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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노사관계 로드맵
한국노총·경영계 핵심쟁점 유예 움직임에 민주노총 반발… 또 표류



▲ 영등포 민주노총에서 열린 제7차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서 조성준 노사정위원장, 이수영 경총회장,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조준호 민주노총위원장, 손경식 대한상의회장, 이상수 노동부장관(왼쪽부터)이 회의를 하기 전 손을 잡고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 이호재 기자


노사관계 로드맵은 결국 도달하기 어려운 허상의 이정표에 불과한가.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이 노사정 3자의 서로 다른 셈법으로 또다시 표류할 조짐이다. 게다가 노동계 내부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계산이 서로 달라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 로드맵 입법예고 강행 방침→ 한국노총과 경영계,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5년 유예 합의→ 정부, 당초 정부안 고수냐 절충이냐 고민→ 한국노총, 3년 유예안 추가 제시→ 민주노총, 정부의 일방적 입법예고시 전면 투쟁 선언···.

지난달 30일 한국노총이 정부의 로드맵 입법예고 강행 방침에 반발해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지역 총회에서 전격 철수하는 사태를 빚은 뒤 2주 남짓 로드맵을 둘러싸고 노사정 간에 주고받은 핑퐁게임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합리적 원칙에 따른 결과를 얻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두사미 로드맵’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사전 수순처럼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은 서로가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는 이상 애초 합의가 불가능한 사안을 공연히 선진화 과제로 내세웠던 게 아니냐는 따끔한 지적도 내놓는다.

애초 합의 불가능한 사안 아니냐

로드맵의 출발점은 2003년 5월부터 12월까지 노사관계 전문가 15인으로 구성된 ‘노사관계 선진화 연구위원회’가 연구, 발표한 ‘노사관계 법ㆍ제도의 개선 방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방안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근로기준법, 노동위원회법,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 등 4개 법에 걸친 총 34개의 개선 과제가 제시됐다.

당시 개선 방안이 마련된 것은 국내 노사관계 법ㆍ제도가 국제기준은 물론 노사의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대립적이고 후진적인 노사관계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데서 비롯됐다.

또한 노동계와 경영계 역시 법ㆍ제도 개선에 상당한 공감을 나타낸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전부터 노동계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금지, 직권중재 등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규정들을 전반적으로 고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데다 경영계도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허용 등 노동시장 합리화에 대한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국내 노동 관련법과 관행을 국제 기준에 맞추라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해외의 목소리도 개선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참여정부의 노사관계 로드맵은 바로 이때 만들어진 개선 방안을 기본 방향과 골자로 삼고 있다. 로드맵은 그해 9월 ‘노사정위원회’로 넘어가 처음 당사자 간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몇 차례 분과별 토의와 워크숍을 거치면서 궤도에 오르는 듯했던 논의는 2004년 4월 총선 및 한국노총의 집행부 교체 등 현안으로 중단됐고 이후 민주노총까지 포함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같은 해 6월 구성돼 바통을 이어 받았으나 이마저도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국회 강행처리 등 다른 현안이 부상하면서 장기 표류했다.

이후 지난해 4월 민주노총의 탈퇴로 공전을 거듭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노사관계 로드맵 논의를 재개한 것은 지난 7월 초. 무려 1년3개월을 허송한 뒤였다.

그러나 다급한 쪽은 아무래도 로드맵 일정을 제시한 정부였다. 내년 1월부터 복수노조 시대가 열리게 돼 있어 올해 내로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등이 입법화되지 않으면 산업현장에 큰 혼란이 예상되는 데다 노사관계 로드맵 자체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노사 관행을 모니터링해 온 OECD가 늦어도 내년 봄 이전 국제기준에 맞는 입법 완료를 종용하는 것도 국제사회에서 위신을 감안해야 하는 정부에겐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 노사관계 로드맵에 대한 정부안의 입법예고가 나간 직후 한국노총과 경총, 대한상의가 서로에게 화살이 될 수 있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의 두 가지 핵심 쟁점을 5년 동안 유예하자고 전격 합의하면서 정부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한국노총과 경영계의 합의는 이번 로드맵의 알맹이를 ‘유예’라는 형식을 빌려 결국 ‘유야무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8월30일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노사관계 법 제도 선진화 방안 입법 예고 강행 발언에 반발,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중인 ILO 아시아 태평양 총회에서 대표단을 철수키로 했다는 기자회견을 갖고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를 당혹케 한 이 합의는 미묘한 후폭풍을 낳고 있다. 산별노조 전환에 따라 기업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별 문제가 안 되는 민주노총이 반발하고 나선 데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학수고대한 기업들도 볼멘소리를 쏟아내는 등 노동계와 경영계의 전선이 얽히고설키고 있는 것이다.

"한바탕 결전 벌어질 판"

이런 복잡한 구도 때문에 노사정 3자 간에 한바탕 결전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나름대로 조율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어떤 경우에도 파열음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로드맵의 핵심 과제인 두 가지 사안을 유예하는 것은 노사가 서로의 약점을 미봉책으로 덮으려는 잔꾀일 뿐”이라며 “하지만 정부 역시 밀어붙이기 입법을 추진했을 때는 거센 반발에 부닥칠 게 뻔해 로드맵의 원만한 결실은 현재로선 불투명해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표방하며 3년을 끌어온 노사관계 로드맵. 결국은 우리 노사관계의 후진성만 다시 확인하는 ‘후퇴의 이정표’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입력시간 : 2006/09/15 11:43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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