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앞두고 인적청산 등으로 '표심잡기' 총력전, 사외이사 비율도 70%로 확대

SK, 소버린 반란 잠재울까
주총 앞두고 인적청산 등으로 '표심잡기' 총력전, 사외이사 비율도 70%로 확대

SK㈜ 주주연합(가칭)에서 활동하는 박 모(35)씨는 3월에 열릴 SK 주총에서 소버린 자산운용을 100% 지지할 계획이다. 박 씨는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소버린에 의결권을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박 씨는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소버린 측과 행보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 최태원 회장 등 현 경영진이 퇴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말 소버린 참모진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SK(주)소액주주 연합회 김 모(44)씨는 최근 새로운 이사진을 추천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 SK쪽에 표를 던질 계획이다. 그는 “소버린은 ‘SK의 비전과 투명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며 “소버린 측을 지지 하기에는 아직도 그들의 정체와 투자의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경영권의 수성이냐, 반란의 성공이냐

SK그룹의 운명이 결정될 SK정기주주 총회(3월 12일)를 앞두고 SK그룹과 SK㈜의 2대 주주인 소버린 자산 운용이 한 주라도 더 많은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표심 잡기’ 열전이 시작됐다. 앞으로 남은 ‘선거(?) 운동’ 기간은 약 2주일. 양측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이들은 그 간의 탐색전에서 벗어나 국내외 기관 투자자와 소액 주주들을 상대로 앞 다퉈 ‘면대면’ 접촉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한 안내장을 발송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막판 표심 모으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소버린 측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며 자본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불법 행위를 저질러 회사와 주주가치를 훼손한 SK㈜ 경영진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SK 퇴직원로 경영자 및 유경회 등은 “주주는 결코 기업의 책임 있는 소유주가 아니며 금융자본의 성격이 농후한 단견의 주주들이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기업 지배구조는 잘못”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98년 최종현 회장 사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SK의 기업 지배구조가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세대 교체를 가속화시킴으로써 과연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불과 1,700여 억원을 투자해 자산 50조원과 계열사 59개를 거느린 채 SK그룹을 뒤흔들고 있는 소버린의 반란은 ‘3월 혁명’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인가. 지금, 표심이 움직이고 있다.

- 최태원 회장의 마지막 승부수

최태원 SK㈜ 회장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소버린의 파상 공세로 궁지에 몰린 최 회장은 2월 22일 이사회을 열고 ‘세대 교체’를 통한 정면 돌파를 선언하고 나섰다. 올해로 임기가 만료되는 손길승 회장, 황두열 부회장, 김창근 사장 등 핵심 경영진 3명을 이사로 재선임하지 않는 ‘인적 청산’이라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소버린을 포함한 해외 투자자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핵심 경영진의 퇴진’을 일단 수용한 것으로, SK로서도 더 이상 소버린과의 명분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내비친 셈이다. 이와 함께 조 순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과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대 학장과 김태유 전 대통령 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 등 5명을 사외 이사로 추천했다. 화려한 경력 소유자로 면면이 구성된 소버린의 이사진 추천 리스트와는 달리, ‘인치(仁治)’로 대변되는 사회적 명망가들을 전면에 내세워 이사진 선별 기준을 차별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소버린은 미국 힐스 기업지배구조 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김준기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 교수와 한승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진만 전 한빛은행장,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등을 이사진으로 추천했다. 사실 SK는 당초 올해 사외이사 비율을 과반수로, 2년 후부터 7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최 회장 스스로가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는 의지를 피력함에 따라 이를 앞당겨 실행키로 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것. 이와 함께 대표 이사가 겸임하도록 한 이사회 의장을 이사회에서 선임토록 하고 투명경돛㎰廢?신설 및 3인의 사외이사로만 감사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정관변경안도 의결했다. 유정준 SK㈜전무는 “이번 이사회의 결의 내용은 평소 주주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해온 최 회장이 직접 이사회를 주도했고 이사들 역시 이를 적극 반영한 것”이라며 “소버린이 추천한 이사와 정관개정 내용, SK㈜가 발표한 내용은 각각 주주제안으로 상정되지만 결코 표 대결에서 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 D-14 과연 누가 유리한가.

다가오는 3월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주식은 1억2,600여 만주. 이는 지난 연말 임원 스톡옵션 행사에 따른 신주 발행분과 자사주 미 매각분을 가감한 수치다.

주총 의결권 행사 주식을 기준으로 했을 때, SK측의 우호지분(자사주 매각분 포함)은 약 27.32%로 추정된다. SKC&C 8.69%, SK케미칼 3.31%, SK건설 3.42%, SK생명과 SK증권 0.14%, 최 회장 일가 1.11% 등 순수 SK지분 17.59%에다 자사주 매각분 9.73%를 더한 수치다. 여기에 우리사주조합과 국내 기관투자자 지분 등을 포함할 경우, 적어도 35% 이상은 SK우호지분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반해 순수 소버린 보유지분은 약 15.1%에 이른다. 여기에 소버린의 확실한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템플턴 자산운용의 지분이 5% 정도로 보이며, 헤르메스 지분은 0.8% 수준으로 다 합치면 22% 선을 조금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SK의 우세승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승부를 아직 예단하기에는 너무 성급하다는 지적도 팽배하다.

소버린과 템플턴, 헤르메스를 제외한 해외주주 지분 22.8%와 국내 기관투자자와 개인 소액주주 지분 추정치 30.3%의 향방에 따라 막판 뒤집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증권 가에서는 소버린이 SK㈜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20여 개 외국계 금융기관을 상대로 18%에 달하는 우호지분을 확보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 인해 일시적으로 주가가 출렁이기도 했다. 따라서 소버린이 구체적으로 해외 주주들과 어떤 방식으로 접촉을 하고 어느 정도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지가 향후 주총의 표결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대부분의 해외 투자자들은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주가 상승의 수혜를 노리는 외국 투자자들은 소버린측과 꾸준히 정보를 교류하고 있거나 보조를 맞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SK㈜지분을 보유한 펀드 중 상당수가 비공식 헤지펀드로 이른바 헤지펀드 소사이어티 가운데 에너지 섹터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커뮤니티의 표심을 잡는 쪽이 승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버린이 3월 주총에서 승리해 재계 3위인 SK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K㈜의 이사회를 장악할 경우,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외국인에 의해 적대적으로 기업 인수ㆍ합병(M&A)되는 첫 사례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번 주총 보다는 최태원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정기 주총이 SK의 경영권 향방을 결정해 줄 중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김재중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소버린과 SK의 경쟁은 올해 주총에서 끝나지 않고 내년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임기 만료 예정인 최태원 회장의 재선임 여부를 둘러싸고 외국인들의 의지 관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수성‘이냐, 아니면 ‘반란의 성공’이냐를 놓고 지금 표심이 움직이고 있다.

장학만기자


입력시간 : 2004-02-24 21:54


장학만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