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비 면제 등 다양한 회원수 늘리기 마케팅 열기… 후유증 우려

‘어게인 2002?’

4년 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뤘던 한국 축구의 희망을 말하는 문구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은 올 초부터 신용카드 업계에서도 가장 흔하게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4년 전 카드대란을 겪은 신용카드 업계가 또다시 올해 똑같은 실패와 고통을 안을까 하는 염려에서 나온 것이다.

신용카드 회사들이 최근 회원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공세에 돌입하면서 신용카드 업계가 다시금 달아오르고 있다. 자못 ‘출혈경쟁’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카드사들이 올들어 마케팅을 강화하며 회원 수 늘리기에 본격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연회비 면제’, ‘포인트 적립 2배’, ‘무이자 할부 실시’, ‘주유소 리터당 할인액 100원’ 등···.

최근 신용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카드사들의 광고 카피들이다. 카드사들은 일반 광고는 물론 이메일이나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런 문구들을 앞세워 신규 회원 가입을 유혹하고 있다.

최근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카드사들이 내놓는 마케팅 핵심은 연회비가 없는 새로운 신용카드 출시.

신한은행은 올 초 ‘신한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카드 가입자들에게 연회비를 받지 않고 있으며 이들 고객은 1년에 한 번 이상 카드를 사용하면 연회비를 계속 면제 받도록 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영국 프리미엄리그의 맨유 팀과 또 맨유의 주거래은행인 바클레이즈 은행카드와 제휴해 발급하는 이 카드는 카드 사용액에 따라 맨유 게임 관람과 유니폼, 펜던트 등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했는데 신한은행이 회원 확보에 가장 주력하고 있는 카드 종류로 꼽힌다.

또 한국씨티은행도 5월부터 E마트와 제휴한 ‘E마트-씨티은행 카드’ 발급을 시작하며 연회비를 받지 않는 등 신규 회원 확보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일종의 시장 테스트용으로 내놓았다는 이 카드는 특히 가입 후 E마트에서 첫 구매 시 최고 2만원까지 사용액의 10%를 깎아 주는 추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또 현대카드가 선보인 아드보카트 감독의 캐리커처가 새겨진 현대카드M 스페셜 이디션 카드도 평생 연회비를 받지 않으며 하나은행도 6월 초까지 신규 카드 가입 고객들에게 연회비를 평생 면제해 주는 월드컵 이벤트를 실시했다.

삼성카드는 E마트 제휴카드를 발급 받는 고객에게 일정액 이상 사용하면 다음해 연회비를 면제해 주고 있으며 도서구입 전문카드 ‘YEX24-삼성카드’는 가입 첫 해 연회비를 받지 않는다. 외환은행의 ‘예스포유 더블카드’도 8월 말까지 가입하면 연회비를 받지 않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한편 현대카드는 기존 M카드 등 일반회원 중 우수 고객들에게 상위 등급의 카드인 플래티넘 카드로 교체해 주면서 일반카드 연회비만 받는 특전을 베풀고 있다. LG카드 경우는 이미 지난해부터 회원 가족이 ‘굿 패밀리, 나이스 커플’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1명의 연회비를 받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카드 사용액에 따른 포인트 적립과 할인 폭을 이전보다 더 확대하는 것도 최근 두드러진 판촉 전략이다.

한국씨티은행은 대한항공, 아시아나와 제휴한 ‘스카이패스 클럽마스타카드’와 ‘아시아나클럽 마스터카드’ 가입 회원들에게 타사 카드보다 2배 더 많은 포인트를 적립해 주고 있다. 아시아나 제휴카드는 1,000원당 2마일을, 대한항공 제휴카드는 1,500원당 1,8마일을 적립해 주는데 이는 항공 마일리지 포인트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혜택이다.

또 6월 7일부터 30일까지 ‘1~2년마다 여행하세요’라는 판촉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이 기간에 가입한 신규 카드 회원들은 국내선 동반자 무료 왕복항공권을 받았고 첫 해 연회비 면제나 2,000마일 적립과 PDP TV 등 경품 추첨 자격까지 얻는 특전도 덤으로 얻었다.

