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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리네르 읽을 거나 있어?에 답하다

[책과 작가]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정년 퇴임 강연서 서정과 해체 뛰어넘는 프랑스 시인 재조명
전위적인 시각으로 한국 비평계 폭을 넓힌 황현산(65) 고려대 불문과 교수가 지난 19일 정년퇴임 강연을 했다. 고려대 문과대 및 동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한 황 교수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알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남대학교와 강원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아폴리네르>(파스칼 피아), <19세기 프랑스 문학>(도미니크 랭세, 공역), <19세기 프랑스시>(도미니크 랭세, 공역)의 역서를 낸 바 있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미세하게 분석한 여러 편의 전공 논문을 썼다.

프랑스 시를 알리는 번역가와 교수로 활동해왔지만, 대중이 그를 기억하는 것은 비평가로서의 모습이다. 1987년도 이후 비평가로 활동한 그는 김수영, 서정주, 이상, 한용운 등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던진 바 있다.

특히 미당의 사후 그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비판으로 벌어졌던 '서정주 논쟁'을 문학적 관점에서 비판함으로써 문단 내 정치적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1년 겨울, 같은 대학 같은 과 재직 중인 김화영 교수와 있었던 이른바 '2차 서정주 논쟁'이다.

황 교수는 당시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서정주 시세계'를 통해, 미당의 시가 가진 너그러움의 정서가 도리어 "미당 민족주의의 본질적 내용인 허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특히 미당의 대표시집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등의 분석을 통해 "미당은 늘 낡은 것을 세련된 언어로 반복"했을 뿐이며, "미당이 '마술적으로 사용한 부족언어'는 혈연과 지연의 토착정서에 호소하여 모든 논의의 외부에 서는 말들이었다"고 비판했다.

황 교수는 1993년~99년 문예지 <작가세계> 주간으로, 2002년 나남출판사에서 낸 시 전문 문예지 <포에지>의 주간으로 활동하며 100 여 편의 비평을 발표했다. 평론집 서두에 쓴 몇 줄은 그의 문학적 지향점을 보여준다.

'나는 개인에 대한 관심과 역사에 대한 관심 사이에서 내내 망설였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여 마침내 다른 것이 되는 인간들에게 나는 늘 매혹되곤 했지만 그들이 제 안에서 발견한 다른 것은 벌써 세계에 대한 연대의 표현이었다. (…) 진정한 분석은 분석되지 않는 것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거기에 한 정신의 고통이 있고 미래의 희망을 위한 원기가 있다.' ( <말과 시간의 깊이> 서문 중에서)

평론을 통해 시와 정치성, 역사의식과 비평의식, 문학과 현실성의 문제를 문학 언어의 차원에서 정치하게 다룬 그는 젊은 시인을 발굴하는 눈 밝은 평론가이기도 하다. 2006년 봄, 황병승 시인의 <여장남자 시코쿠>를 해설한 비평<완전소중 시코쿠>는 2000년대 달라진 시단의 변화를 해석한 '교과서 같은' 평론이다.

인문학은 무얼하는가

문학의 모양새는 제 각각이지만, 흔히 우리의 머릿속에 시는 두 길로 나뉜다. 하나는 자연의 본질과 삶의 원형에 인간의 희로애락을 연결시켜 노래하는 이른바 서정시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확립된 가치와 정식화된 표현법 일체를 부정하는 가운데,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생경하게 드러내는 이른바 해체시다.

문학에서 '전위적'이란 수식어는 후자, 적어도 전자의 틀에서 벗어난 작품 앞에 붙는다. 고로 '전위적 시각으로 비평계 폭을 넓혔다'는 황 교수의 문학적 좌표는 두 번째 길로 향 할 터다. 이는 그가 꾸준히 연구했던 시인 아폴리네르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데, 아폴리네르의 시는 서정과 해체 그 쌍갈래길마저 가볍게 뛰어 넘는다.

그는 퇴임 강연의 주제가 이 '아폴리네르의 위치- 삶의 깊이와 시의 깊이'였다. 대형 강의실은 머리가 희끗한 노교수부터 젊은 시인과 평론가, 학생들까지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흔히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시인이라고 말하는데, 뭐라 붙일 말이 없으니까 그렇겠죠? 제가 아폴리네르의 작품을 연구했다고 하면 '아폴리네르 읽을 거나 있어?'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건 작고한 평론가 김현 씨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퇴임을 하면서는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강연은 아폴리네르 이전 이야기가 더 많겠지만."

준비한 원고를 천천히 읽어가며 20세기 예술사조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베를렌느, 아폴리네르, 말라르메, 발레리의 작품을 차례로 소개했다. 황 교수 자신의 번역문 혹은 프랑스 원어를 읽어가며 프랑스 문학의 깊이를 설명했다.

"이들은 문학적 번뇌를 통해서 삶의 깊이를 찾아내고 세계 속성 자체가 깊이인 것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징주의 시인들은 인간 존재가 그 깊이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깊이 자체에 삶을 걸어두고 도박을 하려 했죠. 이런 시도는 근대 예술의 가장 뛰어난 특징입니다."

아폴리네르의 삶과 그가 등단한 1900년대 초 프랑스 문학계의 배경을 설명하며 황 교수는 강연의 첫 서두에 던진 질문("아폴리네르 읽을 거나 있어?")에 대한 대답을 풀어 놓았다.

"말했듯이 아폴리네르는 상징주의 초현실주의자 중간에 위치하고 '되지 못한 초현실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폴리네르는 이런 사조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때 오히려 그가 상징주의 희망을 어떻게 살려냈고 초현실주의를 비롯한 전위운동에 어떤 힘을 불어 넣었는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불문과에서 무얼 하는가'.

이 말은 지난 달 한 일간지에 황현산 교수가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다. 외국문학을 포함해 인문학의 효과는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삶의 안팎에 퍼져 있지만, 그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적고 따라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칼럼의 끝머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젊은 출판인이 교수신문에 칼럼을 기고하여, 근래 프랑스에서 발간된 인문학 서적들을 번역하는 일이 시급한데, 마땅한 번역자를 구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 까다로운 문장을 읽어내고, 그 의미를 깊이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과 연결지어, 이 서적들을 번역해낼 만한 소수의 사람들은 저 모욕적인 질문을 자주 받으며, 제 공부의 터전에 위기까지 느끼면서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이 말은 소수의 인문학도에게 건네는 격려이자, 자신에게 건네는 말일 터다.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그 모습에 절로 숙연해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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