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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소주시장 판도가 바뀐다
대한전선, 쌍방울·진로인수?
풍부한 자금력으로 알짜기업 인수, 사업 가닥화에 '올인'


‘속내의’와 ‘소주’시장에 때아닌 ‘광(光)케이블 공사’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국내 2위의 전선제조 업체로 광케이블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생산하는 대한전선이 국내 속내의 선두기업인 쌍방울과 소주시장의 ‘절대강자’ 진로의 새로운 주인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대한전선은 2002년 쌍방울로부터 무주리조트를 1,500억원에 인수한데 이어 2월6일에는 아예 쌍방울의 최대 주주(지분율 32.52%)로 올라섰다. 또 진로의 주요 채권자 자격으로 6,000억원의 자본금 출자와 7,000억원의 금융권 차입을 통해 총 1조3,000억원을 마련해 진로를 인수하겠다는 정리계획안을 서울지방법원 파산부에 냈다. 금융권과 재계는 ‘알짜배기’ 기업 인수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는 대한전선의 자본력과 기세에 놀라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대한전선이란 회사 자체가 시중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아 증권업계 내부에서조차 설왕설래가 오간다.

대표적으로 대한전선이 진로에 대한 인수 의사를 처음 밝혔을 때 ‘전주’(錢主)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의혹의 눈길이 쏠렸고, 일부에선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좋지 못한 소문마저 나돌았다. 그러나 최근 내실 탄탄한 대한전선의 ‘알짜배기’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대한전선을 새롭게 평가하는 봄기운이 확연하다.

3월 초로 예정된 진로 채권단 회의를 앞두고 대한전선이 내놓은 회사 정리계획안 내용이 또 다른 주요 채권자인 골드만삭스의 ‘인가 뒤 3년 내 매각’ 안 보다 한층 설득력 있게 나타나면서 현재로는 대한전선에 다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분위기다. 금융계와 재계에는 과연 대한전선이 엉키고 설켜 있는 진로 채권자들의 이해 관계를 깨끗이 털어내고 진로 인수에 성공할 수 있을지 가 초미의 관심사다.

- 내실있는 우량기업으로 성장 거듭

대한전선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설원령(62)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창업자 설경동 회장의 3남이다. 수리와 이재에 밝고, 다소 보수적이지만 합리적인 최고 경영인(CEO)이라는 것이 주변의 평가. 전선 사업 자체에 대한 애정도 남달리 강하지만, 업종을 불문하고 돈 되는 사업이라면 결코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2세 경영인이다. 특히 열린 사고와 융통성 있는 합리적 경영으로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사양화에 접어든 전선사업에서 탈피, 수익성이 보장되는 관광리조트 사업외에 ‘속내의’나 ‘소주사업’에 ‘올인’하는 추진력도 그 같은 배경에서 나온다.

하성임 대한전선 기획관리담당 상무는 “‘속내의’ 나 ‘소주사업’ 모두가 우리에겐 생소한 업종이지만 유능한 전문경영인 체제만 구축된다면 투자 수익도 올릴 수 있고 지주회사 격인 대한전선의 가치 역시 높일 자신이 있다”며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3월로 예정된 쌍방울 주총에서 이사와 사외이사, 상근 감사를 새로 선임할 주주 제안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단 번에 두개의 알짜기업 챙기기에 나선 대한전선을 놓고 일부에선 자금부담 등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시장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낙관적이다.

박강호 LG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전선의 사업다각화는 일단 긍정적”이라며 “전선 업종은 추가적인 설비 투자가 필요 없고 매년 꾸준히 한자리수 성장이 예상돼 안정적인 기반 속에서 대한전선 자체로도 신 사업 모색을 위한 모멘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전선하면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전선공업의 역사는 대한전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로 통한다. 적어도 전선업계에서는 그렇다. 대한전선의 시작은 1950년대 중반. 창업자인 인송 설경동 대한전선 회장이 55년2월 설립한 뒤 대한방직과 대한제당 등 4,5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다. 80년대 초 설 회장이 2세들이 각 업체를 넘겨주기 전까지만 해도 옛 대우그룹과 맞먹는 그룹형 기업으로 꼽혔다.

우리나라 전선 발달사에서도 대한전선은 ‘국내 최초’란 타이틀을 수없이 갖고 있다. 기초 전선인 4종선, 면권선, PVC 피복전선 등을 처음으로 개발, 생산했다. 대한전선이 만든 것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창업이후 49년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온
대한전선이 신사업 추진으로 제2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다. 케이블 수출선적 모습.



60년대 들어 각종 케이블의 국산화에 성공한 대한전선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국가기간 산업인 전력 공급과 통신망 확충에 따라 성장의 틀의 다져갔다. 외국의 선진 전선회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국내 최초로 동축케이블 제조에 성공한 이 회사는 7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경제가 중화학 공업으로 전환하면서 전선공업의 성장으로 비약적인 발전의 기회를 맞았다. 75년 현재의 안양공장을 준공한 대한전선은 세계에서 8번째로, 국내 최초로 초고압 O.F.전력케이블을 생산하기도 했다.

- 광통신케이블 개발로 사업영역 확대

통신 케이블의 혁명을 가져올 광통신케이블의 개발에 성공해 79년에는 광화문과 중앙전화국 간에 국내 최초로 광케이블의 상용화를 주도했다. 전선사업의 호조 속에서 80년 SCR 공장, 83년 VCV 초 고압 케이블 공장, 87년 광통신 공장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시장을 선도했다. 90년대 들어서는 고부가가치의 신제품 개발과 사업다각화에 눈을 돌렸고 스테인리스ㆍ알루미늄 사업에 뛰어드는 등 소재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IMF 외환위기이후 전선업계가 어려움을 맞자 대한전선은 알루미늄 사업부문을 외국사에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그렇게 창업이후 49년간 적자경영 없는 내실 있는 우량기업으로 평가 받아 왔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6,760억원, 영업이익 900억원을 올렸고, 올해는 매출 1조3,500억원, 영업이익 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한전선은 또 경기 평촌에 8만평 규모의 공장부지(시가 5,000억원 상당)와 시흥 부지(1,300억원) 등 1조4,123억원대의 자산을 갖고 있고 현금 동원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연구원은 “겉으로 보기엔 대한전선의 쌍방울과 진로 인수에 자금부담의 우려가 있지만, 81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수익만 3,500억원이고, 법인세만 1,200억원을 낼 만큼 쌓아놓은 내부자금이 있어 투자 컨소시엄을 형성하면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감한 투자 전망에 대해서도 “국내 속내의 1위업체인 쌍방울에 대한 투자 역시 내수와 레저사업(무주리조트)에 집중돼 있으므로 현재의 경영적자 역시 개선될 여지가 높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대한전선의 ‘광 케이블공사’가 과연 ‘속내의’와 ‘소주시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 지주목된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입력시간 : 2004-02-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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