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수준 저하&경기침체,악화
‘FA 지갑’ 닫았다

125억을 받고 NC로 이적한 양의지.
과대평가(過大評價). 어떤 것의 가치나 수준을 실제보다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야구는 시장의 논리로 움직인다. 한국 야구는 꼬여 있다. 리그의 수준은 높지 않은데, 야구를 잘하는 선수는 부족하다. 여기에 10개 팀이라는 수요는 넘치니 몸값은 자연스레 높아졌다.

과대평가는 FA(자유계약) 제도를 통해 몸을 불렸다. 팀 성적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각 구단은 많은 돈을 들여서 검증된 선수를 사려고 한다. 하지만 수요가 부족하니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구매가 어렵다. ‘꿩 대신 닭’의 심정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선수 숫자가 워낙 적다보니 경쟁이 붙으면 닭이 꿩 이상의 가격을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최근 100억대 이상의 계약을 이끌어낸 한 선수는 자신의 에이전트에 “정말 내가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되는 것이냐?”라고 반문할 정도로 스스로 놀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수를 놓치거나 팀 전력 강화에 실패하면 무능력한 구단으로 찍힌다. 한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설령 실패하더라도 거액을 주고 FA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데려오지 않고 쓴소리를 듣는 것보다 훨씬 낫다. 어쨌든 뭔가 한 것 아니냐”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모기업의 눈치도 봐야하니 구단은 눈 가린 경주마처럼 냅다 달려든다. 그렇게 커져간 과대평가는 프로야구 시장의 거품을 만들어냈다. 지난 2014년 FA시장은 무려 523억 5000만원(15명)이 시장에 풀렸고 2015년은 720억 6000만원(20명), 2016년은 더욱 증가해서 766억 2000만원(21명), 2017년은 703억원(14명)으로 3년 연속 700억을 돌파했다. 그리고 작년에 631억 5000만원(19명)을 찍었다. 말 그대로 찬란한 황금시대, ‘억’소리가 절로 났다.

그랬던 시장이 2019년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얼음이 됐다. 이보다 더 차가울 수 없다. 지난 5일 김민성이 LG로 ‘사인 앤 트레이드’ 되면서 해외 진출을 노리는 노경은을 제외하고 14명의 FA 선수들을 상대로 시장에 풀린 금액은 490억까지 떨어졌다. ‘거물’ NC 양의지의 125억과 SK 최정의 6년 106억이 아니었다면 더 낮아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베테랑은 완벽하게 찬밥 신세가 됐다. 꺼질 줄 몰랐던 KBO리그 몸값 거품이 단 1년 사이에 제대로 걷힌 셈이다.

먹구름 드리운 경제, 잔뜩 위축이 된 프로야구단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잡았다. 내년 전망치 역시 2.2%에 불과하다. 2% 중반에 미치치 못하는 성장률이 향후 2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쉽게 말해 먹고 살기 힘들고 경제가 어렵다. 소비 위축으로 인한 내수 부진, 여기에 수출까지 줄어드니 기업 입장에서는 잔뜩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특히나 매년 적자를 기록 중인 야구단을 운영하는 대기업에게 최근 경제난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예전에는 시장과 프로야구와의 온도 차가 컸다. 설령 모기업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해도 구단의 얼굴인 야구단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대내외적으로 홍보 효과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작은 삼성이다. ‘큰 손’ 삼성이 2016년부터 제일기획으로 이관이 되면서 투자가 대폭 줄었다. 그룹 차원의 지원이 끊겼고 매년 구단 예산이 삭감됐다. 야구뿐 아니라 수원 삼성, 블루팡스 등 축구와 배구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아꼈다. 업계 최고인 삼성이 지갑을 닫자 다른 구단도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FA 100억’이 지난 2017년 KIA 최형우 영입으로 깨지자 더욱 위기를 실감한 구단들은 선택과 집중, 확실한 선수를 데려오는 것에 집중했고 불필요한 경쟁에서 비롯된 과도한 투자를 최대한으로 피했다.

2018시즌 도중, 10개 구단 이사회가 소집되어 ‘FA 상한선 80억’이라는 시장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프로야구선수협회에 제안하는 목소리를 냈다. 선수들의 반발로 무산이 됐지만, 함께 제안했던 외국인 연봉 100만 달러 상한선은 곧바로 시행이 됐고 이는 2019년 FA로 시장에 나온 베테랑 선수들에 직격탄이 됐다.

3년 최대 18억 받고 LG로 간 김민성.
최정, 양의지 등 특급 선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소형 FA선수는 예년에 비해 훨씬 적은 금액을 받았다. 시장에 나온 15명 중 타 팀으로 이적을 한 것은 양의지와 김민성이 전부였다. 중소형급 선수 중에서도 사정이 나을 것이라 봤던 LG 박용택(2년 25억), KT 박경수(3년 26억), 삼성 김상수(3년 최대 18억)와 윤성환(1년 최대 10억)도 잔류에 그쳤다.
1년 10억 계약에 그친 삼성 윤성환.
4년 계약이라는 관행도 사라지면서 대부분 2~3년, 혹은 1년 단기 계약으로 맺어졌다. 다른 선수들 역시 차가운 시장 흐름에 고개를 숙이고 원 소속팀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리그의 수준 저하, 그리고 달라진 팬들의 인식

과대평가로 인한 거품, 이러한 흐름이 갑작스레 꺼진 것은 선수들이 자초한 부분도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야구의 인기는 급상승하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최근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탈락에 이어 작년 8월 아시안게임에서 절정을 찍었다. 금메달을 따냈지만, 경기 내용은 형편 없었다. 여기에 오지환^박해민 등 병역 논란까지 겹치면서 야구는 ‘깨끗하지 못하고 실력 대비 몸값 못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팬들의 뇌리에 박혔다.

발전도 없었다. 10년 전 에이스 김광현, 양현종은 여전히 리그를 군림하고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격차가 심한 종목임에도 불구, 최근 이정후나 강백호 등 신인들이 대거 좋은 활약을 보이는 것도 냉정히 말하면 리그 수준이 그 전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무조건 경쟁하고 이겨야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전쟁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이제 야구는 즐기는 오락이 됐다.

김성태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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