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다래

다래를 보면 언제나 즐겁다. 이른봄이며 새로 돋는 나물로 맛있게 먹어 좋고, 무르익은 봄에 피어 나는 우유 빛 꽃송이들은 너무 밝고 깨끗하여 바라보기에 그저 좋기만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견주어 가장 즐거운 때는 열매와 해우했을 때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치렁치렁 늘어지는 덩굴에 달리는 농익은 갈색 다래를 만나는 것이 가장 반갑다. 씹히는 듯 하다가 어느새 새콤달콤하게 입에서 녹아 내리는 다래는 정말 맛있다.

다래는 다래덩굴 또는 다래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에서 자라는 낙엽이 지는 덩굴성 식물이다. 갈색의 덩굴 줄기에는 무늬가 뚜렷하고 아이들 손바닥만한 둥근 잎새가 붉은 잎자루에 달린다.

다래의 꽃은 수꽃과 암꽃이 따로 있고 대개 암수가 따로 자란다. 수꽃과 암꽃이 모두 매화꽃을 닮았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암꽃은 아주 깨끗한 순백색의 꽃잎을 가지며 가운데 툭 튀어나온 암술을 가진다.

나는 이 특별한 모양의 암술을 처음 보고는 작은 나팔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이는 꼬마분수대 같다고 한다. 수꽃은 순백이기 보다는 상아색 꽃잎을 가지며 진한 보라색 화분을 가진 수술이 많이 달린다. 손가락 마디 하나 길이의 열매는 가을이 다 되도록 익어 가며 다래라고 부른다.

산에는 다래나무와 비슷한 나무들이 여려 종류가 있다. 사람들은 다래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참다래라고 부른다. 먹지 못하는 다래는 개다래와 쥐다래로 부르며 이들은 열매의 꼬리가 삐죽하다. 참다래, 즉 다래는 녹색으로 익고 그 이외의 다래들은 갈색으로 익는다고 하는데 겉은 다래 역시 연두색으로 되었다가 익어가면서 점차 갈색이 되지만 속살은 익어도 연두색이다.

식물분류학적으로는 여러 차이점이 있지만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지 않는다. 개다래는 잎에 흰 페인트칠을 하다만 듯한 무늬가 있고 쥐다래에는 잎에 연분홍색과 흰색이 돈다.

요즈음 시중에는 다래의 종류가 또 하나 나와 있다. 바로 키위라고 부르는 과일이다. 이 과일은 중국이 고향이며 서양에서 과일로 개발하여 들어 왔으므로 양다래라고도 부른다. 이 양다래 키위는 처음에는 아주 귀한 수입 과일이더니 이제 제주도를 비롯하여 남쪽의 따뜻한 지방에서 대량으로 재배하여 아주 흔한 과일이 되었다.

이 키위로 만든 쥬스만도 여러 회사의 것이 있는데 간혹 참다래라고 쓰여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의협심이 남다른 이들은 비록 이 양다래가 크고 먹을 것도 많지만 우리의 진짜 다래를 두고 함부로 참다래라고 부르느냐고 분통을 터트리며 이를 막을 방법을 찾아 달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양다래 때문에 우리 토종 다래를 찾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키위를 재배하는데 큰 병이 일시에 퍼지자 저항력이 강하고 또 추위에도 잘 견디는 우리 다래와 교잡을 하여 이를 극복해 보기 위해서이다. 신토불이의 위력이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막상 산에 가면 다래나무는 간혹 만나도 열매 다래를 만나는 행운은 그리 흔치 않다. 다래나무는 청산별곡에서 나오는 것처럼 깊고 깊은 청산에서나 실컷 먹을 수 있는 열매인 것이다. 그러나 회색의 도시 서울의 한복판에 다래나무가 살고 있다.

그것도 수백년이 되어 치렁치렁 줄기를 감당조차 못하는 오래 된 다래나무다. 바로 비원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251호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이다. 비원이 있는 지명이 종로구 와룡동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땅히 감고 올라가 나무들이 다 사라져서 인지 이 다래나무는 마치 용이 누워 꿈틀거리듯 줄기를 이리 저리 휘돌리며 자라고 있다.

허리쯤 올라 온 높이에서 둘로 갈라지고 둘레가 70cm나 되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인지 곳곳에 지주대가 받혀져 있다. 이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가서 주변의 나무와 만나면 이들과 다시 엉클어져 덩굴 숲을 만든다. 이 나무의 나이는 육백살이나 되었다고 하니 조선시대의 그리고 수도 서울의 살아있는 증인이기도 하다.

바쁜 도시에서 사느라 잊혀져 가는 그 숱한 나무들, 그 속에 감추어진 보석 같은 가치들을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참 어리석은 태도일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연구사

입력시간 2002/12/08 16:4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