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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색깔, 기밀, 그리고 거짓말
친북교과서 논쟁에 군사기밀 유출, 관제데모 논란으로 얼룩



국회 행자위 서울시 국감에서 이명박 시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이종철 기자



‘정책 국감’을 선언하며 기세 좋게 출발한 17대 국회 첫의 국정 감사는 첫날부터 ‘색깔론’으로 얼룩졌다. 국회 교육위원회의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10월 4일 제기한 이른바 ‘친북 교과서’ 논쟁이 그 시발이었다. 권 의원은 “ 금성교과서가 펴낸 고등학교 한국 근ㆍ현대 교과서가 해방 이후 남한의 역사는 부정적이고 냉소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마치 민족 자존을 지키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체제인 것처럼 우호적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의 발언 직후 파장은 각계 각층의 논란으로 번졌다. 한나라당은 “ 좌파 정권의 전형적인 실상”이라고 십자포화를 퍼부었고, 열린우리당은 “ 구태에 찌든 색깔 공세”라고 맞받아 쳤다. 또한 교과서 집필자가 직접 나서 “ 권 의원과 공개 토론을 할 수도 있다”며 반박 기자 회견을 가졌고, 역사 학계에서도 저마다의 ‘ 시각차’에 따라 논쟁에 접근했다. 언론계에서도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접근 태도가 각각 확연하게 갈렸다.

- 여야 윤리위 맞제소로 극한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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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만만치 않은 이슈가 국방위원회의 국감에서도 터졌다. “ 한반도 전쟁 발발시 16일만에 수도권이 붕괴된다”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의 발언은 ‘ 좌파 교과서’ 논란과 함께 다음날 아침 모든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사태는 ‘ 군사 기밀 누출’ 논란으로 확산, 급기야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국감장에서 “ 스파이와 다름 없다”고 박 의원을 직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 정쟁을 위한 기밀 팔아 먹기’였는지 ‘ 안보 불감증에 대한 경고’였는지의 논쟁 속에 국방위는 12시간동안 파행됐고, 양당은 박진ㆍ정문헌 – 천정배ㆍ안영근 의원을 각각 국회 윤리위에 맞제소 하는 극단 대립으로 확산됐다.

개별 의원의 돌출적 발언이 발단이 된 이상의 문제와는 달리, 서울시의 행정수도 건설 반대 ‘관제 데모’ 논란은 예견된 일이었다. 6일 행정자치위원회의 서울시 국감에서 피감 기관장으로 나선 이명박 서울시장은 쏟아지는 여당 의원들의 추궁을 여유있게 받아 넘기며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다.

이 시장은 열린우리당 우제항 의원이 관제 데모 의혹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제시한 문건에 대해 “(문건 발송)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뒤, “사실이 아니라면 공문서 위조가 될 수도 있다”고 반격하기까지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 ‘불도저’ 이명박의 한판승”으로 분위기를 관측했다.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사흘 뒤. 서울시는 9일 자체 조사 결과 각 구에 ‘업무 연락’을 보낸 사실을 확인, 열린우리당측이 제시한 ‘ 관제 데모’ 문건의 존재를 인정했다. 서울시는 “ 이 시장은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사태는 이미 이 시장의 거짓말 논란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이 시장과 신현희 행정국장을 위증죄로 고발키로 하는 등 즉각적인 강경 조치에 착수했다. 수도 이전 반대 여론을 이끌고 있는 이 시장의 기세는 단숨에 꺾였다. 한나라당 역시 ‘ 몰매’를 맞고 있는 자당 소속 단체장을 모른 척 할 수도, 무작정 옹호할 수도 없는 곤혹스런 처지에 내몰렸다.

이처럼 ‘색깔ㆍ안보’ 논쟁, ‘관제 데모’ 논쟁 등으로 지속된 국감 첫 주는 ‘ 시민 단체 국감 모니터단 구성론’으로부터 ‘국감 무용론’이라는 냉소까지 파생되는 해프닝까지 빚었지만,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정치권은 다만 “정책 국감 실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 국감 두 번째 주에는 ‘경제 국감’이라는 슬로건을 붙여 시작했다.

국방위 국방부 조달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안형근 의원이 박진 의원에게 '스파이'라 발언한 것과 관련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정회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심각하게 앉아있거나 자리를 뜨고 있다.
/ 고영권 기자

그러나 ‘핵폭탄 발언’만 다소 자제됐을 뿐,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미의 현안인 경제 위기를 다루면서도 여야는 이념 공방을 되풀이했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을 ‘ 좌파’로 규정하고 “관치에서 시장 경제로의 복귀”를 촉구했다. 반면 여당은 ‘좌파’논쟁을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일축하면서 정부의 경제 운용 기조를 적극 옹호했다.

한나라당이 특히 집요하게 파고 든 부분은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사이에서 경제 운용을 두고 빚어 진 ‘노선 차이’였다. 이 부총리를 겨냥해 “ 노무현 대통령과 몇 번이나 독대를 했느냐”(엄호성), “ 좌편향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이 부총리를 기용한 게 아니냐”(윤건영)며 파고 든 비생산적 추궁이 좋은 예다.

이에 이 부총리도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을 미국과 비교해 보면 케리 보다 부시 쪽에 더 가깝다”는 뜬금없는 비유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방카슈랑스, 국민연금, 카드 사태, 환율 방어 등 굵직한 경제 현안을 다룬 질의서는 쏟아졌지만, ‘좌파경제’ 공방 속에 본질에 접근하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특히 카드 사태 규명과 관련, 핵심 증인들이 대거 불출석한 것도 맥 빠진 국정감사의 한 원인이 됐다.

- 4대 개혁 입법안 발표로 또다른 충돌예고

한편 국감이 진행 중인 와중에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과거사기본법, 사립학교법, 언론개혁법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안’을 차례 차례 확정 발표하는 전략적 치밀함을 보였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한나라당은 “ 국감 물타기용”이라고 반발했다.

가뜩이나 외교 안보, 경제 분야 국감이 ‘반짝 이슈’ 외에는 별다른 소득 없이 흘러 온 마당에, 여당의 개혁 공세가 적잖이 부담스런 눈치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해당 상임위의 법안 심리 일정에 맞춰 제기한 것으로, 여당의 이런 준비성은 칭찬해 줘야 할 일”(이부영 의장)이라며 아랑곳 않고 있다.

이 같은 양당의 ‘장외’ 신경전은 국정 조사가 끝난 뒤의 입법화 과정에서 극단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11월 안으로 4대 법안을 모두 처리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반면 한나라당은 4개 법안 모두에 대해서 “수용 불가” 입장이 확고하고, 민주노동당도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개혁 후퇴”라는 비판 공세에 나선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기 국회 막바지인 11월부터 본격화되는 법안 심리와 표결 과정에선 3당의 물고물리는 난타전이 예상된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카드 대란 국정 조사’를 실시키로 합의, 국정 감사 직후 본격적으로 추진키로 방침을 정했다.

정기 국회의 하이라이트인 ‘국정 감사’를 거치며 고조된 여야간 대치가 해소될 기미는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국면이다.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hifidelity@naver.com


입력시간 : 2004-10-2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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