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호두나무

바쁜 일상에 파묻히다 보면 날짜가 흘러감을 숫자로만 인식하게 된다. 곧 새해를 맞는다. 한 해가 가기 전에 마쳐야 할 일 속에 하루를 분주하게 보낸다. 그러다 보면 연말연시의 넘치는 화려함은 우리와는 무관한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연말인지라 1년에 한번이라도 가까웠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모임들도 많다.

도심에 나갔다가 밤이 되어 변신하는 화려한 나무들의 모습에 크게 놀란다. 따뜻한 노란빛 전구 색깔에서 나아가 은빛, 초록빛, 남빛 등등 화려한 전구를 매어 달고 나무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수형을 드러낸 채 반짝거리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잎 떨어진 겨울 나뭇가지들의 모습을 제대로 느끼는 시점이 바로 나무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등장하는 겨울철이다.

나무는 가지의 발달만으로도 어느 조형물보다 아름다운 존재를 만드는구나 싶다가도, 이렇게 절실한 나무들을 평소엔 왜 의미 있게 느끼지 못하는 걸까, 하는 자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도시의 밤에서 사람들은 나무를 생명이 있는 자연이 아니라 그냥 도시 조형물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호두나무는 꽃피는 시기도 열매 맺는 시기도 다르지만 그래도 겨울이 어울리는 나무 이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 많은 시기도 이즈음이고, 따뜻하게 구워낸 호두과자가 가장 좋을 때도 이즈음이다. 거실에 앉아 호두를 까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따뜻한 풍경이 떠오르는 때도 이 때이다.

사실 호두나무는 고향이 중국이다. 우리나라에 많이 심고 많이 익숙하지만 심지 않아도 절로 자라는 자생지가 없다. 천안 광덕사에 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00년이 되었다는 호두나무가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이 나무는 700여 년 전 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이라는 분이 중국에 가서 가져와 심은 호두나무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인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 호두가 출토되어 호두가 들어온 것이 원삼국 시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에는 18세기경 한국에서 전파되었다고 한다.

호두는 잘 알아도 호두나무를 잘 아는 사람이 드문데, 호두나무는 낙엽이 지는 큰키 나무이다. 잘 자라면 20m 정도까지도 큰다. 5~7개의 작은 잎들이 모여 복엽을 만든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번도 보지 못했을 꽃도 있는데 봄에 피며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르지만 한 나무에 달린다. 수꽃은 참나무나 포플러 종류처럼 길게 늘어지는 유이꽃차례에 달리며, 암꽃은 1~3개씩 바로 서서 핀다. 풍매화이므로 화려한 꽃잎은 물론 없다.

열매가 익어도 우리가 보는 쭈글쭈글한 골이 패이고 딱딱한 갈색 껍질은 볼 수 없다. 겉에 초록색의 껍질과 과육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호두나무를 한자로 호도(胡桃)라고 하는데 이 호두나무 열매의 모양이 복숭아를 닮아서 그리 붙여졌다고 한다.

호두의 계절은 지금부터 부럼을 찾는 음력 1월까지 이어질 듯한데, 호두를 보면서 이 둥근 열매들도 알고 보면 모두 나무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추위에 약한 호두나무가 이 땅에 자리잡고 적응하며 열심히 살아온 보람을 조금은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