔뒀던 경찰이 뒤늦게 그들을 위작범으로 체포한 것은 의문이다. 더구나 현씨는 2013년 8월 이우환 위작 사건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됐을 때부터 위작범으로 거론된 인물이다.

때문에 미술계 일각에서는 현씨의 구속과 관련해 고미술상으로 약점이 많은 현씨와 수사 기관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현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미술계 인사들은 “현씨가 위작범(진범)이라면 이우환 위작 사건은 엉터리”라고 말한다. 화가이며 화랑을 운영하는 K씨는 “현씨는 주로 민화를 그린 사람인데 전혀 성격이 다른 현대 작가인 이우환 작품을 위작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고미술계 한 인사는 “고미술상인 현씨가 민화를 위조한 적이 있다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유화를, 그것도 이우환 선생 작품을 위작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씨는 처음엔 자신이 위작을 했다고 주장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이모씨가 위작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씨를 알고 있는 미술계 인사들은 이씨가 모사를 잘하지만 진작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앞서 K씨와 미술계 인사들은 현씨가 이우환 위작 사건의 진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직접 시현(示現)해보라는 것이다. 이들은 현씨든, 이씨든 비슷하게 흉내는 내도 이우환 화백이 직접 본다면 위작을 바로 가려낼 것이라고 봤다.

미술계 한 인사는 “현씨와 이씨가 위작을 팔고 다닌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며 “위작 판매에 따른 돈 문제로 소송까지 벌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씨가 여러명의 현대 유명 작가 위작을 했지만 진품과는 비교가 안 되는 몇 백만원에 팔리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우환 위작 사건의 중심에 선 현씨

위작범이라는 현씨는 위작 유통책이라는 이씨와 다년간 고미술 거래를 했다. 현씨가 중국 등에서 민화나 골동품을 구해오거나 그가 직접 그린 민화를 이씨가 일본에서 판매해주는 형태였다.

이런 과정에 현씨와 이씨는 고미술품 판매 대금을 놓고 다퉜다. 이씨에 따르면 현씨의 고미술품 중 좋은 작품은 고가에 바로 팔렸으나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은 늦게 팔리거나 아예 팔리지 않았다. 이씨는 우선 팔린 작품의 대금을 송금했으나 현씨는 나머지 작품에 대한 판매대금을 요청했고, 그렇게 못할 경우 작품 전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씨는 이미 팔린 작품을 돌려줄 수 없고 나머지 작품은 판매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현씨는 이씨가 고미술품을 판매했으면서도 대금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13년 8월 현씨는 공범 이씨를 데리고 인사동 한 골동가게에 들렸다가 이씨를 성토하는 과정에 ‘이우환 위작’ 얘기를 꺼낸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씨는 “이씨가 2010년 내가 일본에서 그린 10여 점의 이우환 위작을 팔아 큰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돌려준 게 없다”며 이씨를 비난했다.

현씨의 말은 10여일 후 한 고미술상을 통해 한국미술품감정협회 등에 전해졌고 ‘이우환 위작설’로 확대ㆍ증폭됐다. 위작품도 10여 점에서 100여 점으로 늘어났고 판매액도 80억∼100억원으로 소문이 났다.

이와 관련해 현씨와 이씨의 관계를 잘 아는 한 미술계 인사는 “현씨가 (이씨의) 위작을 팔면서 제 때, 충분히 돈을 주지 않아 이씨의 불만이 많았는데 이를 무마하려고 엉뚱한 ‘이우환 위작’ 얘기를 꺼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씨는 2010년 일본에서 위작했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수십 점의 위작품이 80억∼100억원에 팔렸다는 것도 근거없는 소문으로 판명됐다.

이후 현씨는 ‘이우환 위작’ 운운한 것과 관련해 지인들에게 “호리다시(값을 떨궈 편취함) 당한 것을 감추기 위해 지어낸 얘기”라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자신도 고미술(특히 민화) 전문가인데 이씨한테 싼값에 넘겨 이씨만 돈을 벌게 한 것이 창피해 엉뚱하게 ‘이우환 위작’으로 돌려 얘기했다는 것이다.

