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조지오웰대표작 , 르포르타주보다 더 많이 회자

이름만 들어도 작품 상(象)이 그려지는 작가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에서 그 예의 인스턴트식 개인주의가 기대된다면, 파스칼 키냐르의 이름에서는 언어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려진다.

조지 오웰의 이름을 들을 때 독자가 떠올리는 것은 '구조 안의 인간'쯤 될 게다. 르포르타주의의 전설로 꼽히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과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보듯, 그는 제 몸으로 부딪친 현실에서 언어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건져 올린 언어를 통해 작가는 말했다. 인간은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라고. 그러므로 인간의 욕망과 갈등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사회를 바라봐야 한다, 라고.

조지 오웰. 1903년 태어나 1950년 사망했다. 본명은 에릭 아더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지만 필명인 조지 오웰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유는 본명에 드러나는 출신 신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왈, 그 이름이 스코틀랜드 출신을 드러내기 때문에. 구조 안의 인간을 바라봐야 한다, 라고 말했던 작가 역시 구조(출신 성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는 인도 벵골에서 식민국 공무원 아들로 태어나 안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5년 동안 왕실 장학금을 받으며 명문 이튼스쿨에서 교육을 받았고 1922년 미얀마로 건너가 경찰관이 됐다.

1927년 특유의 반골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경찰직을 그만 두고 런던으로 갔다. 이후 파리로 거처를 옮겨 '밑바닥 생활'을 시작한다. 가정교사, 접시닦이, 서점 점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돈이 떨어지면 정신이 몽롱해질 때까지 굶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렇게 쓴 작품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다.

그리고 식민지 경찰생활의 체험을 그린 <버마 시절>을 통해 작가로 가능성을 보인다. 작가로 기반이 잡히자 결혼을 하고 안정된 창작에 전념하고자 했지만 당시 버라이어티하게 진행되는 세계정세를 목격하며 그는 다시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게 된다.

(헤밍웨이가 취재기자 신분으로 스페인 내전을 관찰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다면, 오웰은 군인으로 참전해 목에 총상을 맞아가며 르포르타주 <카탈로니아 찬가>를 완성시켰다. 예술은 스포츠처럼 줄 세우기가 불가능하지만, 헤밍웨이의 소설은 문학작품이고, 오웰의 르포르타주는 현실 기록에 가까운 바, 사람들은 스페인내전의 대표작으로 단연 오웰보다 헤밍웨이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참전 이후, 정확히 스탈린 독재와 좌파 내의 부조리를 목격한 이후에 그는 좌파 리얼리스트에서 작가로 거듭난다. 이후 발표한 <1984>와 <동물농장>을 거대한 은유로 감싼 이유다. 두 작품은 앞의 르포르타주보다 당연히 더 많이 읽혔고 더 많이 회자됐다.

주인 없는 농장에서 돼지가 사람처럼 행동하는 우화 <동물농장>에서 대표 인물들은 당시 소련을 빗댄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출판사마다 한 권씩 번역해 내는 <1984>년은 '빅브라더'로 대표되는 전체주의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내용의 반유토피아적 소설이다.

스페인 내전 이후 그는 공산주의와 결별했지만, 오랜 기간 그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작가란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대입논술 필수도서 목록과 반공도서 목록에 동시에 올라간 이유일 게다.

최근 그의 작품 중 몇 권이 첫 번역돼 출간되기 시작했다. 작년 출간된 르포르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지난 주 출간된 소설 <숨 쉬러 가다>이다. 모두 작가가 스페인 내전을 경험한 후 쓴 작품들로 대표작 <동물농장>과 <1984>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한 인간이 처한 계급과 나이와 시대를 초월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는 각자 발붙인 현실을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현실 저 너머의 진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오웰은 그렇게 해야 한다, 고 단언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이 그렇게 읽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일 게다. 그의 작품이 여전히 읽히는 점, 여전히 각기 다른 상(象)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