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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운동장은 공사중
시설복합화 사업이유 서울시 11개 초·중·고서 진행
학생들 학습권 침해·학교공간의 상업화 논란 제기도





김청환기자 chk@hk.co.kr



"강당에서 피구만 하기 지겨워요. 부모님은 회사 일만 신경 쓰지 운동장 없어지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10일 오후 3시 40분 서울 일원동 대청공원. 구립 청소년 도서관 담장 주변에 모여있던 7명의 어린이 가운데 이 아무개(13) 어린이가 한 말이다. 담장에 올라가 있는 아이, 주변에서 담장에 올라가려 기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이들은 모두 공원 바로 옆에 있는 영희초등학교 6학년생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작년 1월 4일부터 시작된 복합화시설 공사를 위해 둘러쳐진 칸막이 때문에 운동장의 땅을 밟을 수 없다. 준공예정일은 올해 9월. 작년에 5학년이었던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거의 박탈당한 셈이다.

10일 서울 논현초등학교 복합화 공사로 가림막이 설치된 운동장. 이 공간에 복합화 시설이 들어서게 되면 인근에서 빈공간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일부 서울시내 초등학교가 시설 복합화 사업을 이유로 운동장 공사를 벌여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학교시설 내 민자 유치와 운영으로 학습공간이 상업화 하는 것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특히, 환경오염에 민감한 어린이의 생태조건과 정서 등 문화 조건에 운동장 난개발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체육수업을 이틀에 몰아서(?), 소음과 먼지는 어쩌나

서울시교육청은 11일 본보에 건낸 자료<표>에서 강남구 논현초, 영희초, 언주초교를 비롯한 서울시내 11개 초, 중, 고교가 시설 복합화 사업을 이유로 운동장 공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1년~3년 정도 걸리는 공사기간 동안 체육수업이 파행적으로 이뤄져 초등학생들이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5일 운동장 공사를 시작한 서울 논현초등학교 관계자는 이번학기 체육수업은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을 이틀동안 대관 해 하루종일 진행하고 나머지는 실내수업 등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10일 오전 11시께 운동장 가림막과 학교건물 사이의 골조물 아래, 좁은 공간에서 친구들과 배드민턴을 치고있던 김 아무개(12. 5학년) 군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할 수 없어 답답하다"며 "그냥 운동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영희초등학교는 학교 강당과 인근 대청공원 등지에서 대체수업을 진행한다. 실내수업의 경우 체육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종목이 한정적인데다가 나무가 빽빽한 대청공원에는 탁 트인 공간이 없어 학생들은 불만이 높다.

학부모 김 아무개(52) 씨는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못 받아 불편한 것도 있지만 소음과 먼지로 인한 스트레스도 큰 것 같다"며 "암반지역인 운동장 공사 소음과 먼지 때문에 병원에 간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반발 vs. 밀어붙이는 학교당국

공교육을 위한 교육과 학습의 공간인 초등학교에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발 역시 만만치 않다. 학부모설명회가 실시된 지난해 5월부터 서울 논현초등학교의 일부 학부모들은 시교육청 등지에서 시위를 벌이며 이 사업을 반대해왔다. 복합화사업 계획이 가시화된 지난 2007년 7월 재학생, 학부모 설문조사에서는 반대표가 72.9%로 찬성표를 던진 18%를 압도했다. 하지만, 지난 1월 5일 운동장 복합화 사업은 예정대로 착공했다. 현재는 운동장에 가림막이 쳐져 학교 건물 2동 외에는 빈 공간이 거의 없는 상태다.

