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풍년·관중 폭발… "역시 화끈해"공격적 포메이션과 뛰어난 용병술로 '서울 돌풍' 진두지휘, 선수들도 자신감 충천

3월 21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삼성하우젠컵 경기에서 FC 서울 박주영(가운데)이 수원 삼성을 맞아 후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기뻐하고 있다. 이날 박주영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07 K리그에 ‘귀네슈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1월 프로축구 FC 서울의 지휘봉을 잡은 ‘터키 명장’ 세뇰 귀네슈 감독은 시즌 5연승의 파죽지세를 이어가며 K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알찬 선수 구성에도 불구, 매 시즌마다 정상 도전에 실패했던 FC 서울을 환골탈태시킨 그의 카리스마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을 4강에 진출시킨 ‘히딩크의 마법’과 비교될 정도다.

5연승의 내용을 살펴보면 귀네슈 열풍이 왜 히딩크의 마법과 비교되는지 잘 알 수 있다. 서울은 귀네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후 치른 다섯 경기에서 13골을 몰아치며 단 한 골만을 내주는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특히 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라이벌 수원과의 컵대회 2차전은 ‘귀네슈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기였다. 서울은 전반 6분 마토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박주영의 해트트릭과 정조국의 쐐기골을 묶어 4-1,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K리그를 삼켜버릴 듯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귀네슈 열풍’을 분석해본다.

▲ 감독 하나 바뀌었다고 이렇게 달라지나

귀네슈 열풍의 놀라운 점은 FC 서울이 지난 시즌과 비교해 인적 구성면에서 별다른 변동 사항이 없음에도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실이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전혀 다른 ‘훌륭한 맛’을 내고 있으니 귀네슈 감독의 용병술이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은 지난 시즌 스리백 수비를 바탕으로 한 3-5-2 포메이션으로 주로 경기에 나섰다. 세 명의 중앙 수비수에 더해 양쪽 측면 미드필더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가운데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한 수비 지향적인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한 것. 그러나 시즌 초반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렸고 팬들로부터 “재미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귀네슈 감독은 부임 이후 공격 축구를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고 강릉과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을 거치는 동안 포백라인을 기초로 한 공격적인 4-4-2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꾀했다. 특히 귀네슈 감독이 일부 선수들의 포지션에 변화를 준 것은 100% 적중하고 있다.

지난 시즌 벤치를 지키던 시간이 많았던 미드필더 최원권은 포백라인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최원권은 올 시즌 5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 공수에 걸쳐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서울 돌풍’의 숨은 주역이다. 특히 오버래핑에 의한 적극적인 공격 가담력이 돋보인다.

지난해 중앙 수비수로 수비진을 이끌던 이민성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진배치됐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그는 이청용(19), 기성용(18) 등 나이어린 선수들을 안정적으로 지휘하며 ‘서울 돌풍’의 진원지인 미드필드 라인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소속팀과 청소년대표팀(20세 이하)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이청용의 포지션을 오른쪽 날개로 변경시킨 것은 귀네슈 감독 용병술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 빛 발하는 '영건'들 그라운드 휘저어

앞서 언급한 이청용을 비롯해 기성용, 김동석(19) 등 서울의 ‘영건’들은 귀네슈 감독 부임 이후 빛을 발하고 있다.

귀네슈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서울의 공격력에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던 용병 히칼도를 벤치에 앉히고 이들을 중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특히 이청용은 발군의 스피드와 개인기를 발휘하며 1골 4도움을 기록하며 ‘귀네슈 돌풍’을 주도하고 있다.

이청용의 성공 비결은 포지션 변경에 있다. 귀네슈 감독은 스피드와 개인기가 뛰어난 그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중앙 미드필더에서 오른쪽 날개로 보직을 변경했다.

이청용은 “포지션이 바뀌며 수비 부담이 줄어든 것이 올 시즌 자신감을 갖고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청용은 지난 시즌 개막전에도 깜짝 선발 출전했지만 경험 부족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두 번째 경기 중간에 교체 아웃된 후 2군으로 추락했다. 자칫 진흙 속에 묻힐 뻔한 진주가 귀네슈 감독을 만나며 찬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기성용은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구와의 올 시즌 개막전에서 깜짝 선발 출전, 1군 데뷔전을 치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선수 기용이었다. 홈에서 열리는 데뷔전에서 1군 경기 출전 경험이 전무한 어린 선수에게 중원을 맡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기성용은 개막전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플레이를 펼쳤지만 꾸준히 기용되면서 활기찬 플레이로 서울의 중원 지배에 힘을 보태고 있고, 우루과이와의 친선 경기에 앞서 발표된 26명의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동석도 5경기에 모두 출전, 도움 1개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이 지난 겨울 별다른 전력 보강을 하지 않고도 전력이 업그레이된 배경에는 이들 ‘영건’들을 효율적으로 기용하고 있는 귀네슈 감독의 용병술에 힘입은 바 크다.

▲ 강력한 카리스마, 화끈한 쇼맨십

FC 서울의 환골탈태에는 귀네슈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자리하고 있다. 그는 시즌 초반 연승을 달리고 있을 때도 “아직 100% 만족할 수는 없다”며 선수들을 다그쳤다. 경기 결과 못지않게 내용도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 3월 14일 광주와의 컵대회 1차전에서 5-0으로 완승을 거둔 후에도 귀네슈 감독은 “선수들이 후반전 스코어 차가 크게 벌어지자 느슨한 플레이를 펼쳤다. 열심히 뛰고 있지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경기 내용에 만족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21일 수원과의 라이벌전에서 1-1로 맞선 하프타임에도 선수들에게 “우리의 능력만 발휘한다면 4-1, 5-1의 대승도 거둘 수 있다”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었고 귀네슈 감독의 발언은 현실로 이뤄졌다.

경기에 누가 나설지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기도 하다. 훈련에서 경기에 나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시킨다면 누구든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 반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이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훈련에서 불성실한 자세로 임한 외국인 선수 히칼도의 경우 5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출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다스리지만 팬들에게는 누구보다 부드럽게 다가서는 것이 귀네슈 감독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는 항상 ‘팬들을 먼저 생각하는 축구’를 부르짖는다. 취임 일성으로 화끈한 공격 축구를 내건 그는 ‘축구는 쇼’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취임 인터뷰에서 이런 소신을 밝히며 프로축구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고 팬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고 말했고, 이를 실현하고 있다. 수원과의 경기에서 3-1로 앞선 후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끝에 4-1 대승을 거둔 그는 경기 후 “내가 말한 공격 축구는 바로 오늘 같은 경기”라고 기염을 토했다.

경기장에 항상 응원용 목도리를 목에 걸고 나오고 홈 경기가 끝나면 선수들과 함께 서포터스석으로 이동, 환한 웃음으로 성원에 보답한다. 관중석에서 손을 내밀고 사인 요청을 하는 팬들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라커룸에 들어서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추억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말하는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귀네슈 열풍’은 화끈한 공격 축구로 무장한 수준 높은 경기력, 팬들을 우선시하는 마인드를 바탕으로 한 관중몰이 등 한국 프로축구가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고국 터키 대표팀을 이끌고 3위에 등극하며 ‘투르크 돌풍’을 일으켰던 그가 K리그 부임 첫해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귀네슈 열풍’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