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초피나무

초피나무를 잘 안다면 분명 고향이 남쪽이며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다. 향기로 승부하는 풀이나 나무는 많지만, 이렇게 작은 잎 끝마다 향기를 뿜어내는 나무는 드물 터인데, 초피나무가 자라는 남쪽에선 잎이나 열매를 따야 하니 시골 아이들이 산과 들을 쏘다니면서 냄새로 혹은 가시를 통해 이 특별한 나무를 접했을 것이다.

중부지방으로 올라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초피나무는 해안을 따라 중부지방까지 올라오기도 하지만 주로 남쪽에서 자란다. 중부지방에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쓰임새와 향기가 비슷한 식물이 있는데 이는 초피가 아닌 산초나무이다.

이름도 서로 섞어서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중부지방 사람과 남부지방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하면 서로 다른 나무를 두고 같은 나무인냥 말하기도 한다. 특히 이 열매를 갈아 만든 가루는 우리의 독특한 향신료여서 이를 이용하는 추어탕집에 가면 이런 풍경은 흔히 일어난다.

사실 초피나무를 두고 제피 혹은 젠피 혹은 전피나무라고도 하고 일본식 한자이름 대로 산초(山椒)라고도 하니 사실 산초나무와 혼동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두 나무를 확실하게 구분하려면 초피나무는 가지에 가시가 서로 마주 달리고 산초나무는 어긋나게 달리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피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는 낙엽성나무이고 다 자라야 그 키가 3, 4m를 넘지 못한다. 늦가을에 꽃이 피는 산초와는 달리 초피나무는 봄에 꽃이 핀다. 다섯장의 녹황색 작은 꽃잎을 가진 꽃들이 원반처럼 모여 달린다.

잎은 큰 잎자루에 손가락 마디 만한 작은 잎들이 깃털모양으로 나란히 달리는데 작은 잎의 가장자리는 물결같이 둥근 톱니가 나 있다. 가장자리 톱니와 톱니 사이에 아주 약간 돌출된 작은 선점이 보이는데 초피나무의 그 향기는 이곳에서 나온다.

가을이면 둥근 열매가 두 갈래로 벌어지면서 그 안에 까만 종자를 들어 내 놓는다. 붉게 익어 벌어지는 껍질 사이에 까만 종자가 매어 달려 있는 초피나무의 모습은 무척 귀엽다.

앞에서 잠시 이야기 했지만 예전에 초피나무의 주 쓰임새는 향신료였다. 톡 쏘는 매운맛. 그러나 그저 매운 것이 아니고 상쾌하고 시원한 맛이 독특하다. 추어탕 말고도 여러 생선요리에 넣으면 생선비린내를 없애 주고 독성을 완화해주는 역할도 한다. 잎을 생선회에 싸먹기도 한다. 한때는 열매나 잎을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건강에 아주 좋다고 최근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초피나무나 산초나무의 열매에서 짜낸 기름인데 이것을 이용해 나물을 무치기도 하고 약처럼 먹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한방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이용되는 나무이다.

옛 어른들은 집 주변에 산초나무나 초피나무를 심어두고 모기를 쫓았다고 한다.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독한 냄새나는 약으로 모기를 쫓으며 살고 있는 우리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다. 지금은 잡목처럼 눈여겨보지 않은 이 나무가 알고 보면 그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서 서 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옛 사람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입력시간 2002/09/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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