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항공
사진=대한항공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 절차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달 유럽연합(EU)이 합병에 조건부로 승인함으로써 기업결합을 승인받아야 하는 국가 14개 중 미국만 남게 됐다.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막판 결정. 시장 독과점에 대한 엄격한 잣대로 자국 항공사인 제트블루와 스피릿 항공 간 합병을 불허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국내 항공업계는 4년 전으로 되돌려진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양사 간 합병은 2020년 11월 KDB산업은행이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아시아나의 인수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직전까지 아시아나는 실질적인 파산 상태였다. 2019년 3월 감사보고서를 통해 전년도 1조1890억 원의 미상환채무에 대한 분식과 재무적 부실이 드러나 박삼구 회장이 퇴진하면서 공개 매각이 진행됐다. 계약까지 맺으면서 순탄해 보였던 HD현대산업개발의 인수가 백지화되자 부실을 떠안은 채권단은 급해졌다.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은 통합을 제의했고, 한진칼 조원태 회장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해당사자 모두 상생의 묘책이었다.

합병이 성사돼 ‘거대 대한항공’이 탄생한다면 우리 항공산업으로선 전화위복이고 세계 항공업계엔 새로운 메이저 강자의 등장이다. 경쟁적 관계에 있는 당사국들이 그토록 승인을 꺼려온 이유다. 국내에선 대한항공이 공룡이지만 국제무대에선 다르다. 몸집이 턱없이 작다. 운송실적과 공급능력 모두 20위권 밖이다. 선두그룹엔 아메리칸, 델타, 유나이티드의 글로벌 3사 체제가 확고하고, 유럽의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KLM, 브리티시항공, 중국의 남방항공, 동방항공, 국제항공, 중동의 에미레이트항공과 카타르항공 등이 국제 항공시장의 메이저들이다. 이제야 비로소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시장 지위에 걸맞는 ‘국대’가 등장하는 셈이다.

외생변수에 민감한 항공운송업은 기복이 심하다. 9.11테러, 코로나19처럼 큰 시련이 있을 땐 각국의 대표 국적사라도 파산하고 대표 국적사 간의 인수합병도 일어날 만큼 역동적인 시장이다. 지금 세계 항공업계는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역별로 편차는 크다.

국내시장이 협소한 우리나라는 국제선이 중국, 일본에 편중돼 아·태지역의 더딘 회복세가 여전히 걸림돌이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중동 사태의 장기화, 금리상승과 인플레이션, 달러 강세에 따른 외화부채 부담 등 항공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낙관적이지 않다. 이들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증가는 유가 상승, 무역 감소 등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와 함께 여행객과 물동량의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시장의 성장과 수익성의 개선은 올해도 지속되겠지만 속도는 그래서 작년에 비해 느릴 것이다.

거대 대한항공의 등장에 대해 일부에선 독과점 폐해와 소비자 편익의 감소를 우려한다. 그러나 바깥을 봐야 한다. 국제노선은 가격과 서비스로 ‘국대’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다. 두 국적사의 통합이 가져올 효과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첫째, 항공운송의 산업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다. 운송의 중심은 항공기가 드나드는 공항. 동북아 허브공항을 지향하는 인천공항은 늘 환승객 유치로 어려움을 겪는다. 여객 환승률은 2013년 18.7%, 화물의 환적률은 2011년 45.6%를 각각 정점으로 계속 감소 중이다. 서비스와 운송실적으로는 세계 정상급이지만 국제공항의 경쟁력 지표인 환승률은 11%대까지 하락해 외국의 허브공항들에 한참 밀린다. 항공사의 공급력이 집중되는 허브에서 항공기 이착륙을 위해 할당받은 시간, 즉 슬롯의 점유율이 이를 뒷받침한다. 에미레이트항공은 허브인 두바이 공항 슬롯의 68%, 루프투한자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슬롯의 67%를 차지할 만큼 각국의 허브공항은 곧 국적사들의 안방이다. 아메리칸항공은 댈러스공항의 85%를 쓸 정도다.