현씨는 지난해 3월 이씨를 만나 ‘이우환 위작’ 문제로 곤경에 처하게 한데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불거진 위작 논란과 현씨의 공범

2012년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이우환 위작 논란은 이듬해 8월 본격적으로 거론됐다가 ‘실체’가 없는 사건으로 마무리됐고, 2014년이 지나면서는 거의 잊혀졌다.

그런데 지난해 초 고미술계 실력자 K씨와 위작 판매책으로 잘못 알려진 이씨 사이에 얽힌 과거 분쟁이 돌발하면서 ‘위작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고미술계 실력자 K씨는 2002년 이씨의 소개로 약 200억대 고미술 수십점을 H상사 김모 대표를 통해 구입했다가 강도를 당한 작품으로 밝혀져 30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본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미술 관계자와 사정기관 관계자 등에 따르면 K씨는 이씨와 현씨 사이의 고미술품 거래내역이 담긴 내용증명을 입수한 후 이씨가 ‘이우환 위작 논란’에 연루됐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이씨를 압박해 과거 손실분을 보상받기 위해 이씨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은 몇몇 언론을 통해 ‘이우환 위작’사건으로 재조명됐다. 이를 처음 보도한 중앙일보는 지난해 6월 22일자 ‘위조된 이우환 그림 100억대 거래 의혹’ 기사에서 ‘경찰은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위조해 국내외에 유통한 혐의로 A씨(현씨) 등 7명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중략) 경찰은 A씨 등이 이 화백 위작을 판매해 100억원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은 7월 13일자 ‘이우환 화백의 위작, 150점 이상 국내외에서 유통’ 기사에서 ‘서울경찰청이 이 화백의 작품을 위조해 100억 대의 수입을 올린 위조 전문가 등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경찰발(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씨는 100점이 넘는 이우환 위작을 했고 이씨는 이를 유통시켜 100억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돼 있다.

현씨는 이씨로부터 민화 판매대금이 제대로 입금되지 않고 이씨가 민화를 팔아 80억원을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2013년 5월 21일 수입액의 절반인 40억원을 달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이씨에게 보냈다.

당시 내용증명의 주요 내용은 ‘1. 2012년 5월부터 이우환 위작을 하였으나 그해는 실패하고…. 2. 2013년 1월부터 10월까지 상당량 하였는데… 40억원을 받겠다. 3.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극심한 고충과 우울증에 걸려 있음… ‘ 등으로 돼 있다.

그러나 현씨의 내용증명은 허구로 밝혀졌다. 다시말해 내용증명상의 ‘이우환 위작’ 과 이씨가 40억원을 벌었다는 것은 거짓으로 확인됐다.

현씨가 내용증명에서 이우환 위작 운운한 것은 이씨로부터 민화값을 받기 위해 거론할 것일 뿐이고 실제 위작은 시기상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씨는 2014년 서울 북부지검에 이씨를 판매대금 횡령에 따른 사기죄로 고소했지만 고소장에 이우환 위작 얘기는 없다.

또한 내용증명 작성일이 2013년 5월 21일인데 ‘그해 10월말까지 위작을 하였다’는 내용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현씨가 2013년 1월경부터 위작을 시작했다면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감정(2012년 3월-2013년 2월) 중단 이후의 일이고, 그 이전(2013년 2월) 이우환 화백이 이미 감정협회와 현대화랑의 의뢰로 작품 감정을 해 진품으로 확인해 주었기 때문에 이후 현씨가 보낸 내용증명상 날짜(2013년 1월 이후)는 시간상 명백하게 불일치한다. (이우환 작품의 피그먼트가 마르는데만 수년 걸림). 때문에 이우환 화백이 확인해 준 작품에 이른바 현씨의 위작품이 섞여 있을 가능성은 없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검찰이 현씨를 구속기소하면서 밝힌 내용과 현씨가 이씨에게 보낸 내용증명의 차이다. 검찰은 현씨 등이 2012년 2∼10월 이우환 위작을 만들어 그해 8∼12월 부산과 인사동의 갤러리 운영자 2명을 통해 팔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씨는 이씨에게 보낸 내용증명에서 ‘2012년 5월부터 이우환 위작을 하였으나 그해는 실패하고’라고 했다.