학부모의 반대에는 이유가 있다. 2011년까지 공사를 하는 논현초등학교 운동장 부지는 연면적 1만 1,800㎡ 로 이미 완공된 언북초등학교(1만 5,560㎡) 등에 비해 좁은 편이다. 지하주차장 진출입로와 복합화건물 등이 들어설 경우 운동장 면적은 더 좁아진다. 주변에 유흥가가 즐비한 논현초교에 지하 유료주차장이 건설될 경우 외부 유입인구로 가뜩이나 열악한 학습환경이 훼손될 우려도 있다. 반대측 학부모들은 공청회 설문조사 등에서 학교측이 불참 학부모의 숫자를 찬성의사 표에 포함시키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한 것 역시 문제삼았다.

올해 논현초등학교 입학생은 30여명으로 급감한 상태다. 학교측과 학부모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지난 2007년 7월께 이 학교 100여명의 학생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교 당국은 주민설명회와 학부모설명회 등을 통해 의견수렴을 거쳐 기본설계안을 수정했으며 완공될 복합화 건물이 주차난 해소 등 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상업공간 될 학교서 흙장난 못치는 아이들

생태문화 측면에서 소음과 먼지를 비롯한 공사기간 동안의 환경공해, 공사후의 꽉 찬 운동장 환경이 아이들에게 주는 악영향은 가시적이지 않지만 근본적인 문제다.

1-10일 서울 논현초등학교 학생들이 복합화 공사로 운동장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남은 비좁은 공간에 있는 철골구조물 근처에서 놀고 있다.
2-서울 논현초등학교 학생들이 복합화 공사로 운동장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남은 비좁은 공간과 건물 사이를 10일 지나가고 있다.
운동장 복합화 공사는 각종 화학물질로 뒤덮여있는 도시공간에서 초등학생의 생태환경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언주초, 영희초교의 운동장 복합화 건물 설계도면에 포함돼 있는 실내골프연습장, 주차장, 헬스장 등의 유료시설 역시 이용대상이 제한적이며 학교의 주인인 어린이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민자 유치나 운영으로 교육 공간인 학교가 상업화 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운동장 복합화 건물에 들어서는 유료시설은 민간자본을 유치해 건설한 경우 민간이 이를 직접 운영하며 학교장이 임대권을 행사한다.

홍성태 상지대 (도시생태학) 교수는 "현재와 같은 학교공간의 상업화 추진은 위탁급식 비리와 같은 학교 부패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며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비어 있는 땅"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격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의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정서적으로 메마른 철골구조의 척박한 문화적 환경이다.

"좋은 공간이 좋은 인간을 만든다"(페스탈로치)

■ 운동장 갈아엎기 책임은 누가


서울 강남구교육청이 11일 본보에 제공한 관내 <학교시설 복합화사업 추진현황>에 따르면 포이초, 영희초등학교를 비롯한 학교 운동장 복합화사업은 2001년 서울시가 각 구에 내려보낸 '학교지하주차장 건설계획'에 따라 시작됐다. 최초로 운동장 복합화 공사를 벌인 서울 금오초등학교가 사업을 벌인 시점 역시 2001년이다.

이같은 사업계획은 서울시내에 녹지 100만평을 확보하는 '그린트러스트운동'을 벌이며 학교 담장 허물기 사업을 주관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재직중이던 2002년부터 2006년 사이 본격화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본보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서울시에 완공된 41개 초등학교 복합화 시설 가운데 26개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재임시에 완공됐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 재임기간인 2008년까지는 나머지 15개 서울시내 초등학교 복합화시설이 완공됐다. 현재 7개 서울시내 초등학교에서는 운동장 복합화 공사를 진행중이다.

서울시 조경팀 관계자는 "서울시는 학교 공원화 사업으로 운동장 녹지화만 관계하고 있으며 건물을 짓는 것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며 "언주초등학교 복합화사업 민자유치는 민간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교육부에서 해보자고 제시했다"고 발뺌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 역시 "초등학교 운동장 복합화 사업은 2001년 서울시에 의해 시작됐다"며 "민자 유치 부분은 서울시에 문의하는 게 맞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대부분의 초등학교 운동장 복합화 사업 주체는 구청, 구교육청, 학교로 3원화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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