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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장면을 키워드로 풀다

'…한국문화' 1차분 5권 출간, 기존 학설 뒤집는 새로운 사실 눈길
  •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간담회(왼쪽부터 서신혜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신수정 문학평론가, 박철상 고문헌연구가, 김문식 단국대 교수)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한국문화 시리즈 '키워드 한국문화'를 출간했다. 한 장의 그림, 하나의 역사적 장면을 키워드로 한국의 문화의 정수를 선보인다는 점이 기존 출간된 한국문화총서들과 차별화된 점.

지난 5일 1차분 5권이 출간됐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주제로 쓴 1권 <세한도-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이하 세한도)와 지난 해 공개된 정조 어찰 297통의 내용을 풀어 쓴 2권 <정조의 비밀편지-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이하 정조의 비밀편지)은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들이 실려 눈길을 끈다.

완당평전 오류 200개 제기

고문헌연구가 박철상 씨는 국내 추사 김정희 연구의 일인자. 2003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저서 <완당평전>에서 200여 군데에 이르는 오류를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는 그는 신간 <세한도>에서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새 자료를 공개했다.

8개 주제로 묶은 이 책은 이 중 7편이 새로운 내용을 실은 '대중논문'의 성격을 지녔을 정도로 추사 연구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일례로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되는 과정의 추국일기는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 박 씨는 "실제 추사의 육성이 담긴 증언이 나온다. 지금까지 추사를 연구하면서 공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
'문: 죄인 김정희 나이 오십오 세. 윤상도의 경인년 상소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네가 원래 만든 상소문에서 나왔으며, 누구에게 전달됐고, 누구를 사주했는지 모두 근거가 있다.(…)

답: 저는 늘 윤상도의 흉악한 상소가 천기를 무너뜨리고 인륜을 파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굳게 붙들고 있는 의리 또한 다른 사람에 뒤처지지 않습니다. 어찌 그런 주장을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51-52 문초 내용 중에서)


"<세한도>가 나온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사는 세한도를 1844년 그렸지만, 1810년 한 공방에서 소동파가 쓴 친필 글씨를 보고 이미 모티프를 발견합니다. 그 기억이 30년 동안 추사의 머릿속에 있었고, 세한도의 기법을 본인이 사전에 그렸던 점이 발견됩니다. (<세한도>를 한 순간의 영감으로 그린 게 아니라) 실제로 30년 이상을 본인이 연구하고 마음에 둔 것을 그린 것이라는 의견은 지금까지 역사학계 시각과 전혀 다른 것이지요."

저자는 책 말미에 청대 문사들의 제영을 최초로 모두 완역해서 실었다. 이는 추사가 청나라 문인들과 교유하며 학문을 습득하고 그들과 깊은 친분을 나눴다는 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추사의 글씨와 그림이 청나라까지 인정받고 회자됐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

정조 독살설 '허구'에 마침표 찍다

지난 해 정조 어찰 발굴부터 전 과정에 참여했던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정조의 비밀편지>에서 대중의 눈높이로 어찰을 해석하고, 그 맥락을 설명한다. 정조가 신하 심환지에게 보낸 297통의 이 어찰은 주지하다시피 정조와 정적관계로 알려진 심환지가 비판적 협력자의 관계였음을 보여준 근거로 지난 해 역사학계 최대 이슈가 됐다.

안대회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정조 어찰 관련 두 편의 논문을 보완하면서 새로운 자료를 추가했다. 69페이지 '키워드 속 키워드'를 보면, 편집광 정조가 누구에게 얼마만큼 어찰을 보냈는지 현재 공개된 문건을 토대로 통계를 냈다. 아직 그 전모가 모두 밝혀지진 않았지만, 정조 어찰은 크게 친족과 대신에게 보낸 것으로 나뉜다.