우리 국적사는 어떤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허브인 인천공항의 슬롯 점유율은 합해도 39% 수준. 그나마 두 국적사가 나눠쓰다 보니 경쟁력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 허브공항으로 제구실을 못한다는 건 공항의 수입뿐 아니라 여객·화물이 우리 국적사로 바뀌는 데 따른 수익을 충분히 창출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두 국적사의 통합은 네트워크를 집중시켜 인천공항의 허브화와 항공운송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내선이 매우 제한된 국내시장에선 중·단거리 지선과 장거리 간선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성도 원활해진다. '분산된 슬롯의 재분배와 스케줄 최적화'는 허브공항의 환승을 도울 것이다.

둘째, 소비자의 편익이 늘어난다. 성립할 수 없는 독과점의 폐해를 우려한다면 이는 국제항공에 대한 오해다. 더구나 국내외의 기업결합 승인조건에 따라 대한항공은 임의적인 운임 인상이 불가능해지는 반면,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확대된다. 국적사의 운임이 높으면 고객은 언제든지 외항사로 갈아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결합을 승인하면서 운임 인상의 제한, 공급좌석 수의 축소금지, 서비스 품질 유지, 마일리지 통합 등 4가지 조건을 달아 소비자 편익의 저해 가능성을 꽁꽁 묶어놨다.

분기별로 좌석 등급별 평균 운임을 2019년 대비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 이내로 관리하고, 당시 공급좌석 수 대비 일정비율 미만으로 공급 축소를 금지함으로써 운임 인상은 사실상 어렵게 돼있다. 한편 두 항공사의 고객 통합에 따라 신규 취항지에 대한 수요를 확보하고, 중복시간대 운항 스케줄 조정을 통해 생기는 여유분의 항공기를 신규 취항지에 운용할 수 있는 효과가 기대된다. 이는 지금까지 경쟁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운영 중인 기존 취항지 역시 시간대를 다변화해 소비자가 원하는 출발 시간대에 맞춰 스케줄을 구성할 수 있어 이용객의 편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

셋째, 항공산업 생태계의 동반 성장이 촉진된다. 항공산업은 우리나라에서 연관산업을 포함해 GDP의 약 3.4%를 차지한다. 창출하는 일자리가 84만개에 달하는 핵심 국가기간산업이다. 두 국적사의 통합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는 생태계로 산업을 재편할 것이다. 확장되는 네트워크를 통해 규모의 경제가 강화됨으로써 자원 운용의 생산성 향상이 연관산업으로 파급돼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와 동반 성장을 유발할 것이 기대된다.

예를 들어 구매 물품의 품목 단순화로 품목당 물량증가 효과가 기대되고, 이에 따른 협력사들의 생산효율이 증대되는 등 대량 거래에 따른 협력사의 사업 효율성 개선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운송 네트워크와 운항 스케줄을 시장수요에 맞게 재편함으로써 여행사는 더욱 효율적으로 패키지 상품을 구성할 수 있게 되고, 이로 인한 여행업계의 수익 개선은 관광산업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 밖에도 정비물량의 증가에 따라 MRO와 같은 연관산업의 적극적 투자가 가능해져 지금까지 해외로 나가는 정비물량을 국내로 돌릴 뿐 아니라 해외의 정비수요를 국내로 흡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항공은 국익을 걸고 대표 항공사끼리 운임과 스케줄, 서비스로 경쟁하는 시장이다. 국내선이 많아 간선과 지선이 잘 연계된 미국과 중국의 3사, 일본의 2사 경쟁체제를 제외하면 각국은 1국 1사 체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국적사 합병의 효과는 한마디로 규모의 경제다. 시너지는 다양하게 구현될 것이다. 그동안 중국과 중동 항공사들의 물량 공세로 꾸준히 잠식당해 온 장거리 노선에서도 회복이 기대된다.

 


허희영 항공대학교 총장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