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선임여부 등 이목 집중…‘거수기’된 사외이사 문제 제기

금호석유화학 본사. 사진=금호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 본사. 사진=금호석유화학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주주총회(주총)’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주총에서는 사내외 이사 선임을 비롯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분기배당 도입 등의 안건이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특히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선임 여부, 주주환원, 등기이사 보수한도 상향, 국민연금의 움직임,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 등이 핵심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최근에는 ‘거수기’ 역할만 하는 500대 기업 사외이사들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500대  주요 기업 가운데 사외이사가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만 한 기업의 비중이 전체 90%를 넘긴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년인 2022년까지만 해도 이들 기업의 비중은 88% 수준이었다.

주요 기업들 사내외 이사 재선임 소식

주요 기업들의 사내외 이사 재선임 소식이 나오고 있다. 먼저 롯데지주가 신동빈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오는 28일 열리는 정기 주총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현재 신 회장이 이사회에 참여 중인 기업은 롯데지주·롯데칠성음료·롯데케미칼 등이다.

이와 함께 고정욱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며 노준형 롯데지주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혁신실장은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한다. 사외이사로는 권평오 전 코트라 사장과 이경춘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대표변호사, 김해경 전 KB신용정보 대표이사 사장, 박남규 서울대학교 경영학 교수를 재선임한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효성티앤씨 사내이사 재선임에 성공했다. 동생인 조현상 효성그룹 부회장도 효성첨단소재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공덕동 효성빌딩에서 열린 효성티앤씨 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통과됐다. 같은 날 오전에 열린 효성첨단소재 주총에서는 조 부회장의 효성첨단소재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효성티앤씨의 이번 주총에서 조 사내이사 선임안에, 효성첨단소재 주총에서 조 사내이사 선임안에 각각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조 부회장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50% 가까이 되다 보니 지분율 9% 안팎인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통과됐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오는 29일 열리는 OCI홀딩스의 정기 주총 안건 7건에 대해 모두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OCI홀딩스는 지난 6일 주총 소집결의를 통해 공시한 바 있는 이우현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비롯해 임주현, 김남규의 사내이사 후보 선임의 건 및 이현승, 장찰스윤식, 김옥진의 사외이사 선임의 건 등을 의결 안건으로 상정했다.

ISS는 세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업의 주총 안건을 면밀히 분석해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전문기관으로, 세계 투자자의 70% 이상이 ISS 의견을 참고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OCI홀딩스 관계자는 “ISS가 이번 주총 안건 중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사장과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의 OCI홀딩스 사내이사 후보 선임 건에 대해서도 찬성을 권고했다”며 “향후 OCI홀딩스와 한미약품그룹 간 통합 절차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랜기간 잡음 많던 기업들의 주총

오랜기간 경영권 분쟁 등으로 잡음이 많았던 기업들의 주총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먼저 금호석유화학과 차파트너스의 갈등이 오는 22일 정기 주총을 앞두고 심화되고 있다. 대체로 차파트너스가 문제를 제기하면 금호석유화학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태다.

앞서 차파트너스는 금호석유화학이 경영상 독립성이 결여됐다며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축하고 이사회 10석 중 1석은 분리 선출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제안했다. 또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것도 제안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차파트너스가 경영권을 흔들기 위해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개인 주주들의 권익을 명분으로 이사회를 흔들기 위한 작업으로 보고 있다.

박철완 전 상무의 대리인인 차파트너스는 주주 권익 증진을 위한 주주제안을 준비 중이라고 주장하지만, 금호석유화학은 왜곡된 주장으로 회사를 흔들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모두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면서 일단 무게추는 금호석유화학에 기운 것으로 분석된다.

남양유업이 오는 29일 정기 주총을 열고 윤여을 한앤컴퍼니(한앤코) 회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을 논의한다. 남양유업은 지난 6일 주총에서 윤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라고 공시한 바 있다. 윤 회장은 웅진식품 이사회 의장과 기타 비상무이사 등을 맡은 바 있다. 이와 함께 배민규·이동춘 한앤코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도 상정했다. 사외이사 후보로는 이명철 한국파스퇴르연구소 이사장이 추천됐다. 제이더블유신약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이 이사장은 주총을 거쳐 신규 선임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1월 4일 대법원은 한앤코가 남양유업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양도 소송에서 원고승소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앤코는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2021년 5월 진행했던 기존 홍원식 회장 일가와의 주식양도 계약에 따른 양수대금 3100억원을 홍 회장 측에 전액 입금했다.

한국타이어는 오는 28일 정기 주총을 열고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결의할 예정이다. 같은 날 이수일 대표이사(부회장), 박종호 경영지원총괄(사장) 등 전문경영인 2인이 사내이사에 재선임되면 조 회장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전망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후보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찬성했다. 이에 오는 21일 열리는 포스코홀딩스의 주총에서 장 후보의 회장 선임이 유력해졌다는 전망이다. 앞서 글로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장 후보의 선임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심의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KT&G 신임 사장으로 내정된 방경만 수석 부사장의 주총 선임 안건을 놓고 주주 공세가 여전하다. 주요 주주인 IBK기업은행과 행동주의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가 연합을 이뤄 전방위 공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KT&G는 이들의 주장에 정면 반박하며 주총 표대결에 앞서 방어전을 치르는 모습이다.

KT&G는 오는 28일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이번 주총에는 대표이사 사장과 이사 선임 안건이 상정돼 있다. 후보는 KT&G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사장 후보로 낙점한 방 사장 후보(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추천자인 임민규 엘엠케이컨설팅 대표이사(KT&G 이사회), 손동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IBK기업은행) 등이다.

