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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철학자'가 발견한 것은

[지식인의 서고] 로렌 아이슬리의 <광대한 여행>
무한한 시간 속에서 인간 또한 '잠재적 화석'에 불과함을 일깨워
여주에 가서 남한강을 보았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이미 강이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서 강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던 게 아니었다. 거기서 그냥 그렇게 흘렀을 뿐이다.

말라서 바닥을 드러낼 때조차 아무도 그게 강이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강의 시간은 영겁이었기에, 하루 24시간의 시계 따위로 측정할 수 없었다. 무한한 시간 앞에서 나는 경탄했고 때로 절망했다. 아니, 절망조차 경탄이었다.

영겁의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내 존재의 유한함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영겁의 시간조차 간단히 차단하는 인간의 저 무모한 욕망뿐!

한스 아이슬리는 인류학자이기 이전에 시간의 철학자였다. 그의 연구 대상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흙과 돌, 그리고 바위 틈새에 박혀 있는 화석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이 가 닿는 순간, 놀라운 혁명이 일어난다.

시간 때문이었다. 멈췄던 시간이 홀연 흐르기 시작하자, 화석 또한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긴 시간의 잠에서 깨어난다. '광대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한여름의 건조하고 타버릴 듯한 열기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훨씬 더 천천히 협곡을 오르내렸다. 나는 평지 위로 비스듬히 솟은 거대한 갈색 바위 그늘 아래에서 오랜 시간 꾸벅꾸벅 잠들곤 했다. 나는 인간의 세계를 잊었고, 세계도 나를 잊었다.'

아이슬리는 평생 그렇게 살았다.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로키산맥 주변을 샅샅이 뒤지면서. 그렇게 해서 그가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인간 또한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한 부류의 '잠재적 화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육체 안에는 머나먼 과거 존재들의 조악함이 남아 있고, 누대에 걸쳐 무수한 생물체가 구름처럼 불규칙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세계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아이슬리의 뒤를 좇아 '광대한 여행'에 동참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불편한 여행 끝에 다다르는 결론 또한 적잖이 불편한 진실이다. 아마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진화의 종착지가 아니다."

그는 진화가 각각의 생물종이 나름대로 독특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시도한 우연적인 선택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인간이 광대한 시간의 여정에서 특별한 지위를 주장할 어떤 근거도 없다고 단언한다. 하다못해 그가 가 닿는 시간의 저 끝에는 이제 막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놀라운 전이를 이룬 한 '존재'마저 등장한다. 어처구니없지만, 그게 바로 인간종이다.

남한강변에서 은빛 모래사장이 사라질 때, 어쩌면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하는 새로운 어떤 종의 미래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너무 편하게 살아온 우리는 한참 더 불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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