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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인형놀이에 지갑을 열다
어린이 감수성 지는 성인 대상 카덜트 산업
완구에서 의류까지 확산일로






“친구한테 제가 키덜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로 들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나잇값을 하고 안하고는 ‘건담’ 만드는 것과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기 책임을 다 하면 어른이고, 그걸 회피하거나 하지 못하면 아이겠죠.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키덜트면 어떻습니까. 가장 중요한 건 좋아한다는 거 아닌가요. 가끔 처조카들이 와서 조립해 놓은 거 가지고 놀 때마다 가슴이 덜컥하죠. 겉으론 태연한 척하면서….”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동호인 카페에서 30대 남성 회원들이 주고 받은 내용이다.

어린이의 감수성을 지닌 20~30대 성인을 일컫는 ‘키덜트’(KidultㆍKid+Adult)족. 이들은 한때의 유행 또는 일부 어른들의 특이한 경향만으로 파악된 적도 있으나, 어느덧 두텁고 광범위한 사회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평범한 어른들도 어느 정도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릴 뿐 아니라 가끔은 어린이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반면 키덜트족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감수성을 항상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들의 내면 세계가 밖으로 가장 잘 노출되는 것은 바로 소비 행위를 통해서다.

키덜트 족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조립식인형 스틱파스.



소비 주체로 자리매김한 키덜트 족
최근 ‘키덜트 산업’의 팽창은 키덜트족이 확실한 소비의 주체로 떠올랐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키덜트 산업과 기존 산업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다만 키덜트족의 기호와 소비 성향을 반영하는 각종 서비스와 제품군을 생산해 내는 업종 대부분이 키덜트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대체적으로 완구, 팬시, 패션, 캐릭터, 게임, 애니메이션, 대중문화 상품 등이 키덜트 산업 영역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성 키덜트족에게 ‘건담’은 대표적인 소비 아이콘 중 하나다. ‘건담’은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 로봇의 이름인데, 1970년대 후반 국내에 처음 소개됐고 일본에선 지금까지 꾸준히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에 이르는 남성들은 아마도 어렸을 적 ‘건담’ 프라모델(조립식 모형 완구)을 최소한 몇 번쯤 만들어 봤을 것이다.

‘건담’은 긴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금 한반도에 당당하게 상륙했다. 4~5년 전부터 불 붙기 시작한 건담 프라모델의 인기는 적지 않은 성인들 사이에서 하늘을 찌른다. 온라인 ‘건담’ 판매업체인 건담캠프 관계자는 “대부분의 고객은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성인들”이라며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구입하거나 수십만원 대의 고가 ‘건담’을 사들이는 마니아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건담’ 프라모델을 제조하는 일본 반다이 사의 한국 법인 관계자도 “2000년 법인 설립 이후 ‘건담’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현재 연 매출은 30억 원 정도 된다”고 소개했다. ‘건담’ 프라모델 가격이 보통 2만~3만원 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1년에 10만 개 이상 팔려나가는 응甄? 여기에 우후죽순 생겨난 수입업체들의 판매량을 보태면 그 수량은 몇 배로 늘어난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몇 해 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스틱파스’라는 조립식 인형도 어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키덜트 제품이다. ‘스틱파스’는 각 관절을 인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여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데, 이런 독특한 매력으로 수많은 어른들을 홀리고 있다. ‘구체관절인형’도 비슷한 경우다. 관절을 둥글게 만들어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든 이 인형은 사람과 같은 용모에 치장도 가능해 동호인 수를 빠르게 늘려 나가는 중이다.

강남의 한 백화점 키덜트 의류매장에서 티셔츠를 고르는 성인 고객들. 배우한 기자.



의류업체, 키덜트 마케팅에 적극적
완구나 인형뿐 아니라 일상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제품이 키덜트족의 소비 대상이다. 그 중에서도 스스로를 어린이처럼 혹은 어려 보이도록 꾸밀 수 있는 의류는 최상의 키덜트 품목. 실제로 상당수 의류 업체들 사이에서는 키덜트족을 대상으로 한 타깃 마케팅 활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귀엽고 깜찍한 만화 캐릭터나 일러스트를 새긴 티셔츠 종류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특히 여성 의류 쪽 판매가 초강세를 띠고 있다. 여성 의류업체 신원은 몇 달 전 미국 워너브라더스사의 ‘루니튠’ 캐릭터를 도입하는 계약을 맺고 관련 제품을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톱스타 송혜교가 출연한 인기 드라마 ‘풀하우스’의 캐릭터를 활용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이 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젊게 보이고 싶은 고객들의 욕구가 캐릭터 셔츠 시장의 확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유명한 캐주얼 의류업체들은 거의 전부가 캐릭터를 하나씩 끼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실제 백화점 의류 매장 등을 가보면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스머프’ ‘인어공주’ 등 없는 캐릭터가 없을 정도다. 특히 여름 캐주얼 시장은 캐릭터 의류가 절대적인 판매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아예 어린이 옷을 사 입는 어른들도 적지 않다. 15세 안팎 청소년용 의류는 웬만큼 가냘픈 여성들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다. 하이틴을 주고객 층으로 한 이랜드의 ‘티니위니’는 오히려 20~30대의 여성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로 성공한 경우다.