이에 따르면 현씨 등이 이우환 위작을 만든 기간은 2012년 2∼4월에 국한된다. 하지만 그 기간 현씨가 고백했듯 위작을 할 시간도,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주목받는 인물이 현씨가 위작을 맡겼다는 젊은 화가 이씨다.

경찰은 이씨를 집중 수사했고 현씨와 함께 이우환 위작을 주도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는 한국경제신문 11월 10일 ‘가짜 그림 월 5~7점 그려 수억원에 팔았다’ 제하의 기사에서 ‘미술품 위작 기술자 현모씨와 이모씨가 2011년 8월 미술품 유통상 이모씨를 만나 위작 유통과 자금 문제 등을 협의하고 2012년 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위작을 제작해 판매상 이모씨를 통해 국내와 일본에 팔았다’고 보도되는 등 이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씨가 그린 위작은 전술한 바와 같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우환 작품 13점과는 관련이 없는 ‘다른 위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즉 이씨의 위작은 장안동 등 도깨비 시장에서 100만∼400만원에 판매되는 ‘위작’이며 경찰이 압수한 이우환 작품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씨는 2014년 10월 경 위작을 도깨비 시장에 몰래 내놓으려다가 현씨에게 알려져 횡령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위작 판매책이라는 이씨의 분노

이우환 위작 사건은 위작범 현씨와 이씨가 위작한 작품을 판매책 이씨가 유통시켰다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수사 결과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씨와 이씨가 이우환 위작을 거래했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

경찰과 검찰 수사에 따르면 현씨가 판매책 이씨에게서 일본 회사의 캔버스와 캔버스 틀 등을 공급받았고 ‘점으로부터’와 비슷한 그림 2점, ‘선으로부터’를 모방한 그림 1점을 그리고, 이 화백의 서명을 넣어 위작을 제작한 뒤 부산과 인사동의 갤러리 운영자를 통해 수억대의 가격으로 팔았다.

그러나 현씨와 이씨 사이엔 그러한 사실이 ‘부재’한다는 게 취재 결과다. 현씨의 위작을 유통시킨 판매책으로 거론된 이씨는 현씨와 이우환 작품을 거론조차 한 일이 없고 경찰이 물증으로 제시한 것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5월 18일 이씨에 대한 마지막 조사에서도 경찰은 이씨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사실 이씨는 일본에서 고미술품을 판매하며 생활하다 부산의 원로 미술가로부터 자신이 이우환 위작 사건에 연루됐고 귀국하면 체포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격분해 다음날 바로 귀국했다.

이씨는 “경찰이 계속 현씨와 이우환 선생 작품 관계를 캐물었지만 아무런 관련도 없어 수없이 부인했는데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찰의 수사 발표나 언론 보도에 나오는 무슨 무슨 문건과 (증거)자료 등은 현씨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씨는 현씨와의 ‘돈 거래’ 운운하는 것에 대해 “민화 등 골동품 거래에 관한 것인데 자꾸 이우환 사건과 엮으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씨는 경찰의 집요한 수사에 현씨와의 대질 심문을 여라차례 요구했으나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현씨가 생활이 어렵다며 돈을 부탁하면서 자기 때문에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蔑굅?밝혔다.

