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로 독일로... 번역기 써가며 축구 배웠죠"

브라질을 거쳐 독일에서 축구유학 중인 강이삭. 그가 들고 있는 트로피는 용인레이번스 중등부 시절이던 2013년 MBC 꿈나무축구리그에서 받은 우승 트로피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았고, 치안은 불안하기만 했다.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만 수차례. 그러나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축구 그 자체였다. 강이삭(21·MSV뒤셀도르프)이 축구 유학길에 오른 것은 고1이던 지난 2014년. 당시 손민성 용인레이번스 단장의 도움을 받아 그는 홀로 브라질 유학길에 올랐다. 더 넓은 세상에서 축구를 배워보고 싶다는 일념이었다. 우여곡절은 많았다. 어린 나이에 만리타국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꿈을 좇는 과정에서 포기란 없었다. 덕분에 그는 3년여의 브라질 유학을 거쳐 이번엔 독일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꿈을 가진 대한민국 청년의 당찬 도전이다.

마음껏 축구하기 위해, 꿈 좇아 떠난 유학길

강이삭이 처음 축구와 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엔 취미생활이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지역별 중등리그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스스로도 축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그다. 결국 그는 자신의 진로를 축구선수로 결정했다. 강이삭은 “스스로 재능이 있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축구가 좋았다. 축구를 마음껏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신 시선은 해외로 돌렸다. 손 단장의 도움을 받아 브라질로 행선지로 정했다. 강이삭은 “결심 후 매일 아침 6시마다 10km씩 뛰면서 몸 관리에 나섰다”고 했다. 2014년 10월. 그는 브라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의 첫 소속팀은 론드리나 주니어. 생활은 팀 숙소에서 했다. 가장 큰 벽은 아무래도 언어였다. 그나마 학교에서 배웠던 기본 영어가 전부. 포르투갈어는 아예 모르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냥 미친 것처럼 먼저 다가갔다. 동료들도 웃으면서 좋아해줬다. 축구를 열심히 하다 보니 나중에는 말을 안 해도 친해졌다. 자연스레 친구들을 사귀었고, 혼자 공부하고 있으면 먼저 와서 도와줬다.” 언어뿐만 아니라 생활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홀로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한 치안이나 열악한 시설은 자연스레 향수병으로 이어졌다.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은 수없이 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오직 ‘축구’만 떠올렸다. 그는 “조금 더 참고 준비를 잘 해서 더 좋은 팀으로 가겠다고 다짐했다”고 돌아봤다. 다행히도 그는 브라질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또 다른 팀인 리우 브랑코에 새 둥지를 틀었다. 프로무대 직전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벽을 만났다. 갑자기 팀에 합류한 선수가 노골적으로 출전기회를 받았다. 브라질에선 금전 등 외부적인 요인이 출전에 영향을 크게 끼친다는 소문을 절감했던 시기였다. 그는 “사실 좌절감을 느꼈다. 머리라도 식히기 위해 잠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했다. 행선지는 독일이었다.

번역기 들고 무작정 찾아가 “축구하고 싶다”

독일에서 여장을 풀자마자 인근 축구장으로 향했다는 그다.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마침 축구장에선 한 팀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강이삭은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찾아갔다. 무작정 핸드폰 번역기를 켜서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다”고 웃어 보였다. 불쑥 찾아온 그의 당찬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감독은 그에게 입단 테스트 기회를 줬다. 독일어를 전혀 모르던 터라, 번역기를 써가며 어렵사리 소통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합격점을 받았다.

독일 6부에 속한 뒤셀도르프에 새 둥지를 틀었다. 2018년 여름.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물론 기대에는 못 미치는 하부리그 팀. 그러나 강이삭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기 때문”이라며 “독일에서 잘 적응하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았다. 17경기에 출전해 4골1도움을 기록했다. 주로 수비적인 역할을 맡고도 공격적인 상황이 나올 때마다 존재감을 뽐냈다. 덕분에 그는 구단과 정식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과정에서 두 가지 조항이 붙었다. 4부리그 팀으로의 이적 추진, 그리고 급여였다. 강이삭은 “브라질에서는 용돈 정도만 집에서 지원받았고, 독일에서도 처음 정착비를 조금 받았다”면서 “이제는 그런 지원조차 받지 않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친구들과는 ‘다른’ 경험$ 축구선교사가 꿈”

물론 또 다른 도전이 병행됐다. 앞서 브라질에서 느꼈던 언어의 장벽을 독일에서 또 다시 느껴야 했다. 현지 적응도 마찬가지. 그는 “포르투갈어도 어렵다고 느꼈는데, 독일어는 더욱 어려웠다. 브라질에서처럼 직접 자주 부딪히고 있다”며 “방을 구하거나 비자 발급 등 모든 것들을 혼자서 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당찬 도전의 끝엔 명확한 목표가 자리 잡고 있다. 강이삭은 “축구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축구 하나로 전 세계를 다니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6년 전 브라질 유학을 떠나기 전 밝혔던 꿈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최근 입국한 그는 친정팀 레이번스 후배들을 만나 강연을 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려주는 자리였다. 손민성 단장은 “(강)이삭이의 강연을 듣고 난 뒤 감명을 받은 후배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강연의 주제는 ‘나는 꿈을 간직한 대한민국 청년이다’였다. 1998년생 청춘의 당찬 도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주제이기도 했다. 강이삭은 “지금까지의 경험들은 앞으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해외에 혼자 나가는 것에 당사자도, 당사자 부모님들도 겁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한국 친구들과는 다른 경험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김명석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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