키덜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집안을 어린이적 감성으로 꾸미는 여성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홈 데코레이션 제품 전문업체인 해피앤코는 2002년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한 뒤로 매년 큰 폭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화려한 원색에다 하트 모양이나 돼지 등의 캐릭터를 앉힌 게 제품 특징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1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르기까지 고객층이 상당히 넓은데 그 중에서도 20~30대 미시 아줌마들이 가장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디자인 소품 온라인 쇼핑몰인 후추통의 관계자도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각종 제품들을 실제로는 20~40대 성인들이 구입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우리 회사의 경우 키덜트 제품의 판매 비중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키덜트 산업의 수요 기반은 갈수록 커지는 형편이지만 토종 업체들의 대응이 소극적인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마 키덜트 제품의 70% 이상은 수입품일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점차 커지는 키덜트 산업을 인식해 공격적인 시장 전략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키덜트 리더 골든걸의 키덜트 라이프
"꿈꾸는 세계에서 꿈처럼 살지요"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스펀지 밥은 물고기만 사는 바닷가 버거 가게에서 돈만 좋아하는 사장 밑에서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아이예요." 코스튬 플레이어(costume playerㆍ의상을 가지고 노는 직업) 골든걸(27ㆍ한국 이름 금소녀)은 요즘 네모난 주방용 스펀지 '스펀지 밥'에 푹 빠져 산다.

그녀는 20대 후반이지만 핑크색 만화 티셔츠를 즐겨 입고, 셀카(셀프 카메라) 놀이를 하며, 캐릭터로 장식된 방안에서 하루 종일 그들과 놀기도 한다. 핑크 톤 벽지로 직접 도배한 방안 곳곳엔 바비 인형도 장식돼 있다. 그녀는 키덜트 족이다.

골든걸은 '특별한 소녀들의 모임'인 걸스카웃(galscoutsㆍgal은 걸의 은어. 일본에서는 걸을 갸루(gal)라고 부름)의 리더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걸스카웃 파티에선 골든걸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교복을 입은 멤버들이 학창 시절 게임을 즐긴다. 교복을 입고 즐기는 파티라고 해서 스쿨룩 파티라고도 한다. 그녀가 교복을 유독 좋아하는 것은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나라를 오가며 학창시절을 보낸 바람에 교복 입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함께 코스프레를 하는 한 언니의 삶도 슬쩍 들려준다. 그 언니는 레이스가 달린 幣퓰보?입고 구체관절인형을 사기 위해 돈을 모은다. 당장 필요한 생필품보다 갖고 싶은 인형이나 캐릭터 상품, 옷을 사는데 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산다 해도 사회 생활에 별 문제는 없다. 그저 다른 마니아들처럼 취미 생활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표현하며 살기에 그 용감한 마음을 높이 사고 싶어요. 억눌려 있는 것보다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더 건강한 것 아닌가요?" 자기 삶에 당당한 여성의 자기 표현쯤으로 봐달라는 이야기다.

"내적 키덜트는 겉으로 표나진 않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은연중 잠재된 욕구 같은 거죠. 교복 스타일의 걸리쉬룩 패션이 인기를 끌고, 스쿨룩 파티에 20대 후반의 여자들이 적잖이 몰려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죠."

만화 속 캐릭터를 동경하고 그들과 닮고 싶은 욕망을 옷과 분장을 통해 실현시키는 사람들, 코스튬 플레이어의 대부분은 키덜트 족에 속한다. 골든걸은 코스프레라는 취미 문화가 좀 더 전문성을 갖고 대중화에 기여하도록 코스맥스(cosmax)라는 잡지를 창간할 예정이다. 초보자부터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까지 다 함께 취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잡지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언젠가 커다란 섬을 사서 걸스카웃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골든걸. 그녀가 되묻는다. 키덜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꿈꾸는 것을 사소한 물건의 소유로 실현시키는 것, 혹은 자신의 감정을 물건에 싣고 싶은 사람…. 그녀가 말한다. 당신 안에 키덜트가 있다고.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5-07-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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