정조의 개혁정책을 추진한 명재상인 채제공에게 보낸 어찰이 현재 수십 통 확인됐으나 실제로 지난 해 공개된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고, 그의 문집에도 10통 내외가 전한다. 화성 건설을 주도한 조심태에게 화성 건설관련 보낸 어찰 14통, 수신자가 밝혀지지 않은 신하에게 보년 어찰 14통이 전해진다. 이밖에 서형수의 <명고전집>에도 어찰 12통이 실려있고 남공철에게 보낸 어찰첩 4첩이 연세대에 소장돼 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일부 역사학계에서 제시한 '정조 독살설'에 대한 반론이다. 7부 '만년의 병세와 독살설'에서 저자는 여섯 가지 근거를 들어 독살설을 부정한다.

'첫째, <정조실록>과 <어찰첩>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듯이, 정조는 오랜 지병이 있었고, 이 해 내내 병으로 시달렸다. (…) 둘째, (수은이 들어간 연훈방 처방을 권유한 심인은 노론 벽파의 영수이자 정조의 정적인 심환지의 친척이란 주장에 대해) 한의사의 견해에 따르면 정조의 체질에는 이러한 약물로 독살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셋째, 아무리 독살의 의지가 있다고 해도 심각한 중병 상태인 6월 이후에는 구태여 독살할 필요가 없었다. (…)넷째,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는 정순왕후가 들어오기 직전 세자와 함께 사경을 헤매는 정조를 지켜보았다. 여섯째, <어찰첩> 전체 내용을 분석해보면 1795년 '벽패환국' 뒤로는 정조에게 심환지와 벽파는 적대적 관계라기보다는 비판적 협력자로서 정치적 동반자 관계라고 보아야 할 만큼 최측근 신료였다.' (132-139페이지)

안대회 교수는 이 책에서 역사학자 이덕일 씨 등이 정조 독살설 논거로 제시한 '오회연교'에 대해서도 역시 반론을 제기한다. 오회연교는 정조 서거 20여일 전인 1800년 5월 30일 신하들에게 내린 정국 구상관 관련된 일종의 담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자들은 용사를 빌라는 경고'와 '새 인물을 재상으로 등용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덕일 씨는 <조선왕 독살사건>에서 오회연교의 반포로 남인이 중용되고 노론 벽파가 실각하게 돼 심환지 등이 위기감을 느끼고 독살의 의지를 펼쳤으리라 주장했다.

"책에서 '오회연교'가 표적을 삼은 것은 노론 벽파가 아니라 오히려 신파라는 걸 심로승의 사례를 통해서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정조가 죽던 날 심환지와 가장 정적관계에 있는 심로승이 어떻게 서술했는지를 정리해 독살설 기미를 찾기가 어렵다고 정리했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바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야말로 혼이 달아나고 넋이 빠져 있었다 저녁에는 필동에 들어가 아우와 손을 잡고 통곡하였다.'(141페이지, 심로승의 글에서)

문학동네 '키워드 한국문화'는 이밖에 30여점의 구운몽도를 감상하는 <구운몽도-그림으로 읽는 구운몽>(정병설 저), 왕세자의 입학식을 통해 조선시대 제왕교육을 설명하는 <왕세자의 입학식-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김문식 저), 안견의 <몽유도원>를 통해 옛 사람들이 생각한 이상향을 제시한 <조선인의 유토피아-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서신혜 저)가 1차분으로 함께 출간됐다.

2007년부터 3년간 기획된 이 시리즈는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고문헌연구가 박철상 씨, 신수정 문학평론가,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기획위원인 신수정 문학평론가는 "앞으로 20~30권이 추가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저자가 1년 간 우리나라 산천을 직접 돌아다니며 찍은 은행나무 사진을 실은 <은행나무, 동방의 성자>(강판권 지음)을 비롯해 최도현의 <소리꾼>등 5권의 책이 2차분으로 곧 출간될 예정.

역사의 한 장면을 키워드로 삼아 풀어 낸 이들 책 출간을 기념해 5명의 저자들은 오는 2월 중 '시민들과 함께하는 키워드 한국문화 교양강좌'를 무료로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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