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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상당한 기퍼즈의원 소생시킨 한국계 의사 피터리, 미국 유명인사 됐다

'올해의 자유상' 수상… 이라크전쟁 참전, 수많은 총상 군인 치료
"지난 여름 서울 방문때 사람들이 나 알아봐 깜짝 놀랐다"
  • 피터 리
올해 신년 벽두 애리조나주 투산의 유망 여성 정치인 총기 피격 사건은 미국을 큰 충격 속에 몰아넣은 대형 사건이었다.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지난 1월 8일에 발생한 이 총기 난사 사건을 연일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머리에 치명적인 관통상을 입은 가브리엘 기퍼즈(40ㆍ민주ㆍ애리조나) 하원의원의 생사는 미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고, 그의 회복을 기원하는 촛불이 전국 곳곳에 밝혀졌다. 기퍼즈 의원이 입원한 투산의 애리조나 대학 유니버시티 메디컬 센터(UMC)에는 시민들의 기도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 병원의 한국계 외상외과전문의 피터 리(50)가 뉴스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기퍼즈 의원을 응급수술하고 진료를 담당한 피터 리는 매일 아침 수십 대의 TV 카메라 앞에 서서 기퍼즈 의원의 용태(容態)를 브리핑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미국민들은 안도하고 걱정했다.

그런 피터 리가 한미문제연구소(ICAS)가 수여하는 '올해의 자유 상(Liberty Award)' 수상자로 선정됐다. 크리스토퍼 힐,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대사, 해럴드 고(고홍주) 국무부 법률고문 등 한미관계에 기여한 인물이나 미국 내에서 활약한 한국계들이 역대 수상자들이다.

  • 가브리엘 기퍼즈. AP=연합뉴스
행사 참석을 위해 아들 마이클(16)과 함께 워싱턴 D.C를 방문한 피터 리는 지난 4일(현지 시간) "기퍼즈 의원은 정말로 운이 좋았으며 그의 회복은 기적 같은 것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했을 뿐인데 당시 갑작스럽게 각광을 받아 다소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피터 리에 대해 '벼락 유명인사'(Sudden Celebrity)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 여름 학술회의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다는 피터 리는 "서울 시내에서 뭘 사러 가게에 들어갔는데 점원이 나를 보더니 '피터 리 아니냐'고 하면서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고 웃었다.

당시 총격으로 머리에 중상을 입은 기퍼즈 의원이 응급실로 실려왔을 때 그 병원에 피터 리가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보도한 미국 언론도 있었다. 피터 리가 전쟁터에서 숱한 외상을 진료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외과 전문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토요일이었던 총격 사건 당일 아침 조깅을 하고 있던 중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곧바로 달려왔었다고 했다. 피터 리는 "그때 CNN 등 일부 언론은 기퍼즈 의원이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했다고 오보를 내고 사과 성명을 내기도 했다"며 당시 긴박한 상황을 상기했다.

하지만 피터 리는 기퍼즈 의원이 병원에 실려왔을 때 의식이 없는 가운데서도 의사의 손을 붙잡는 것을 목격했다. 대부분의 머리 피격 환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이런 반응을 보고 피터 리는 "기퍼즈 의원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초기에 예상했다.

피터 리의 의사 경력은 대부분 군에서 보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해 24년 동안 군의관으로 일했고, 전투에서 총상을 입은 수많은 군인들을 진료했고 아프간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종군했다"고 말했다.

피터 리는 지난 2001년 아프간전 개전 후 최초의 전진 작전 기지인 리노 캠프의 첫 종군 외과의로 파견됐고, 2005년에는 첫 이라크전 군의관으로도 투입됐다. 그 공로로 '국방무공훈장' '해군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 1988년에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외과주치의로 순방을 수행하기도 했다.

피터 리는 "일반 민간인 환자들과는 다른 전쟁 부상 군인들을 일반 병원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의 야전에서 진료한 종군 군의관으로서의 경험이 투산 총격 사건 때 기퍼즈 의원을 비롯한 10여명의 다른 부상자들의 총상에 대처하는데 큰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피터 리는 역시 의사였던 부친이 평화봉사단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 우간다로 가면서 5세 때 한국을 떠났다. 어린 시절을 우간다에서 보내다가 10세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에서 자랐다.

미국 유명의대 중 하나인 메릴랜드의 군의관 양성 의대(USUHS)에서 전문의 자격을 딴 뒤 군의관으로 활약했고 남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군의관 양성 프로그램을 지도하다 2007년 군에서 전역해 애리조나대 전문의 겸 교수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다.

피터 리는 "최근 15년 동안 한국에는 세 차례 가봤다"며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은 한번 서울에 가봤는데 신기하게도 맵고 짠 한국음식을 매우 좋아하고 미국에서도 한식당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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