이씨는 “미술품 거래에는 관행과 상대가 있다. 평생 고미술을 거래하며 살아왔는데 이우환 선생 작품 같은 현대화는 거래방법도 상대를 찾기도 힘들다” 면서 “평생 미술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이우환 선생은 나도 존경하는 국가를 빛내는 화가인데 위작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우환 회유’ 논란 작품 4점의 비밀

이우환 화백은 지난달 30일 서울 웨스턴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경찰이 처음에는 전부 위작이라고 하더니 (내가 모두 진품이라고 하자) 변호사를 내보내는 등 담당 수사관만 남기고 '그러면 4점만 위작으로 하고 나머지는 그냥 (진품으로) 넘어가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화백은 “자기 자식이 죽고 없는 걸로 하라는 말 아니냐. 그럴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화백의 이런 주장은 13점의 작품에 대해 위작 판정을 내린 경찰이 일부만 위작으로 하자고 사실상 이 화백을 회유했다는 주장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경찰은 이에 “소신대로 감정해달라고 했을 뿐 그런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화백의 주장과 경찰의 반박이 맞서면서 위작 논란은 또 다른 ‘진실 게임’을 낳고 있다.

그런데 이 화백의 주장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경찰이 4점만 위작으로 하자’고 한 4작품의 정체다.

경찰이 위작 수사와 관련해 압수, 또는 제출 형식으로 보관하고 있는 작품은 모두 14점이다. 지난해 10월 K옥션에서 압수한 1점과 이우환 위작을 거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사동 K갤러리에서 10월 16일 압수한 6점, 소장자 K씨 집에서 압수한 2점, 인사동 M갤러리가 제출한 1점, 소장자 H씨의 작품 3점, 소장자 K씨의 작품 1점 등이다. 경찰은 14점 중 무슨 이유에서인지 소장자 K씨의 작품 1점을 뺀 13점만을 위작으로 판정했다.

이 화백이 밝힌 ‘경찰이 4점만 위작으로 하자’고 한 4점은 소장자 H씨의 작품 3점과 인사동 M갤러리가 제출한 1점이다.

그런데 이들 4작품은 한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현씨가 자신의 위작으로 거론했다는 것과 인사동 K갤러리, 그리고 부산 모 갤러리 김 대표와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다시말해 경찰과 검찰은 이우환 위작 사건을 위작범 현씨와 판매책 이씨가 짜고 위작을 만들어 인사동 K갤러리와 부산 화랑 김 대표를 통해 유통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들 4점이 그에 해당한다.

현씨가 위작했다는 4점과 경찰이 이 화백을 회유하면서 거론한 4점이 일치한다는 점에 이번 수사에 의문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위작’을 꿰맞추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경찰이 회유했다는 이 화백이 주장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실제 지난 1년여간 경찰은 이들 4작품과 관련됐다고 파악한 이씨와 인사동 K갤러리 김모 대표, 부산 화랑의 김 대표를 집중 추궁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4작품의 출처가 밝혀지면서 오히려 ‘진품??확인됐다는 말도 들린다. 소장자 H씨의 3점과 M갤러리 1점은 모두 부산 화랑 김 대표가 재일교포가 소장하고 있던 이우환 작품을 구입해 K갤러리를 통해 판매한 것이다.

이들 4작품의 본래 소유자는 이우환 화백과 같은 고향(경남 함안) 사람으로 빠징코 사업을 통해 거부(巨富))가 된 진모씨다. 이 화백은 진씨의 집에 하숙하며 신세를 졌고, 주로 고미술품을 수집하던 진씨는 이 화백을 통해 현대화에 눈을 뜬 후 유럽 근ㆍ현대화를 포함해 이 화백의 작품을 다수 구매했다.

부산 화랑 김 대표는 평소 알고 지내온 Y대 재단 고위 임원의 소개로 재일교포 사업가 남모씨와 윤모씨를 알게 됐고, 이들이 연결한 재일교포 거부 김모 회장을 통해 이우환 화백 작품 3점을 구입했다. 이후 소장자 진씨를 알고 있는 재일교포 사업가들로부터 신임을 얻은 김 대표는 두 차례 이 화백 작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김 회장이 직접 이 화백 작품을 국내에 들여왔고 이런 모습은 공항 CCTV에 담겨있을 테니 직접 확인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그러한 내용을 경찰 조사에서 모두 밝혔다고 했다.

