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걸리버 여행기각 나라와 종족 특징 속 숨어 있는 비판과 상징 읽는 재미 쏠쏠

미리 고백하자면, 유명한 고전문학 중에 아직도 읽지 못한 작품들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신간에 대해서는 점점 민감해지면서 고전에 대해서는 둔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너무 유명하거나 내용을 대충 알고 있는 고전은 자꾸만 뒤로 미루게 된다. 이야기를 많이 듣다보니 읽지 않았는데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도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이 책에 포털 사이트의 이름인 야후(YAHOO)가 등장하며 천공의 섬 라퓨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릴 때 동화책으로 접했던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읽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첫 장을 넘긴 후에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이 소설은 1726년에 출간되었지만 과거의 여행기라기보다 지금 여기, 야후들을 향한 생생한 비판을 담고 있는 풍자 소설이며, 가장 독창적인 고전 걸작이라는 평에 걸맞은 기상천외한 이야기보따리였다.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용 동화로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사실 어른들을 위한 모험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걸리버가 소인국에 간 내용은 여행기의 첫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 흥미진진한 기록은 그 이후에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은 16년 7개월 동안 소인국과 거인국, 하늘을 나는 섬나라, 준마 종족 후이님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겪은 내용을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은 모험담 그 자체로 읽어도 재미있지만 각 나라와 종족의 특징 속에 숨어있는 비판과 상징을 읽어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소인국 릴리퍼트를 통해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왜소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이는 당시 영국의 왕궁과 정치에 대한 독설과 야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영국 수상이 스위프트의 영원한 적이 되어 그가 영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했다는 기록도 있다. 각 나라의 이상한 법과 전쟁에 대한 비판, 위대한 것을 증오하고 서로 질투하고 배신하며 권력만을 향해 나아가는 정치 권력층의 부패에 대한 비판은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하다.

불멸의 인간, 스트룰드브루그에 대한 이야기와 야만 상태의 인간 야후와 지성을 가진 말 후이 족에 대한 이야기처럼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여행담과 권력층의 부패와 탐욕, 위선에 대한 비판까지 담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는 재미와 주제 의식을 두루 갖춘 걸작이다. 그런 면에서 <걸리버 여행기>는 어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기가 아니라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과 악, 그 이중적 본질에 대한 여행기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서유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