주요 유통사·금융사 주총도 임박

국내 주요 유통사의 주총 일정은 이달 ▲21일 BGF리테일·GS리테일·신세계 ▲26일 롯데쇼핑·현대백화점 ▲28일 이마트 등으로 집계된다. 먼저 홍석조 BGF그룹 회장 장남인 홍정국 BGF 대표이사 겸 BGF리테일 부회장은 이번 BGF리테일 정기 주총에서 사내이사에 신규 선임될 전망이다.

GS리테일은 미등기임원(계열회사 임원)이었던 오진석 GS리테일 플랫폼BU장(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오진석 부사장은 GS리테일 경영지원부문장 상무, 전략부문장 전무를 역임했다. 이어 MD본부장 겸 플랫폼BU장으로서 경영을 맡아왔다.

신세계는 정관 변경으로 이익배당 정책을 대폭 개선한다. 배당액을 투자자가 미리 확인한 뒤 투자할 수 있도록 변경되는 것이다. 배당기준일은 주총 의결권 행사 기준일과 분리한다. 이사회가 다른 날로 배당시마다 결정하고, 이를 공고하도록 개정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현대백화점도 정관을 바꿔 배당관련 정책을 대폭 개선한다.

이마트는 한채양 대표를 사내이사로 선임한다. 한 대표는 재무 전문가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 2001년 경영지원실 과장으로 신세계그룹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그룹 경영지원실 업무를 담당했고 2011년부터 신세계그룹 전략실 관리팀 상무·이마트 경영지원본부장 겸 관리담당 부사장보, 신세계그룹 관리총괄 부사장을 거쳐 2019년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까지 역임했다.

4대 금융지주의 주총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KB·하나·우리금융그룹이 오는 22일, 신한금융그룹은 오는 26일 주총을 연다. KB금융은 신규 사외이사로 이명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추천했다. 신한금융은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최영권 전 우리자산운용 대표이사와 송성주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교수 등 2명을 추천했다.

하나금융은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각각 2명, 1명씩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사내이사는 3명, 사외이사는 총 9명으로 늘어난다. 사내이사는 이승열 하나은행장과 강성묵 하나증권 사장이 후보로 추천됐다. 신규 사외이사는 주영섭 전 관세청장, 이재술 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대표이사, 윤심 전 삼성 SDS 클라우드사업부 부사장,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추천됐다.

우리금융은 기존 6명이던 이사회를 7명으로 늘렸다. 전임 송수영 사외이사가 임기만료로 퇴임하고 박선영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와 이은주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새로운 이사진으로 합류한다. 2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며 여성 비율이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사외이사 반대표 없는 기업 90.1%

거수기 역할만 하는 500대 기업 사외이사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내 기업 가운데 첫 평균 연봉 2억 원이 넘어선 삼성전자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하고 나서는 등 국내 ‘사외이사 연봉 1억 클럽’ 기업들 가운데 5개 이상 기업의 사외이사들이 전체 이사회 안건에 100%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매출 기준 국내 500대 기업 중 지난 8일까지 주총 소집공고 보고서를 제출한 181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인 기업은 전체 181개사 중 163곳(90.1%)에 달했다. 이는 전년 159곳(87.8%)보다 늘어난 수치다.

10개 기업 중 9곳은 사외이사들이 반대표(보류·기권 포함)를 한 번도 던지지 않은 셈이다. 전체 안건에 대한 사외이사들의 찬성률은 무려 99.3%에 달했다. 다만 전체 찬성률은 전년 99.4%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매출 기준 30대 기업 중 비상장사 등을 제외한 14개사만을 살펴보면 SK하이닉스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12개사는 찬성률이 100%였다.

이 가운데 사외이사의 1인당 평균 연봉이 2억원을 넘는 삼성전자(2억 320만원)를 비롯해 현대자동차(1억 1830만원)‧LG전자(1억 430만원)‧현대모비스(1억 280만원)‧삼성물산(1억 4620만원) 등 5개사 사외이사들이 단 한번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이 중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각각 전년보다 사외이사 1인당 평균 급여가 11.5%, 9.8%씩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 기업 중 금융지주(KB·신한·하나) 3곳의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도 모두 100%로 집계됐다. 전체 기업 중 지난해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가장 낮은 기업은 유한양행으로, 찬성률이 90.0%였다. 유한양행은 전체 140표 중 찬성 126표, 보류 13표, 기권 1건으로 집계됐다.

SK가 90.7%로 뒤를 이었다. SK는 장동현 대표이사 및 조대식 사내이사에 대한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등에 대한 안건 4개에 대해 사외이사 전원이 반대했다. 이어 한진 92.9%, 삼성중공업 92.9%, 엔씨소프트 93.7%, 네이버 94.9%, 한국전력공사 95.1%, 케이티 95.1%, 크래프톤 97.5% 순으로 집계됐다.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박사는 “불투명한 경영은 주가를 떨어뜨리고 투자자들의 발길을 해외로 돌리게 한다”며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를 뜻하는 스튜어트십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은 어느 정도 지배주주의 자의적인 행동을 견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차적으로 기업 내부에서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장치가 존재해야 하는데, 바로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라며 “지금은 총수가 우호적이거나 순응적인 사외이사를 선발해 좋은 대우를 제공하고 대신 거수기 역할을 요구할 유인이 있다”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