주유소를 이용하는 카드 회원들에게 종전보다 더 나은 할인이나 포인트 혜택 주기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외환카드는 6월 초 새롭게 ‘더 원’카드를 대표 상품으로 내놓았는데 이 카드를 GS칼텍스 주유소에서 사용하면 일요일에는 리터당 80원, 나머지 요일은 40원의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더욱이 가입 이벤트가 진행되는 8월 말까지는 매주 토, 일요일 리터당 100원이나 할인해 준다.

외환카드가 주유소를 대상으로 혜택을 늘리자 국민카드와 농협, BC카드는 더 나은 혜택을 내걸며 카드 회원 확보 경쟁에 가세했다. BC카드는 ‘대한민국 카드’를 새 주력카드 상품으로 내놓았는데 이 카드 사용자는 리터당 무려 120원의 포인트를 적립받는다. 이는 정유사와의 제휴카드로는 국내 최고 수준의 적립 금액이다.

이처럼 올들어 카드사들이 회원 확보 경쟁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LG카드의 매각과도 관련이 깊다. 내년으로 예정된 ‘1,000만 명 회원’의 LG카드를 인수하는 업체는 국민, 삼성카드와 함께 ‘빅3’체제를 형성하게 되고 나머지 회사는 카드 사업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거라는 우려에서다.

이와 함께 카드대란을 겪은 카드사들이 부실 회원을 털어내고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적자 수렁에서 벗어난 결과 지난해부터 수익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경쟁 격화의 한 원인이다.

이제는 ‘먹고 살 만한’ 재정이 갖춰졌으니 신규 회원을 늘리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는 시기라는 것이다. 때문에 카드대란 이후 2004년까지 줄어들었던 카드 모집인 수도 지난해부터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드 모집인은 2004년 1만6,783명이었으나 지난해 2만2,355명으로 늘어났고 올 1/4분기에는 1,000명이나 더 증가했다.

때문에 ‘신용카드사의 출혈 경쟁이 위험 수위에 다가서고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부실 정리를 마치고 우량 카드사로 새 출발하려는 과도기에 또다시 회사의 수익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신규 회원 확보에 나서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다.

과도한 포인트 적립이나 할인, 무이자 할부 확대, 연회비 면제 등은 카드사들의 수익을 떨어뜨려 다시 부실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눈에 보인다는 것.

실제 최근 들어 카드사들은 백화점이나 할인점 등 쇼핑센터와의 제휴를 더 강화, 무이자 할부 행사를 빈번하게 갖거나 포인트 적립 확대, 할인 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또 카드사 부실을 초래했던 길거리에서의 회원 확보 장면은 사라졌지만 요즘에는 대형 할인점의 모집 창구에서 모집인들이 회원 가입을 적극 권유하고 있는 양상이다. 2002년 상황이 재연될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삼성카드와 롯데카드, LG카드는 아직까지 회원 유치 경쟁에 적극 가세하고 있지는 않아 대조를 이룬다.

1,060만 회원 중 불량 카드를 정리, 960만으로 줄이며 내실을 다진 삼성카드는 대신에 기존 회원들의 카드 사용 장려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매각을 앞두고 있는 LG카드는 사업비가 많이 드는 이벤트는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 롯데카드도 롯데마트와 백화점, 슈퍼닷컴 등의 포인트를 통합해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 제도를 최근 시행하고 있는 정도다.

이에 대해 카드업계에서는 “아직까지 재무 건전성을 해칠 정도의 과당 경쟁 단계에까지 이른 것은 아닌 것 같다”며 “4년 전 쓰디 쓴 고통을 치러본 경험이 있어 또 한 번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관리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도 6월 29일 카드사 임원들을 불러 이례적으로 모임을 갖고, 지나친 경쟁을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회의를 가지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 업계의 경쟁이 앞으로도 계속 치열하게 벌어질 것 같아 수시로 현장 점검에 나서는 등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