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바이! 박지성… 화려했던 프로경력

박지성은 아시아인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수였다 ⓒAFPBBNews = News1
'한국축구의 아이콘' 박지성(33)이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성은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성은 "이 자리를 통해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는 것을 밝힌다"며 현역 은퇴 선언을 한 후 "거취에 대해 많은 얘기가 있었지만 사실 지난 2월부터 은퇴를 결심했다. 무릎부상이 결정적인 이유다. 그건 아쉬울 뿐 축구 선수생활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충분히 즐겼다"며 홀가분한 마음을 밝혔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7월 27일 연인 김민지 전 SBS 아나운서와 결혼한 후 유럽에서 지내며 미래를 생각해볼 것이다. 지도자 계획은 없다. 향후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할 것이다"고 밝혔다.

돌아보면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교 졸업반 때에는 그를 찾는 팀도 없었다. 네덜란드 진출 직후에는 슬럼프로 많은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특유의 성실함을 앞세워 기어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대한민국, 나아가 아시아 축구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훌륭히 해낸 뒤에야 비로소 축구화를 벗게 된 박지성의 프로선수로서의 경력과 국가대표로서의 경력을 각각 조명해봤다.

외면 받던 선수에서 J-리그 진출, 그리고 유럽행

박지성은 평발이었다. 또래에 비해 체격도 작았다. 1999년 수원공고 졸업 이후 대학팀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이유다. 자칫 미아가 될 뻔했지만 다행히 김희태 당시 명지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대학 무대에서는 특유의 활동량을 앞세운 플레이를 선보였다. 허정무 감독의 눈에도 띄어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2000년 6월 그는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박지성의 연습경기를 지켜본 키무라 분지 당시 교토 감독이 단번에 입단을 제의했다. 박지성은 프로 첫해 리그 13경기를 뛰며 일본 축구에 적응했다. 이듬해 38경기에 출전해 3골을 터뜨리며 팀의 1부리그 재승격을 도왔다.

2002년은 그의 인생을 바꾼 터닝포인트였다. 1부 리그로 재승격한 팀의 주전으로서 리그 25경기에 출전해 7골을 터뜨렸다. 일왕배에서도 결승전 동점골을 터뜨리며 우승에 일조했다. 2002 월드컵에서의 맹활약도 더해지며 결국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당시 월드컵대표팀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 새 둥지를 틀었다.

네덜란드에서의 초반은 만만치 않았다. 슬럼프를 겪으며 현지 팬들로부터 야유도 받았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2004~05시즌 네덜란드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 44경기에서 11골을 터뜨렸다. 특히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는 멋진 선취골을 터뜨렸다. 그해 박지성은 팀의 리그-컵 2관왕과 챔피언스리그 4강의 주역이 됐다.

맨유의 핵심 선수로… 7년간 11개의 우승컵

네덜란드에서의 맹활약 덕분에 박지성은 2005년 7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영국)로 이적했다. 세계적인 명문 구단의 입단 소식에 국내 팬들은 열광했다. 한국인 최초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선수가 됐다.

물론 그의 성공 가능성에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많았다. 마케팅을 위한 영입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박지성은 첫 시즌부터 45경기(리그 34경기)에 출전했다.

이듬해에는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맨유의 3년 연속 프리미어리그 제패에 일조했다. 2007~08시즌에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했다. 어느덧 그는 맨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선수가 되어 있었다.

2012년 2월, 그는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맨유에서 통산 200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입단 7년차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도 계속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맨유에서의 경력을 마무리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프리미어리그 우승 등 7년 동안 11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205경기에 출전해 27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2012년 여름,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아쉬움 컸던 Q.P.R… '유럽 친정팀'을 찾다

Q.P.R에 새 둥지를 튼 박지성은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됐다. 마크 휴즈(영국) 감독으로부터 많은 기대도 받았다. 그러나 고질적으로 따라다니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설상가상 팀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결국 사령탑이 해리 레드냅(영국)으로 교체됐다. 레드냅 감독 체제 아래 박지성의 자리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무릎 부상까지 겹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결국 Q.P.R의 강등과 함께 박지성은 유럽 친정팀인 아인트호벤으로의 복귀를 결정했다. 네덜란드에 복귀한 지 2경기 만에 골을 쏘아 올리며 자신의 '귀환'을 알렸다. 그는 한 시즌 내내 팀의 베테랑으로서 중심 역할을 다했다. 유럽대항전 4경기를 포함해 27경기에 출전해 2골을 터뜨렸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팀 동료와 수많은 팬들의 감동적인 고별식이 펼쳐졌다. 3만 여 명의 팬들이 응원가를 부르며 그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지성 역시 네덜란드어로 "고맙다"며 팬들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고별전이 치러진 2014년 5월 4일(한국시각) NAC브레다와의 경기는 박지성의 프로생활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됐다.



김명석 기자 holic@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