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애란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 출간17세에 자식 낳은 부모와 17살 조로증 아들, 나이 듦과 늙음에 대해

소설가 김애란이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을 냈소. 17살에 세상을 다 살아버린 조로증 환자 '아름'과 그를 17살에 낳아 기른 철없는 부모를 통해 나이듦과 늙음에 대해 펼친 이야기. 헌데 그 소설 속 아름이와 실제 작가 모습이 포개집디다.

제 부모 앞에서 웃어야 하는 아름이가 웃다보니 밝은 천성이 되어버린 것, 그러니 그 인생 두근두근하지만 또한 짠하기도 하다는 것. 이게 이 소설의 알파이자 오메가인데, 그렇게 사는 게 소설 속 아름이이고, 소설 쓰는 작가 같아서. 사람들 앞에서 제 나이보다 더 나이 든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서글픈 처지가 꼭 닮은 것 같아서.

작가가 말합디다.

"늙음이나 청춘, 17살 연애…. 패스트리 빵처럼 겹이 많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요컨대 이 소설은 작가 등단하고 쓴 첫 장편, 10년 만에 구운 패스트리란 말씀.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봅디다. 그 커다란 눈으로 이렇게 물으면서.

빵 맛, 어떤가?

아이스커피 쪽쪽 빨며 기다리는 작가 앞에 필자, 다른 글 한 자락을 펼쳐놓았소. 우선 화끈하다 우울해지는 이야기부터.

'인간이라는 존재는 16세부터 배우자를 찾거나 섹스를 원하게 되어 있다. 그런 자신의 섹스 파트너와 가정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방식은 최소한 3천 년 동안 인류가 안정적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하면서 만들어낸 일종의 역사적이며 생물학적인 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청소년들은 거의 3천 년 만에,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모든 걸 유보하도록 집단적인 통제를 받고 있다.'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한국사회에서 연령주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이른바 '생애 주기'식의 연령주의와 나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는 연소자/연장자 우선주의다. (…) 우리는 일상에서 직업, 지위, 외모, 언어, 태도, 습관, 문화적 취향, 성생활, 결혼 등 삶 전반에 걸쳐 특정한 나이에 맞는 정상성을 요구받는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의 말마따나 우리는 생애주기식 사고로 꽤 많은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가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 착각하면서. 하지만 우석훈의 지적처럼 그렇다고 우리나라 청춘들이 뭘 제대로 누리고 살지도 못하오. 작금은 돈 없는 자가 뭘 누리면 죄가 되는 자본주의 시대니까.

이렇게 구조 안에서 '사람처럼 살라'고 앞에서 눌리고 뒤에서 치이며 사는 것이 우리 사는 삶. 그런데 한번 피워보지도 못한 청춘이 팔십 먹은 노인처럼 살아야 한다면? 돈도 없고 백도 없는데 힘과 연륜과 시간마저 없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오.

여기 우석훈 박사 말에 동의하며 덜컥 애를 밴 철없는 한 쌍이 있소. 주인공 아름이의 부모 한대수와 최미라 되겠소. 17살의 어린 부모는 불안과 두근거림 속에 살림을 차리고 아이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 태어나지만 미처 다 자라기도 전에 빨리 늙어버리는 병, 조로증에 걸린 걸 알게 되오.

열일곱의 마음과 여든의 몸을 지닌 아들 아름이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웃의 예순 살 노인을 유일한 친구로 삼는 고독한 아이. 아름은 어린 부모의 만남과 연애, 자신이 태어난 이야기를 글로 써서 18번째 생일에 부모에게 선물하리라 마음 먹소.

물론 아이의 삶에도 찬란한 순간은 오는 법, 병원비를 아끼려고 성금모금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서하란 아이를 알게 되고, 열일곱 일장춘몽으로 끝날 첫 사랑을 시작하오. 이 소설 15 자로 줄이면 다음과 같소.

