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보카트호가 마침내 23명의 태극전사를 승선시키고 2006독일월드컵을 향한 대항해를 시작한다.

11일 세계의 눈과 귀가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 집중됐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7개월 만에 월드컵 최종엔트리를 발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취재진이 발디딜 틈 없이 운집한 가운데 아드보카트가 직접 발표한 엔트리에는 김병지와 차두리가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송종국이 극적으로 승선하는 ‘작은 이변’ 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균형과 조화가 태극전사 운명을 갈랐다

엔트리 발표 하루 전날까지 머리를 쥐어 짤 정도로 고민에 빠졌던 아드보카트의 人선 기준은 명확했다. 바로 팀 밸런스(균형)였다.

월드컵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깜짝 발탁은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넘쳐나는 공격수 자원에서 과감하게 차두리를 뺐고,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이라 불리는 수비에서 2002년 월드컵에서 오른쪽 윙백으로 맹활약한 송종국이 발탁된 것이 그 예다. 또 주장 이운재를 배려하기 위해 백전노장 김병지 대신 김용대를 과감하게 발탁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최종엔트리 발표를 한 후 인터뷰에서 ‘조화와 균형’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적절한 선수 자원 배분을 통한 포지션간 밸런스, 전체 선수들 간 팀워크, 선수 간의 위계 질서, 끈끈한 심리적인 연대감 등을 중시하겠다는 의미다.

선수들 경험 배려에도 아드보카트의 황금비율이 그대로 적용됐다. 23명의 태극전사 중 2002년 4상 신화의 주역을 10명을 포함시켰다. 이들을 주전으로 전술의 밑그림을 그리고 이호, 백지훈, 조원희, 김진규 등 젊은 피를 수혈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산이다.

남은 3대 과제를 풀어라

23명의 태극전사가 결정된 만큼 남은 4주 동안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간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체력 훈련이다. 일단 올 초 41일간의 지옥의 전지훈련과 소속팀 리그에서 숨가쁜 일정을 소화한 이들에게 휴식은 필수적이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해 예정된 훈련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짧은 휴식 뒤에는 지옥의 체력훈련이 예정돼 있다. 예정보다 하루 앞당긴 14일 대표팀을 소집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또 하나의 야심찬 체력강화 훈련프로그램을 짜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복안이다.

2002월드컵 당시 악명 높았던 파워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면서 4강 신화를 도운 ‘저승사자’ 레이몬트 베르하이옌 피지컬 트레이너가 이미 입국해 대기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전지훈련 캠프인 스코틀랜드에서는 또 한 명의 피지컬 트레이너가 합류한다고 밝혔다. 체력을 기본으로 빠른 공수전환이 이뤄지는 현대 축구에서는 체력 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포백 수비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수다.

포백은 한국축구가 역대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전술인 데다 천하의 히딩크도 실패한 수비 포메이션. 하지만 아드보카트는 수비 중심의 스리백 대신 좌우 윙백의 오버 래핑을 앞세운 공격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포백 수비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안정감이 떨어진다. 네 명이 일자로 서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포백 수비는 완성도 면에서는 80%도 채 되지 않는다. 이영표(김동진)-김영철(김진규)-최진철(김상식)-송종국(조원희) 등으로 이어지는 포백라인이 얼마나 빠른 시간 내 제자리를 잡을지가 관건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실전을 통한 자신감 회복이다.

월드컵 본선까지 한국은 4차례 평가전을 치르며 독일월드컵을 준비한다. 23일 세네갈,26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아나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고, 27일엔 스코틀랜드로 이동해 노르웨이, 가나와 잇따라 최종 평가전을 벌인다.

지난 2002년 히딩크호가 프랑스와 잉글랜드 등 강 팀과 경기에서 선전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듯이 이번 평가전도 자신감 회복의 계기가 되야 한다. 특히 원정경기에서 승리해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대한 부담을 떨치는 것도 과제다.

본선에서 맞춤형 전술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상대에 대한 분석을 80%이상 끝낸 만큼 세부적인 전술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단 16강 진출이 1차 목표다. G조 예선 3게임에서 아드보카트호가 보여줄 전술은 미드필드진의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날 공산이 크다.

1승 제물로 찍어놓은 토고는 포백 수비라인과 중앙 수비가 약점으로 꼽힌다. 한국은 다소 공격적인 포메이션으로 대량 득점을 노린다.

스리톱 아래 김남일과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을용을 전진배치시켜 박지성-박주영으로 이어지는 공격라인을 가동, 파상공세를 펼칠 계획이다. 중앙이 막힐 경우 이영표와 조원희 등 윙백의 오버래핑을 통해 숨쉴 틈을 주지 않을 계획이다.

문제는 프랑스전. 최강의 공격력을 갖춘 만큼 수비에 신경이 많이 써야 한다. 한국은 일단 수비에 두터운 벽을 쌓는다. 포백라인 위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하는 ‘더블 볼란테’로 프랑스의 공격을 끊을 예정이다.

김남일과 투지 넘치는 이호가 중원에서 상대를 압박하고 한 방의 패스로 원톱에 선 안정환이나 조재진에 연결해 역습에 나선다. 김남일이나 이호를 지네딘 지단의 전담수비수로 기용해 프랑스 공격의 맥을 끊을 작전도 세워놓고 있다.

스위스전에서는 박지성의 활용 폭이 최대 쟁점이다.

탄탄한 조직력의 축구를 하는 스위스는 중앙 수비가 약하다. 박지성이 중앙에서 저돌적으로 공간을 헤집고 돌아다닐 경우 많은 찬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박지성을 전진 배치시키고 그 뒤에 김두현을 투입해 중앙 공격수를 늘리는 방법도 고려 대상이다.

매직 아드보카트,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2002년에도 그랬듯이 모든 시선은 이제 태극호의 사령탑에 맞춰진다.

지난해 9월 말 한국축구의 구세주로 입국한 아드보카트 감독은 11일 “목표는 16강이다. 하지만 16강에 간다면 이후에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2002년의 신화를 재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게다가 11일 전 자신이 몸담았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레인저스 경기를 참관한 후 “세계최고가 되기 위해 감독은 단 1분도 쉴 틈이 없다”고 일갈했던 그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그의 목표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메시지다.

대한민국의 4500만 붉은악마들도 이제 “아드보카트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제 한달 후면 우리는 그의 능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