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엥키 빌랄의 '야수의 잠'

미안하지만 이 책은 절판되었다. 프랑스에선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더 이상 서점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기억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기억하려고 애쓰는 역사의 상처는커녕 이 책이 잠시 한국에서 출판되었다는 사실조차 이제는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을 듯하다.

새로운 것, 새것만이 과거의 것들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기억은 그저 남루한 헝겊 쪼가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이 없었다면, 그것이 아무리 누추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일지라도 그것을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세계는 이만큼이라도 유지될 수 있었을까?

엥키 빌랄의 <야수의 잠>은 2026년이라는 근 미래를 배경으로 33년 전 자신이 태어나 버려진 폐허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기억의 여정을 그리고 있는 만화이다. 프랑스의 만화가이자 영화감독, 작가인 엥키 빌랄은 섬세한 스케치와 영화적인 장면 구성으로 근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우리를 초대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결국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라는 작가의 통렬한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라예보를 기억하는가. 지난 세기말 인종청소로 30만 명이 학살당한 보스니아 내전을 기억하는가. 지금은 사라진 유고 연방 출신의 작가는 자신의 조국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그 전쟁의 기억을 30여 년 후의 미래 세계로 가지고 간다.

2026년 세계중앙기억은행에서 일하는 기억 전문가 나이키 아트스펠드라는 사상, 학문, 문화를 주요한 타도 대상으로 삼는 몽매주의 교단의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태어났던, 아직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폭격에 의해 천정이 뚫린 병원을 기억해내고, 그때 며칠을 사이에 두고 함께 태어나 고아가 됐던 아미르와 레일라를 찾아 나선다.

엥키 빌랄이 그려내는 미래 세계는 그러나 1993년의 사라예보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원리주의 대신 몽매주의가 판치고 세계는 위기에 처한다. 작가는 그러한 결코 진보되지 않은 미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지금 여기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엥키 빌랄이 했던 것처럼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는 나는 슬프다. 역사가 우리들 기억의 총체라면, 우리들의 기억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인가. 엥키 발랄이 기억하려고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는 사라예보까지는 아니라도, 우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기억하고는 있는가.

혹, 왜곡되고, 잊기를 강요당하고, 폐기처분 되지는 않는가. 우리는 지금 여기의 기억을 고스란히 우리의 다름 세대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전해줄 수 있는가. 지금 이곳에는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작가의 소명이란 결국 기억하는 일이란 걸 이 책을 통해 새삼 떠올린다. 그것도 누구보다 더 생생하게 말이다. 기억하기 위하여 나는 또 차곡차곡 내 언어들을 쌓아 올린다.

<야수의 잠> 첫 장을 펼치면 폭격으로 구멍이 뚫린 천장 사이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엥키 빌랄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그 별 아니었을까 문득 깨닫는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워도 기억이 결국 희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그런 믿음 하나가 내게도 별처럼 떠오른다.



김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