가장 어린 부모 가장 늙은 자식 이야기

패스트리 맛은 겹겹의 파이 결이 승부하듯, 소설의 알파와 오메가는 그 비극을 살아내는 아이의 긍정과 그 긍정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소. 이를테면 이렇게.

"문장 욕심이 있어요. 글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니까. 날카롭게 쓰고 싶은데, 문장이 화려한 방식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 문맥으로 일어나는 긴장으로 날카롭게 읽는 문장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이 패스트리 만든 제빵왕 소개하오.

김애란이 등단했을 때, 모두 그를 '앙팡 테리블'이라고 불렀소. 첫인상이 무섭다는 건 그녀를 두고 하는 얘기. 무서운 신예라는 꼬리표가 지금도 따라다녀서 김 작가 올해로 등단 10년 차, 예전 같으면 중견으로 불리지만 아직도 그 시절을 떠올리는 독자가 많을 지경이오.

김애란이 첫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독자는 하룻강아지 일 냈다는 반응을 보였소. 이를 테면 이런 호들갑.

'그 결정은 파격이었고, 사건이었다. 4시간여의 격론 끝에 그를 낙점한 본심 위원들조차 자신들의 결정이 잠시 숙연했고, 한 심사위원은 "카메라 뒤에 숨어있어야 할 우리가 이 결정으로 하여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2005년 11월 6일)

김애란이 첫 단편집을 냈을 때, 문단은 구원투수를 발견했다는 듯 들떴소. 김연아 때문에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 앞날이 창대할 거라고 기대하듯 말이지. 누가 외칩디다. '김애란을 사랑하라.'(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소녀는 스피노자를 읽는다')

"이제까지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뭐냐"는 질문에 그녀가 말하길 "어린 나이에 주목받아서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이요." 그리고 대답하길 "양날의 검인 것 같은데, 저는 그걸 힘(격려)으로 많이 돌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런저런 설명을 정리하자면 김애란 소설은 재미있고 잘 읽히는데 작품성도 갖췄다는 평이 문단과 독자들의 일관된 반응이라는 것. 그러니 모 선생의 저 허풍(김애란을 사랑하라)이 순 뻥은 아니란 말씀. 달인 제과의 특징은 서사의 흡입력, 묘사의 섬세함, 대화의 능숙함 같은 정통 맛에 깜찍한 상상력과 발랄한 문체 같은 신세대 맛이 결합된 맛이라는 것. 그러니 열 살 아이부터 칠십 비평가까지 전부 찾는 맛이라는 것.

제빵왕 살짝 달인 비법을 공개하길 "서술은 압축적으로 쓰려고 하지만 대화는 요점이 부각되게 하는 잉여를 깔아두려고 해요. 호흡도 생각하고요. 논리는 문어체에 맞추지만 질감이나 질감은 구어에 가깝게"라고 하더이다. "문장 읽을 때 숨 박자랑 딱딱 맞는 걸" 좋아하는 작가는 소설 쓸 때 사전을 펼쳐둔다고도 했소. 같은 뜻이라도 질감이 다른 단어를 찾아보려 그런다고.

발랄한 상상력, 삶에 대한 긍정성은 여전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할 시간. 그 시간을 작가는 이렇게 말하더이다.

"같은 주제를 갖고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늙음이든 부모든 똑같은 단어라도 그 뜻을 쓰는 시선이나 마음이 달라지는 거죠. 예전에는 공간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게 사람 쪽으로 좀 옮겨간 듯해요."

몇몇 인터뷰에서 "되도록 장편을 쓰고 싶다"고 했던 터라 그 계획 물었소. 내년쯤 세 번째 단편집 묶고 장편 연재할 생각이라고 그 장편 내용 물었더니 작가 왈,

"아무 것도 생각한 게 없는데요, 조금 놀려고요. 당분간은."

아, 그녀 아직 청춘인 걸 까먹었소. 이 질문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오오. 도대체 나이듦의 기준은 뭔가. 나잇값이란 무엇인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