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바람' 차단 묘수 찾기 골머리

한국은 초일류 철강업체 포스코를 보유하는 등 세계 5대 철강 강국으로 통하지만 2005년에는 ‘황사’ 바람 때문에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한 때 황금 수출 시장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오히려 수입이 물밀 듯 밀려들어온 데다 저가 공세라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며 영업 실적이 상당폭 하락한 것이다.

중국발 쇼크가 얼마나 심대했던지 한국철강협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05년 철강업계 10대 뉴스’의 톱뉴스에는 ‘중국산 철강재 수입 급증으로 인한 국내 시황 악화’가 무혈 입성했다.

철강업계 대표, 철강 학계 및 연구계, 수요단체, 종합상사, 증권사 철강산업 애널리스트 등으로 구성된 뉴스 선정위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중국발 쇼크를 지난해 최대 이슈로 꼽은 것이다.

실제 여러 가지 지표들도 중국 여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한-중간 철강 무역에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역조가 빚어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철강 물량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입되는 물량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국내 철강업계의 중국 수출량은 396만여 톤을 기록한 반면 같은 기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량은 576만여 톤에 달했다.

중국산 철강 수입량은 2001년 104만여 톤, 2002년 114만여 톤, 2003년 182만여 톤으로 서서히 증가세를 나타내다가 2004년 433만여 톤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폭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체 수입량 중 중국산의 비율도 2001년까지 10% 미만에 그쳤지만 2005년에는 40%대로 껑충 뛰어오른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반해 한국 철강의 중국 수출량은 2003년 554만여 톤, 2004년 497만여 톤으로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설비증가, 저가 공세로 이어져

이처럼 한ㆍ중간 철강 무역 역조가 심화하고 있는 것은 중국 철강 업계의 설비 신증설에 따른 생산 능력 확대가 가장 큰 원인이다.

고도 경제성장으로 인한 철강 수요 급팽창에 편승해 우후죽순 생겨난 철강업체들이 중국 내 수요를 충당하고 남은 잉여 물량을 싼 가격에 한국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동국제강 후판 제조 과정

이 때문에 국내 철강업체들도 덩달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바람에 실적이 크게 악화했다.

지난달 철강협회가 발표한 국내 19개 철강업체(12월 결산법인 기준)의 2005년 3분기 경영 실적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매출액은 10조5,69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포스코를 제외할 경우 매출액은 5조1,113억원으로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해 결과는 딴판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출원가율(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매출원가의 비율)도 전년 동기의 77.8%에 비해 2.7% 상승한 80.5%를 기록했다.

이 역시 포스코를 제외하면 84.9%에서 91.4%로 전년 동기 대비 6.6%의 상승세라는 저조한 추이를 보였다.

특히 일관제철 업종을 뺀 나머지 모든 업종의 매출원가율이 국제적인 원재료 가격 인상과 중국산 저가 수입재의 여파로 급격히 상승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원가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성이 나빠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전기로 제강업체 관계자는 “지난해는 건설 경기 침체로 건설용 자재 시장이 가뜩이나 위축됐는데 국내 건설사들이 중국산 저가 제품을 많이 쓰면서 철강업계가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철강협회 홍보팀 관계자도 “국내 철강 생산에서 철근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인데 중국산 철근이 지난해 많이 수입되면서 관련 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전망도 중국변수로 불투명

더욱 답답한 것은 향후 철강 업황에 대한 전망 역시 중국 변수 때문에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사실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초일류 철강업체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조차도 최근 “중국산 저가 제품이 철강 시황의 키를 잡고 있으며 향후 2~3년 동안 호황은 없을 것”이라는 어두운 예상을 내놓았을 정도다.

문정업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철강업계의 설비 신증설 여파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락한 가격이 아직도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향후 변수는 중국이 늘어난 설비를 얼마나 가동하느냐 하는 것과 설비 통폐합을 통한 생산 능력 조절이 어느 수준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정부가 과잉 투자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 중인 철강 산업 구조조정이 어떻게 귀결되느냐가 국내 철강업계의 향배에도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중국의 철강 공급 과잉 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의 ‘2006년 중국경제 및 철강경기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철강 수요는 10%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철강 공급 과잉량이 무려 5,000만 톤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대 INI스틸 당진공장에서 현장 직원이 압축과정을 거쳐 냉연강판이 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생산 능력의 50%에 달하는 설비가 새로이 건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 철강재 가격 하락세는 여전히 불가피한 실정이며, 수익성 악화가 지속될 경우 경쟁력이 없는 업체들이 퇴출되면서 구조조정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중국 정부의 과열 진정 노력으로 철강업계의 가동률이 하락하면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이 다소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2007년 이후 철강 수급구조가 안정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국내 철강업계로서는 현 국면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 하는 것이 당면 과제다. 중국 변수가 당장 한국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중국의 철강재 공급 과잉이 지척 거리의 한국 시장에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내 철강 수입 수요 감소, 철강 가격 하락 등 요인으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크게 감소하는 반면 중국산 철강재 유입은 더욱 확대돼 국내 철강재 가격에 하락 압력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최대 철강 수출국은 다름아닌 한국으로, 전체 수출량의 24.9%나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쟁국이자 중국의 최대 수입선인 이웃 일본은 고작 3.6%에 불과하다.

고부가가치제품 개발 등으로 경쟁력 높여야

전문가들은 국내 철강업계가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의 가격 하락과 중국산 철강재와의 물량 경쟁을 이겨내려면 결국 경쟁력 강화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당사자인 철강업계 역시 이런 점을 충분히 인식해 올해 최우선 경영 목표로 원가 절감,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 경쟁력 제고를 내걸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의 맏형 격인 포스코는 파이넥스 공법 등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제품 고부가가치화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 산업 등 주요 수요업계와 공동 협력을 통해 신수요를 창출하고, 원료의 안정적 확보를 통해 원가경쟁력을 제고하는 것 역시 주요 목표다.

특히 제품 고급화를 꾸준히 추진 중인 포스코는 중국 철강업체들이 비교 우위를 가진 범용재의 비중을 줄이고, 부가가치와 진입장벽이 높은 자동차강판, 전기아연도금강판 등 8대 전략제품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나간다는 전략이다.

전기로 업계의 강자 동국제강도 중국 변수에 대한 면밀한 대응 전략을 갖춰 나가고 있다. 전체 생산의 50% 가량을 차지하는 철근, 형강 등 건설용 철강재 분야에서는 앞으로 고강도 철근이나 특수 철근 등 고부가 제품 개발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현재 중국에 대한 경쟁 우위가 확보돼 있는 조선용 후판의 경우도 원가 경쟁력 등을 한층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브라질에 슬래브(반제품) 공장을 착공한 것도 전사적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순이다.

문정업 연구원은 “국내 업체들이 중국 변수를 벗어나려면 결국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자동차용 강판 등 고품질, 고기술 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며 개별 업체 입장에서는 제품군 다양화도 택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