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 최고책임자 월권 행위 반복…궤도 벗어난 ‘프런트야구’의 예고된 참사 지적

손혁 전 감독(오른쪽). 연합

프로야구가 발칵 뒤집혔다. 리그 3위로 큰 역경없이 순항중인 키움히어로즈의 수장 손혁 감독이 지난 8일 돌연 사퇴를 선언한 것.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 부진’이었다. 손혁 감독은 구단을 통해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해 감독으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야구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당시 몇경기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2위 KT와의 게임차가 1경기밖에 나지 않아 포스트시즌 진출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넘볼 자격은 충분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자진 사퇴를 했다. 손혁 감독이 프로야구에 등을 돌릴 정도의 무모한 선택을 한 무책임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진 사퇴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결국 의혹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지난 겨울 ‘한국시리즈 준우승 감독’ 장정석 감독과 석연치 않은 재계약 불발과 비슷한 맥락의, 구단 수뇌부들의 압박과 비정상적인 운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준우승’ 감독과 결별한 히어로즈, 1년 만에 또 석연찮은 ‘감독 사퇴’

지난시즌이 끝나고 히어로즈는 3년 동안 팀을 꾸준히 상승시킨 장정석 감독과 결별했다. 석연치 않은 결정에 논란이 계속되자, 히어로즈는 “감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장 감독 재계약과 관련해 옥중에 있는 이장석 전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옥중경영에 연루가 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자료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장 감독이 허민 이사회 의장과 이장석 전 대표 등 구단 임원들의 정치 싸움에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돌았다.

그로부터 약 11개월 후인 올해 10월. 히어로즈는 또 비슷한 파문을 일으켰다. 계약 기간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그것도 시즌 내내 꾸준히 리그 상위권에 팀을 올려 놓은 손혁 감독과 결별했다. 시기는 달랐지만 구단 수뇌부의 압박 등 장정석 감독과의 결별 성격이 비슷했다.

물론, 구단 인사권자가 감독을 해임하는 일은 그리 큰 화젯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공감하기 힘든 손혁 감독과의 결별과 허민 의장의 비정상적인 운영도 함께 대두되면서 야구인들의 분노가 뒤따랐다.

지방 원정 중인 감독을 서울로 부른 뒤 다시 내려보내거나 선수들을 사적으로 불러 자신의 너클볼 구위를 평가하게 하는 등의 구단 수뇌부들의 행동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다.

구단의 사유화에 석연치 않은 감독 사퇴까지, 구단 수뇌부들의 ‘농간’에 결국 희생양이 된 것은 현장의 야구인들이었다. “히어로즈가 야구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분노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히어로즈식 기행적인 프런트 야구, 그냥 ‘오너십 야구’

히어로즈 구단은 꽤 오래전부터 ‘프런트 야구’를 표방해왔다. “감독은 필드매니저(Field Manager)다”라는 김창현 감독대행의 ‘소신’답게 감독은 경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관리를, 이외 전반적인 팀 운영은 프런트가 주도하는 시스템을 창단 직후부터 일찌감치 구축해왔다.

또 히어로즈는 전력분석팀을 필두로 세이버매트릭스 등의 데이터 야구도 함께 강조해왔다. 데이터 야구를 기반으로 히어로즈는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꾸준히 발굴해냈고, 팀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며 이젠 상위권을 노리는 팀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균형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데 있다. 데이터 야구를 강조하면서 현장 결정의 비중을 서서히 높이더니 최근엔 현장 코치들보다는 전력분석팀에 과하게 힘이 실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수들이 전력분석팀에 기대는 의존도도 꽤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연스레 현장 코치들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구단의 수뇌부들이 데이터 야구를 명목으로 현장에 개입까지 하면서 문제는 커졌다.

전력분석팀을 구단 수뇌부와 더그아웃을 잇는 전달 창구로 만들어서 문제가 됐다. 투수 기용과 대타-번트 작전까지 세부적인 작전을 지시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구단 수뇌부의 도 넘은 월권 행위에 현장의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감독 압박과 사퇴, 후임 선임 문제까지 모든 것이 구단 수뇌부의 입맛대로 흘러갔다. 사실 히어로즈의 감독 선임에 대한 잡음은 창단 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5명의 감독 모두 조용하게 물러나는 법이 없었고, 자진 사퇴나 재계약 철회 모두 경질의 성격이 다분했다.

이렇게 구단 수뇌부가 현장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겠는가. 그러니 허민 구단 이사회 의장이 선수들을 사적으로 불러 라이브 배팅을 시키거나 연습경기에 선발 투수로 나서 삼진을 잡고 포효할 수 있었고, 시즌 중 지방 경기를 앞둔 감독을 서울까지 부른 뒤 다시 내려보내는 만행을 저질러도 구단 내부에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분명 히어로즈는 수 년 전 이장석 전 대표의 경기 개입과 배임 및 횡령 등 구단 사유화 시도에 통탄하면서 다시 깨끗한 히어로즈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 전했다.

그렇게 읍소하면서 ‘경영 감시자’ 역할로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에 선임된 인물이 허민이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그것도 감시자 역할을 맡은 자의 기행으로 히어로즈는 똑같은 문제를 반복했다.

비단 히어로즈의 성적 부진이 과연 현장만의 탓일까. 프런트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구단은 책임에서 자유로운 걸까. 구단 안팎에서 기행을 펼치며 현장 인원들이 현장에 집중하지 못하게 흔든 장본인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윤승재 스포츠한국 기자 upcomi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