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승빌딩에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이재형 기자
지난 3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승빌딩에 임차인을 찾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이재형 기자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지난 13일 서울 강남의 대표적 상권으로 꼽히는 '강남역~신논현역' 일대 거리는 대형 건물 곳곳의 1~2층이 공실로 남아 있었다. 임대료가 높은 상권은 종종 공실이 나곤 하지만, 이곳이 사뭇 눈길을 끄는 것은 ‘장기 공실’이 많다는 점이다. 거리의 시민들이 들어와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제품 향기를 풍기던 모습도 옛 말이 됐다.

대표적으로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대동빌딩은 한때 1층에 뷰티 브랜드 3개사의 직영점이 입점, 구매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던 곳이다. 그러나 2019년 더페이스샵, 2020년 F&F가 폐점한 데 이어 지난해 6월 에스쁘아마저 입점 12년 만에 문을 닫아 공실로 남았다.

대동빌딩과 강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위치한 창림빌딩은 K2 매장이 5년여간 영업 끝에 지난해 4월 폐점하고 지금껏 공실로 남아 있다. 또한 신논현역 인근 충림빌딩은 2022년 5월 중견건설사 대우산업개발이 이 건물 1층에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 ‘굿스터프이터리’ 지점을 열었으나 그해 10월 문을 닫아 지금껏 새 임차인을 찾지 못했다.

충림빌딩 임대 관계자는 “입주자를 찾기 위해 현수막을 걸고 네이버 등에 매물을 올려놨으나 상황이 어려워 잘 안되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역에 ‘뷰티업체’가 사라졌다

그동안 강남대로 변의 건물들은 윗층에 성형외과, 피부과 등 병원을 유치하고 1층에 뷰티 팝업스토어나 유명 의류 매장,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 등으로 운영돼 왔다. 특히 기업들이 주요 고객층의 동향이나 트렌드 변화 등을 조사하기 위해 주요 상권에 플래그십 점포인 ‘안테나샵’을 주로 오픈했다. 그동안 강남대로와 맞닿은 주요 건물들은 1층에 이러한 안테나샵을 들여 임대료를 한껏 올렸으나, 기업들이 떠난 뒤 이미 상향 평준화된 시세에 맞는 임차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남대로에 맞닿은 서초동의 한승빌딩은 지하 1층, 1층, 2층을 모두 공실로 두고 있다. 1층 매물(전용면적 110평)은 임차 조건이 월 임대료 1억 6000만원, 보증금 30억원 수준으로 일반적인 음식점이나 프랜차이즈 빵집 등은 자체 수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곳 1층은 과거 아모레퍼시픽이 이니스프리 플래그십 매장을 열어 청결한 환경에서 화장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개점 12년 만인 2022년 9월 폐점한 후 쭉 공실로 남은 것이다.

강남역 인근에서 영업하는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대기업들이 중국인 관광객 등을 감안해 이곳에 직영점을 내고 임대료를 이전보다 1.5배씩 올려주곤 했다”며 “그러나 코로나19로 한번 발길이 뚝 끊겼고 지금도 외국인 유동인구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기업들이 다른 상권을 찾아 하나 둘 빠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견기업이나 개인이 한번 올라간 임대료 시세를 맞추기는 어려워 공실이 많은 상황”이라며 “그래도 강남역 대로변 상가 1층 임대료가 2022년에 3.3㎡ 당 300만원이었다면 이제는 150만원 수준으로 많이 내려와 지난해보다는 임차 문의가 들어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명동과 홍대' 살아나는 동안
경기 악화에 멈춰선 강남
 

이처럼 강남지역 임대 사업이 차질을 빚는 동안 상권이 다른 서울 지역으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은 아이리쉬 위스키 ‘제임슨’의 팝업 스토어 오픈 행사 등으로 일대 분위기가 달궈지기도 했다. 무신사가 입점한 홍대입구역의 ‘MERCURE 앰배서더 HOTEL 홍대’ 빌딩은 최근 654억원에 손바뀜돼 2016년 거래 때보다 170억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신촌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홍대, 신촌 지역이 외국인 물품보관소 등의 편의시설이 많아 외국인 접근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광진구 성수동에 위치한 ‘연무장길’은 코카콜라, 동서식품, 러쉬, 휩드, 샤넬 등의 업체들이 월평균 100여곳에 달하는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

한편 강남 지역에선 상권에 위치한 중소형 건물의 하락 거래가 늘고 있다. 부동산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최근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석촌호수 서호에 인접한 한 빌딩이 경매에 넘어가 감정가보다 수십억원 싸게 거래됐다. 지난 4일 서울 동부지법 경매2계에서 경매를 진행한 결과, 석촌동 52-9에 위치한 아쉬세븐 빌딩은 110억 2385만원에 낙찰됐다. 2019년 준공한 토지면적 595㎡의 6층 건물로, 137억 7981만원에 감정가가 책정됐으나 지난 1월 한차례 유찰된 뒤 27억원 내려 입찰을 받았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아쉬세븐 빌딩. 사진=지지옥션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아쉬세븐 빌딩. 사진=지지옥션 

석촌동의 B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3.3㎡ 당 61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인근 구축 상가가 3.3㎡ 당 1억 500만원에 거래됐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반값에 넘어간 것”이라며 “요즘 지역 상권이 경기 침체로 다소 위축된 것을 감안해도 가격이 많이 떨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건물은 화장품 업체 아쉬세븐이 보유하고 있었으나 2022년 2월 경매로 넘어갔다. 아쉬세븐은 사업 투자라며 다단계 방식으로 7385명으로부터 2조원을 가로챈 사기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으로, 청산 절차 과정에서 통건물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유치권이 설정돼 있기는 하지만, 지지옥션은 해당 물건을 다룬 웹페이지에서 “집행관 현황조사 때도 유치권을 주장하는 점유자나 게시문 등 어떠한 표식도 확인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미점유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3월에는 강남구 논현동 상가(연면적 1189.07㎡)가 161억원에 매매돼 직전 거래가격(170억원) 보다 9억원 하락했다. 이처럼 강남이 약세인 추세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회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가 발간한 '2023년 4분기 리테일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가두상권 평균 공실률은 18.7%로, 전년 동기에 비해 4.4%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명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입점하면서 한때 50%를 넘었던 상가 공실률이 9.4%로 떨어졌다. 한남·이태원은 국내 신진 디자이너 및 뷰티 브랜드들의 진입으로, 홍대는 대로변 신축 빌딩을 중심으로 메디컬 업종이 늘어나면서 각각 공실률이 감소했다. 반면 강남과 가로수길 상권은 공실률이 상승했다. 비교적 높은 임대료와 인근 세로수길의 상권 축 확장, 성수와 같은 대체 상권이 부상한 영향으로 보인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관계자는 “최상위 명품 브랜드 수요가 견고한 가운데 불황 속 가성비를 내세운 소비가 주목받으면서 소비 양극화가 심화하는 등 소비 패턴이 변하고 있다”며 “변화하는 환경 속 리테일 시장이 향후 성장 여력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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