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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고시(考試)가 아니다

‘상해의 한 교수는 문학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문학은 반드시 영구불변의 인성을 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나 다른 몇몇 작가들은 영구불변의 인성을 썼기 때문에 작품이 지금까지도 전해지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작품은 모두 소멸되고 말았다. (...) 그런데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게 있다. 이미 소실된 그 작품들을 오늘날의 그 교수가 어떻게 볼 수 있었으며, 그들 작품에 영구불변의 인성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 전해지기만 하면 좋은 문학이요, 소실된 것은 나쁜 문학이다.’ (노신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중에서)

종종 문학가가 갖는 두려움은 자신의 작품이 소실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실된(잊혀진) 작품이 반드시 나쁜 작품인지 아닌지는 위의 글처럼 쉽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나마 작가들이 가진 소실의 두려움은 아직 작가가 되지 못한, 그러나 작가가 되려하는 자들이 가진 ‘소실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두려움’보다는 나은 것이다.

잊혀짐과 살아남음의 과정을 하나의 ‘검증’단계라 부를 수 있다면, 신인들에게 해당되는 ‘등단’이라는 검증시스템은 한국문단에서 꽤 엄격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등단을 통해 작가가 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학출판사나 잡지, 신문 등의 공모에 투고하여 당선되는 형식으로 말이다.

사실 ‘문학하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등단 자체는 딱히 중요한 요소가 아닌데도, 그것이 없으면 작가로 살아가기가 퍽 힘들다. 청탁도, 출간도, 작가로서 뭐 하나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다.

때문에 매년, 그런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예비작가들의 가슴에는 멍울이 남는다. 이런 푸념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대체 어떻게 하여 이런 형편없는 작품들이 이름을 날린단 말인가? 자신들이 쓴 작품들-진짜 걸작들인-이 책상 서랍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말이다.’ (미셸 투르니에 <외면일기> 중)

하지만 그건 소질이든 재능이든 댁들 사정이고, 어찌되었든 심사위원들과 잡지의 눈을 의심해서는 곤란한 일이다. 오히려 다소 기이한 일은 제도와 관련하여 존재한다. 이를테면 등단이라는 현재의 검증 시스템을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책을 출간한 경우, 어쩐지 정식 작가로 대접을 안 해주는 분위기가 있다는 점과, 등단을 통하지 않은 작가가 유명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반증해준다.





그러다보니 한 번 등단했음에도 더 좋은 시스템으로 검증을 다시 받기 위해 재등단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울타리 밖에서 보면, 그 모습은 상당히 고립적이고 비효율적이며 권력구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문학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거의 일반 계몽 수준의 말이지만, 그러나 그 역시도 쉽지가 않은 것이다.

외국의 많은 경우(일본을 제외하고) 등단이 공모가 아니라 ‘출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은 이 지점에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내면서 등단하는 것이고, 작가 약력에 어디 어디로 등단... 이런 게 달라붙지 않는 사례들 말이다. 물론 ‘선택과 집중’은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천천히 작품-독자의 관계 속에서 약진적으로 작품이 검증될 수도 있는데도, ‘시작부터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 부작용으로, 많은 문청들이 등단 자체에 목을 매고, 어떻게 하면 등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알고 싶어 하며, 응모하는 출판사나 신문사의 문학적 성향까지도 고려하는 등, 문학 자체와 하등 상관없는 기이한 노고들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문학은 문학일 뿐이다. 그건 고시도 아니고 통과의례도 아니다. ‘작가의 당면과제는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라는 이 게임의 원칙은 지금껏 변하지 않았고 아마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원칙을 먼저 생각하고 부차적인 것을 고려해야 맞는 순서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의 상황은 그 역순인 것처럼 보인다.

덧붙여, 혹여 출판 중심의 등단 시스템이 가져올 수 있는 함량미달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럴 만큼 한국문학이 허약하지도 않고 독자들도 바보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제도 덕에 살아남는 게 아니라 결국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기회가 평가의 다른 말이 되길 바라는 많은 문청들을 위해, 등단의 형태가 지금보다 좀더 성글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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