김 대표는 2012년 5월 앞서 재일교포에게서 건네받은 이우환 작품 2점을 감정협회에 감정신청을 했고 이때 재일교포 소장가를 밝혔다. 감정협회는 재일교포 소장가 등과 통화해 경위서 등을 받은 후 진품감정서를 발급해줬다. 그해 7〜8월경 김 대표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를 만나 작품 2점을 확인하고 같은 방법으로 감정협회의 진품감정서를 발급받은 후 판매했다.

이우환 화백이 김 대표가 취급한 4점에 대해 “내 작품이 맞다”고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김 대표는 감정협회 측이 재일교포 소장가에게 직접 확인을 하고 작가가 감정한 작품들에 대해 시비를 하는 것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문제의 K옥션 작품에 담긴 ‘진실’

경찰이 위작으로 판정한 13점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지난해 12월 15일 K옥션에서 열린 정기 겨울경매에서 4억9000만원에 개인 컬렉터에게 낙찰된 1978년작 ‘점으로부터 No. 780217’이다.

위조 감정서가 붙어 논란이 일었던 이 작품은 올해 1월 초 경찰이 K옥션으로부터 압수해 감정위원단에게 진위 감정을 맡겼고, ‘안목 감정’ 결과 위작으로 결론났다.

하지만 이 작품은 출처가 분명하고 본래 진품으로 감정받았다. 이 작품의 원소유자는 천안에 사는 조모씨(2006년 작고)로 고위 공무원을 지낸 조씨는 서울에서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로 중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하고 미술에 관심이 많아 중국과 일본을 오가던 중 96년경 일본에서 나온 이우환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작품은 훼손이 심해 2000년대초 대전 모처에서 수리 복원해 2003년 서울의 김모((여, 59)씨에게 팔았다.

김씨는 지난해 4월 경 이 작품을 서울옥션 경매에 의뢰했다. 하지만 김씨가 기대했던 가격(10억원가량)과 서울옥션 측 감정가(5억원가량)에 큰 차이가 나자 회수했다. 서울옥션은 진품은 맞지만 수리ㆍ복원한 작품이어서 절반 정도의 가격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지난해 10월 K옥션 경매에 출품됐고 4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소장 최명윤), 민간 감정위원회, 한국미술품감평원 등 3개 기관은 올해 1월 경찰 의뢰로 위작 의혹이 제기된 K옥션 작품에 대해 과학ㆍ안목 감정을 시행하고 위작 의견을 냈다.

이들 기관은 그 이유로 ▦ 캔버스와 나무틀에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덧칠한 흔적이 있다는 점 ▦ 1960년대 이전 생산된 수제 못과 1980년대 생산된 고정침이 한 작품에 혼용된 점 ▦ 안료 등 표면 질감과 화면의 구도, 점ㆍ선의 방향성 등이 진품과 다르다는 점 등을 들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역시 경찰의 의뢰로 감정을 시행해 물감 성분과 캔버스 제작기법이 진품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위작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K옥션 작품을 감정한 관계자와 미술전문가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국제미술과학연구소, 한국미술품감평원 등의 ‘위작’ 판정에 의문을 나타냈다. 수리ㆍ복원한 작품으로 원화와는 다른 물감이 사용된 점, 수리ㆍ복원하는 과정에 덧칠한 흔적이 나타날 수 있는 점, 안료 등 표면 질감이 진품과 다르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점.선의 방향성 등도 원화를 그린 이 화백 고유의 호흡, 리듬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당시 감정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처음 작품을 볼 때 무언가 뿌옇게 덧씌워져 이우환 작품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는데 자세히 보고 수리복원된 부분을 걷어내면 진품이 맞다”고 했다.

이우환 화백도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수리 복원이 형편없이 됐지만 내 작품이 맞다”고 했다.

13점 작품 중 논란의 여지가 큰 K옥션 작품이 위작 시비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의도’가 엿보이고,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게 미술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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