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돌단풍

이땅에 자리잡고 살고 있는 수많은 식물들. 그 하나 하나를 찾아다니고 모습을 보며 일하다 보면 참 신기한 생각이 들곤한다. 어쩌면 식물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환경이 다를까 싶고 또 그렇게 다른 환경속에서 마치 우연처럼 자리잡고 살아가는 모습은 필연처럼 자연과 가장 잘 조화되어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돌단풍을 볼 때도 꼬박 꼬박 그런 생각이 든다. 산속에 하나의 작은 산을 이루는 집채만한 바위틈이나 혹은 길고 긴 세월의 풍상이 고스란히 새겨진 계곡의 크고 작은 바위틈이나 가리지 않고 그 돌 사이사이에 뿌리를 박고, 맑디 맑은 계곡의 물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살고 있는 돌단풍의 모습을 보노라면 바위와 돌과 어울려 가장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식물이 바로 이 식물일 것이라고 누구나 동감하기 때문이다.

돌단풍은 범의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강원도를 비롯한 충청도 이북의 산지에서 자란다. 촉촉히 봄비라도 내리고 난 어느 날 오후 유난스레 따사롭게 느껴지는 봄볕이라도 들고나면 여리고 순하기만 하던 새순들은 어느새 잎자루를 ‘쑥’하고 자라는 소리라도 날듯 내보내어 키를 키우고, 접혀 있던 잎새를 활짝 펼친다.

한껏 펼쳐진 잎새는 단풍잎의 모양을 꼭 닮아서 다섯 혹은 일곱 갈래로 갈라져 있고 갈라진 조각마다 다시 크고 작은 결각들이 있다. 충분히 성숙한 잎들은 표면에 반질한 윤기가 흐른다.

돌단풍의 멋은 뭐니 뭐니해도 이름에 무색하지 않게 단풍잎 닮은 모양에 단풍 빛 마저 고운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불붙은 듯 정열적인 빛은 아니어도 깊이 있는 붉은 색이 운치있어 보기 좋다. 나뭇잎은 보통 가을에 단풍이 잘 들지만, 대개 풀들은 단풍이 들기 전에 이미 잎이 상해버리기가 십상인데 돌단풍만은 예외에 속한다.

꽃은 늦은 봄, 잎새 사이에서 꽃대를 쑥 올려 피어 낸다. 그 높이가 한뼘에서 무릎높이쯤 되려나. 꽃대 끝에는 새끼손톱만큼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많이 모여 탐스러운 꽃차례를 만들어 낸다. 하얀 꽃잎에는 붉은빛이 다소 돌기도 한다.

왜 돌단풍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되물을 필요도 없이 바위틈에서 자라며 그 잎모양이 단풍잎을 닮아서이며 라틴어 학명도 아세리필럼 로시인데 여기에서 속명 아세리필럼은 단풍나무라는 뜻의 라틴어와 잎이라는 뜻의 그리스어가 합성하여 된 이름으로 잎이 단풍나무 잎을 닮았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이름 이외에도 장장포 또는 부처손이라고 부르며, 돌틈에서 피고 나리꽃 처럼 예쁜 꽃이 피어서 인지 돌나리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부른다.

어린 시절, 돌단풍이 자라는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살던 이들은 마을 주변의 냇가를 오르내리며 새로 나온 줄기나 잎을 잘라먹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곤 한다. 이처럼 돌단풍은 예전부터 어린 잎이나 꽃이 아직 피지 않은 연한 줄기를 생식하거나 나물로 데쳐 먹으며 이용해 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돌단풍의 중요한 쓰임새는 정원용이 아니었을까? 본래 우리나라에는 야생의 식물들을 정원에 옮겨심은 사례가 그리 흔치 않은데 돌단풍만은 정원으로 옮겨와 심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 된 것으로 보인다. 물을 이용한 정원이나 암석원 같은 곳에 주요한 소재로 돌단풍이 이용되기 시작하였다. 또 돌이나 고사목 혹은 수반에 분경으로 키워도 자연미가 돋보여 좋다.

입력시간 2003/04/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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