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물오리나무

3월에 때 아닌 폭설이 내렸다. 그래도 봄 속의 눈인지라 물을 한껏 머금고 나무 줄기마다 눈꽃이 피어 숲은 놀라운 절경으로 바뀌었다.

때론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약한 가지들이 툭툭 부러져 길을 막기도 한다. 약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나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지만 봄은 봄이어서 소리도 없는 봄 기운에 눈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문득 폭설 때문에 꽃들은 어쩌나 싶었다. 곧 피어날 꽃들도 있겠으나 그보다 이미 꽃을 피워 놓은 오리나무나 물오리나무 꽃들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얼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쌓인 눈들은 생명수처럼 나무들이 물을 올리는 데 긴요 할 텐데.

물오리나무는 산에서 소나무나 참나무 다음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산에서 오리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는 사실 물오리나무일 가능성이 꽤 있다.

그냥 오리나무는 대개 산 아래 낮은 쪽에 많고, 그나마 이제는 만나기가 아주 어려워졌다. 산에서도 육화가 진행되는 습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물오리를 산오리 또는 물갬나무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이력을 가진 나무들이고, 남부지방에 사방용으로 조림해서 흔해진 사방오리는 또 다른 나무들이다.

이즈음 숲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면 적어도 물오리나무는 꽃이 피어 있다. 가지의 빛깔처럼 갈색이 도는 수꽃차례가 부드럽게 축축 늘어져 있고 그 위엔 아주 작지만 암꽃도 달린다. 화려한 꽃잎이 없다고 꽃이 아닌 것은 아니다. 바람의 힘을 빌어 꽃가루받이를 하는 풍매화이다. 갈색의 축 늘어진 것이 수십 개의 수꽃들이 모인 꽃차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으면 손바닥에 올려 살살 털어 보자. 노란 꽃가루가 떨어진다. 활짝 핀 꽃인 것이다.

혹시 손가락 같이 뭉툭한 것이 부드럽게 늘어지지 않고 딱딱하고 곧추서 있는 것을 겨울에 보았다면 이것은 꽃이 아니라 겨울눈, 동아이다. 때가 오면 눈이 틀 것이니 꽃구경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물오리나무는 다른 오리나무 집안 식구들하고 잎만으로도 구별이 금세 된다. 일단 타원형인 다른 잎들과 비교해 거의 동그란 원형에 가깝다. 가장자리는 5-8개로 비교적 얕게 갈라지고 그 갈라진 가장자리에 또 얕게 갈라지는 이중톱니를 가지고 있다. 잎을 보면 "아!" 할 거다. "내가 산에서 자주 보던 잎이 바로 물오리나무였구나"

열매는 손가락 한 마디 길이 정도 되는 작은 솔방울 모양이다. 솔방울이 익어 씨앗이 날아가고 그대로 가지에 달려 겨울을 난다. 그래서 지금 물오리나무는 늦은 겨울눈, 때 이른 꽃, 지난 열매 솔방울을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간이다. 잎이야 이제 지겹도록 볼 수 있는 때가 곧 돌아오니 걱정할 것은 없다.

물오리나무는 척박한 곳에 잘 자라, 공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땅을 비옥하게 한다. 그래서 사방용으로 심기도 했고, 염료, 약용 등 쓸모가 많다. 무엇보다도 자주 보는 친숙한 나무여서 정답다.

물오리(수-암꽃)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