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마감한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마감한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아마도 올해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결정을 예측하는 과정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문구일 것이다.

잭슨홀 미팅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각국 통화당국의 물가 문제에 대한 인식 수위가 예상보다 견고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반기 이후 경기가 둔화되더라도 지금은 무엇보다 물가 안정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는 것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잭슨홀 직전인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역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거의 동일한 뉘앙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를 먼저 강조하는 통화당국의 행보는 특정 국가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통화당국의 적극적인 물가 문제에 대한 인식과 강조가 채권시장에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려면 수치 상의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따라서 적어도 그 증거인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지표가 확인되기 전까지 채권시장의 반응은 ‘중앙은행들이 물가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겠구나’라는 정도였다.

결국 잭슨홀에서 시작된 채권시장의 경계 심리는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통해 한층 더 현실화된 불안으로 불거졌다.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3% 상승했다. 7월의 8.5%에 비해 수치가 낮았으나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8.0%를 웃도는 동시에 전월에 비해서도 0.1%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0.1% 하락을 예상했다. 특히 근원 CPI는 전월의 5.9%에서 6.3%로 큰 폭 반등하며, 추세적인 물가 상방 압력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보여줬다.

8월 휘발유 가격이 전월대비 10.6% 급락하면서 예상했던 대로 에너지가격의 하락폭은 더욱 확대됐다. 8월 중 유가가 서부텍사스유 기준 배럴당 80달러 가까이 떨어짐에 따라 미국 평균 휘발유와 디젤 가격이 전월대비 각각 13.8%, 10.1% 하락한 것을 반영했다. 더불어 상승 주요 요인이었던 중고차도 2개월 연속 내림세를 지속했으며, 항공운임 등 운송 가격도 전월대비 3.2% 하락했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이 전월대비 큰 폭 하락했음에도 물가가 상방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은 물가 상승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며, 에너지 가격 하락만으로 물가가 안정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금융시장은 즉각 매우 놀라움을 표시했다. 8월 미국 CPI 발표 이후 시장은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75bp 인상할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했고, 100bp 인상할 가능성도 반영했다. 물가가 발표되기 직전 75bp와 상당한 경합을 보였던 50bp 인상 가능성은 아예 배제됐다. 통화당국의 경고가 수치나 근거를 동반해 매우 강력하고 행동을 동반한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로 전환된 셈이다.

이번 물가 수치를 통해 파월 의장의 잭슨홀 연설 핵심 내용인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높은 수준의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higher for longer)’가 연상됐고, 물가의 경직성에 대해 금융시장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사실 올해 채권시장과 중앙은행은 물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놓고 시종일관 팽팽한 신경전으로 일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크게 의미를 둘만한 인플레이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낮은 물가로 인해 통화당국의 대응 역시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국한됐던데 반해 올해는 그간 직면하지 못했던 각종 행보들이 연달아 진행됐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올릴 때는 ‘베이비 스텝’(25bp)이라는 일종의 불문율이 ‘빅 스텝’(50bp), ‘자이언트 스텝’(75bp) 등으로 인해 차원을 달리했다.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이뤄지더라도 중립금리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상화 논리가 지배했던 통화정책 기조는 이제는 긴축도 불사하겠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처럼 채권시장과 중앙은행 간의 어색한 커뮤니케이션 오류는 곧바로 시중금리의 가파른 변동성 분출로 표현되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 이후 채권시장은 하반기 경기 둔화 가능성 제기됨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조기에 종료되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경기 침체로 인해 내년에는 기준금리가 인하될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됐다.

하반기 초반에 시중금리가 가파르게 하락한 것은 이와 같은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은행들은 계속해서 꾸준히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음에도 채권시장은 ‘경기 둔화 = 인상 중단 또는 인하’라는 익숙했던 등식으로 대응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시장과 당국 간의 소통 오류에 따른 부담이 고스란히 금리 변동성 분출의 형태로 나타난 경우라고 하겠다.

사실 연준 등 글로벌 통화당국들의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 안정이라는 고유의 목표를 겨냥한 고육책에 가깝다는 평가는 유럽중앙은행(ECB)의 행보를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ECB는 1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지난 7월 이후 다음 회의인 9월에 자이언트 스텝에 해당하는 75bp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경기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물가 목표치를 큰 폭으로 웃도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유로존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인해 경기 하강에 대한 위험이 높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물가에 대한 부담이 높아 경기 둔화를 감수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통화정책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ECB 역시 “올해 남은 기간과 내년 1분기까지 유로존 성장률 정체를 예상한다”는 경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성장 훼손을 감수하더라도 물가를 먼저 잡아야겠다는 선(先) 물가 대응 국면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역(逆) 환율전쟁 성격도 이번 75bp 인상에는 동시에 담겨있다. 기준금리 인상이란 조치 자체는 매우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물가가 가장 시급한 현안임을 새삼 확인하는 대목이다.

시중금리는 당분간 추가적인 상승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앙은행들의 강력한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의지를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물가, 저금리 상황으로 과소평가했던 상황들에 대한 되돌림 과정들이 추가될 수 있다. 다만 높아진 금리 레벨에도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시중금리의 정점 탐색 과정 역시 동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 프로필

-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사, 서강대학교 경제학 석사 - 이데일리 뉴욕특파원(2002년~2003년), 한국은행 출입기자(2004년) - 토러스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에서 채권 애널리스트로 활동 - 2010년 하반기 2011년 상반기 한경비즈니스 베스트애널리스트 채권부문 1위 - 2017년 2021년 한국은행 총재 표창 - 2017년~ 현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채권 애널리스트


공동락 칼럼니스트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