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물오리나무
때론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약한 가지들이 툭툭 부러져 길을 막기도 한다. 약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나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지만 봄은 봄이어서 소리도 없는 봄 기운에 눈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문득 폭설 때문에 꽃들은 어쩌나 싶었다. 곧 피어날 꽃들도 있겠으나 그보다 이미 꽃을 피워 놓은 오리나무나 물오리나무 꽃들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얼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쌓인 눈들은 생명수처럼 나무들이 물을 올리는 데 긴요 할 텐데.
물오리나무는 산에서 소나무나 참나무 다음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산에서 오리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는 사실 물오리나무일 가능성이 꽤 있다.
그냥 오리나무는 대개 산 아래 낮은 쪽에 많고, 그나마 이제는 만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산에서도 육화가 진행되는 습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물오리를 산오리 또는 물갬나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이력을 가진 나무들이고, 남부지방에 사방용으로 조림해서 흔해진 사방오리는 또 다른 나무들이다.
혹시 손가락 같이 뭉툭한 것이 부드럽게 늘어지지 않고 딱딱하고 곧추서 있는 것을 겨울에 보았다면 이것은 꽃이 아니라 겨울눈, 동아이다. 때가 오면 눈이 틀 것이니 꽃구경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물오리나무는 다른 오리나무 집안 식구들하고 잎만으로도 구별이 금세 된다. 일단 타원형인 다른 잎들과 비교해 거의 동그란 원형에 가깝다. 가장자리는 5-8개로 비교적 얕게 갈라지고 그 갈라진 가장자리에 또 얕게 갈라지는 이중톱니를 가지고 있다. 잎을 보면 "아!" 할 거다. "내가 산에서 자주 보던 잎이 바로 물오리나무였구나"
열매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 정도 되는 작은 솔방울 모양이다. 솔방울이 익어 씨앗이 날아가고 그대로 가지에 달려 겨울을 난다. 그래서 지금 물오리나무는 늦은 겨울눈, 때 이른 꽃, 지난 열매 솔방울을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간이다. 잎이야 이제 지겹도록 볼 수 있는 때가 곧 돌아오니 걱정할 것은 없다.
물오리나무는 척박한 곳에 잘 자라, 공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땅을 비옥하게 한다. 그래서 사방용으로 심기도 했고, 염료, 약용 등 쓸모가 많다. 무엇보다도 자주 보는 친숙한 나무여서 정답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