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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체제는 엄청난 연구의 보고"

[책과 작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신간 <동원된 근대화>, 대중독재논쟁 후 5년간 통찰의 결과물
2000년대 중반, 인문, 사회과학계는 흥미로운 논쟁으로 들끓었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의 이른바 '대중독재'논쟁이 그것. 근대 이후 억압과 강제를 벗어나 대중의 자발적 동의를 얻은 새로운 형태의 독재가 출현했다는 요지의 통찰은 이념 스펙트럼을 넘어 학계 뜨거운 논란을 가져왔다.

2004-2005년에 걸쳐 조희연 교수와 임지현 교수는 논문과 <역사비평> 등 전문 지, 공개 토론 등을 통해 주장과 반론, 반론의 재반론을 거듭했고, 학계 논쟁으로는 이례적으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신간 <동원된 근대화>(후마니타스 펴냄)는 이 대중독재론 논쟁, 그 이후 5년에 걸친 통찰의 결과물이다. 박정희 체제 18년을 분석한 이 책은 '경제 개발 대 폭압', '산업화와 민주화', '수탈 및 착취 대 근대화' 등 대립구도로 점철된 박정희 시대의 학계 분석에 대한 비판에서 쓰였다. 방학을 맞아 제주도에 머물며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서울을 찾은 지난 주 성공회대 연구소에서 만났다.

- 전작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의 연장선에 있다. 박정희 체제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

"박정희 시대를 보는 보수 패러다임과 진보패러다임을 뛰어넘어보자는 의도다. 박정희 시대의 정치체제를 보면 거기는 성취의 동학(動學), 효율의 동학과 함께 붕괴의 동학, 위기의 동학이 동전의 양면처럼 있다. 보수와 진보 학계 모두 외눈으로 보아왔다. 보수와 진보 학계의 패러다임 확장을 통해서 사고의 중첩이 생겨야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정치와 경제의 '일반 모델'로 박정희 체제를 언급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책에서 '우리 안의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410페이지)라고 언급했는데. 박정희 개발동원체제가 세계사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인문 사회과학에서 모델은 서구다. 영국의 특수한 산업화 과정을 일반 모델로 보고,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나 일반모델에서 일탈했는가가 연구의 대상이다. 우리의 정치, 경제 경험에서 어떻게 일반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 점에서 박정희 체제는 엄청난 연구의 보고다."

- 2004-2005년 임지현 교수와 논쟁 당시와 현재, 관점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당시 대중독재론에서 지적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지지'에 대해 반박했다. 논쟁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논쟁 이후 임지현 선생의 논의를 내 연구에 내부화 시켜보자는 문제의식이 있었고, 이 책을 쓰는 동안, 그 점을 고민했다. 임지현 선생의 대중독재라고 표현한 과정은 사실, 강요의 요구와 위로부터의 일종의 강압을 통한 비자발적 동원까지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이것이 여전히 임지현 선생과 차이를 둔 지점이다. 한 체제의 헤게모니는 균열의 씨앗, 저항적 요소를 함께 내재하고 있는데, '시대정신'에 의해서 주변화된다고 본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은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1부는 박정희 시대 체제인 경제 체제의 '정치사회적 작동 방식'을 다루고 있다.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부는 또 다른 정치사회적 성격, 즉 체제의 대중적 동의 기반, 이른바 헤게모니적 성격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hegemony; 한 집단, 국가, 문화가 다른 집단, 국가, 문화를 지배하는 것 또는 그 현상을 추동하는 힘)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헤게모니 균열'론은 조희연 교수의 독특한 정치사회학 사상을 집약하며 헤게모니 이론의 한국적 수용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그람시가 헤게모니의 생성과정을 집중했다면, 조희연 교수는 헤게모니 균열의 과정까지 통찰한다.

그는 박정희 시대가 갈등이 없고 안정적인 시대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박정희 체제의 한편에서 헤게모니의 형성을 위한 권력의 전략적 실천이 일정하게 성공을 거두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 헤게모니가 균열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임지현 교수팀의 '대중독재론'과 차별을 이루는 지점이다. 저자는 책에서 박정희 독재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균열되고 그 균열이 어떻게 확대돼 위기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 이런 진단이 추상적 담론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박정희 체제 연구가 사후 30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다고 보나?

"헤게모니의 균열론을 뒤집어 생각하면, 체제의 보완책을 생각하면 집권 지속이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일례로 나는 박정희 체제를 구보수, MB정부는 신보수라고 규정한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독재에서 온전한 민주주의로 가는 과도기였다고 본다. 노태우 정부는 '변형군부정권' 혹은 '민선군부정권'으로 볼 있다.

YS는 민정당-구독제세력-의 주도 속에 반독재 세력의 야당지도자가 결합한 형태고, DJ는 반독재세력 주도 하에 독재세력이 연합한 한보 더 나간 형태다. 노무현정부는 단독집권이다. MB정부는 일종의 포스트보수화정부라고 본다. 보수의 일정한 진화라고 본다.

반면 진보세력은 진화를 이루지 못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도 갈 데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내려가도 민주당과 진보신당의 지지가 높아지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부 진보진영에서 MB정부를 '민주주의의 후퇴'로 말하는 것과 내가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다."

- 헤게모니를 지속적으로 혁신한다면 영구집권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체제를 떠받치는 이익집단이 헤게모니 혁신을 통해 재편될 때, 체제 유지에 한계를 가질 텐데. 궁극적으로 이런 헤게모니 보완을 통한 체제의 영구집권은 불가능하지 않나?

"헤게모니 균열론을 제시하며 현재 의문이 드는 지점이 그 점이다. 헤게모니 질서는 그 헤게모니 질서에 조응하는 이익의 분배질서가 따라온다. 기존의 이익분재의 질서를 계속 해체해서 재편해 줄 때 기존 이해관계 집단의 저항이 따라오고, 결국 한계지점으로 간다. 이 점은 지속적으로 연구해볼 생각이다."

- 앞으로 계획은?

"개인적으로는 박정희 시대 리얼리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나는 정치를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사회운동, 시민사회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본다. 그 시대의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묶고 그것에 대응하는 사회운동사를 정리하려고 한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에서 2008년부터 박정희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새마을운동 아카이브의 체계적 구축과 기초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가 끝나면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여건이 된다면 박정희 시대 전집을 20권 내외로 내려고 한다. 박정희 시대의 법, 한미관계, 지식인 변천, 군부엘리트 변천 등을 담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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