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출간, 마르크스 이론 통해 작금의 경제현실 설명

한쪽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되는 책이 한쪽에서 ‘불온서적’으로 언급된다. 이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곳이 작금의 한국사회니, 이전 시대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김수행 교수가 서울대를 정년퇴임하던 날, 언론들이 일제히 ‘33:0’이란 문구로 도배를 하며 인터뷰했던 것도 유난 떤다고 탓할 건 못 된다. 국내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1세대로 꼽히는 김수행 교수는 서울대에 재직한 유일한 비주류경제학자였고, 앞의 ‘33:0’은 그의 퇴임 후 서울대에 남게 된 주류 대 비주류 경제학 교수의 비율을 뜻한다.

김수행. 194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뒤 대구에서 자랐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가난에 관심이 많았”던 소년은 “다행히 실업고등학교에 들어갔고 그 학교의 장학금을 받아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의는 고사하고 마르크스 서적을 읽기도 불가능한 시절, 어떻게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했을까. 그는 그 배경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일본어를 3개월 동안 공부한 뒤 일본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경성제국대학 시절의 일본책들은 대학도서관의 뒤 구석에 많이 쌓여 있었다.’ (한국일보 2005년 4월 11일자,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중에서)

물론 이런 마음가짐 자체가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죄였기에 김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걸려 반 달 동안 남산의 중앙정보부에서 고생했다. 그 뒤 외환은행 조사부에서 일하던 중 1972년 런던에서 근무하게 됐고, 1982년 런던대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그가 학위를 받은 건 <마르크스의 공황 이론>이다. 일명 ‘오일쇼크’로 불린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을 마르크스의 공황이론으로 분석한 것. 김 교수는 1930년대 대공황과 더불어 1974~75년의 석유파동을 자본주의 시대의 2차 대공황이라 분석했다.

그가 대중에 알려진 계기는 아마 <자본론>을 완역하면서부터일 게다. 1987년 강신준 동아대 교수가 익명으로 독일어 원서를 번역한 이론과 실천사판이 1권이 출간됐고, 89년 2,3권이 나왔다가 1990년 절판됐다. 이 책은 6개월 후 1989~90년 김수행 교수가 영어판을 완역해 출간하면서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그의 주요 저서는 <자본론 연구>, <정치경제학원론>,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등이다. 요컨대 그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거나 현실에 적극 개입하는 학자라기보다 경제고전을 해석하고 후학을 키우는 강단형 학자다. 그런 그가 정년 퇴임 후 꽤 적극적으로 사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종 매체의 칼럼과 일반인과 청소년을 위한 경제서를 쓰고, 지난해에는 민노당에 입당했다.

지난주 출간된 <세계대공황>은 마르크스 이론을 통해 작금의 경제현실을 설명한 책이다.그는 이 책에서 ‘2008년 시작된 이번의 세계대공황은 20~21세기에 나타난 세 번째 대공황’(5페이지, 책머리에)이라고 진단한다. 1930년대 대공황, 그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진단한 1970년대 대공황에 이은 3차공황이라는 뜻이다. 3차 세계 대공황을 이전 두 차례의 대공황과 구별 짓게 하는 것은 ‘금융’이다. 이번의 세계 대공황은 실물경제와 금융 기업에 의한 사상누각의 현대 경제체제가 빚어낸 공황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 고로 공황은 기존의 자본축적 방식과 국내 계급 관계, 세계질서를 재편하지 않고 극복할 수 없는 구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주류경제학은 개인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개인은 이와 같이 행동한다고 가정을 해버려요. 그 가정을 수식으로 표시되도록 또 무리하게 가정해버립니다. 무리한 가정에서 나오는 결과가 합리적일 수가 없죠. 또 사상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약해요.’ (지승호,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중에서)

김 교수의 책에 눈길이 간 이유다. 고 리영희 선생의 말처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