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서울 지하철에 성추행 예방용 CCTV가 설치된다. 증가추세인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취지지만 일각에선 CCTV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오는 10월부터 지하철에 CCTV가 설치된다. 증가추세인 지하철 내 성추행을 예방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일각에선 CCTV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CCTV가 지하철 성추행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백억원에 달하는 혈세가 낭비되는 건 아닌지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최근 직장인 최은영(26‧가명)씨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당시 은영씨의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은 “또야?”였다. 성추행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은영씨는 이번에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이었다. 은영씨에게 이젠 출근길 지하철은 공포 그 자체다.

이는 비단 은영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경기개발연구원이 직장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4명 중 1명(24.8%) 꼴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최근 1년 사이 2회 이상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도 30.1%에 달했다.

지하철 성추행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지하철 성범죄 피의자수는 2008년 460명에서 2010년 1192명으로 무려 260%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그간 ‘서민의 발’로 여겨져 오던 지하철엔 ‘성범죄의 온상’이라는 불편한 꼬리표가 붙었다.

이에 서울시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오는 10월부터 지하철에 CCTV를 설치하기로 한 것. CCTV는 지하철 전동차 칸마다 2대씩 설치된다. 성추행이 잦은 2호선에 우선 설치한 후 2013년까지 전 노선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CCTV 설치만으로도 범죄예방 효과가 있고 증거 자료로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시내버스에 CCTV를 설치하자 기사에 대한 폭행·폭언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내놓은 대책이지만 일각에선 그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문제는 성추행범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출퇴근 시간, 2호선, 환승역 등 전철 내에 사람이 가득 찬 상황이라는 점이다. 콩나물시루처럼 승객이 들어찬 상태에서 ‘파렴치한 손’을 잡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김설아(26ㆍ가명)씨는 “성범죄가 자주 벌어지는 시간대에는 기껏해야 머리밖에 더 찍히겠느냐”며 “지하철 CCTV 설치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일권(31ㆍ가명)씨도 “이미 강남구에서 경찰과 구청 중심으로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지만 그 이후에 범죄가 줄었다던가, 범인 검거가 더 잘되고 있다던가 하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 결과를 보더라도 그다지 CCTV가 사고 예방효과 등에 유효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비상벨을 눌러야만 기관실 모니터에 CCTV가 잡은 화면이 뜨는 시스템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는 사생활을 보호 차원에서 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했다. 문제는 대부분 피해여성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여성 중 56.2%는 성추행을 당했을 때 ‘버스를 갈아타거나 지하철 차량을 바꾼다’고 했고, 53.6%는 ‘성추행 대처에 자신 없다’고 대답했다.

김미연(29ㆍ가명)씨는 “혹시나 해코지라도 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수치심 때문에 비상벨을 누르는 게 생각처럼 쉽진 않을 것 같다”며 “만일 비상벨을 누르더라도 성추행범은 이미 자리를 피한 뒤일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용대비 효과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상되는 효과에 비해 소요되는 예산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지하철 CCTV는 2호선 사당역~서울대입구역 구간에 시범설치하는 비용만 13억원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다. 지하철 8개 노선 286km에 설치할 경우 그 비용은 수백억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강권일(28ㆍ가명)씨는 “물론 심야시간대 술에 취한 승객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을 예방하는 데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 시간대 벌어지는 성범죄는 극히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비용 대비 큰 효과는 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임성수(37ㆍ가명)씨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서 미봉책을 쓰는 것보다 여성전용칸 등 저예산으로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성 전용칸의 도입은 지하철 성추행 방지를 위해 논의되다 지금은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남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 한다는 역차별 논란에 따른 것이다.

수많은 우려를 뒤로한 채 지하철 CCTV는 설치된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진 이 조치가 정상작동할 지는 알 길이 없다. 서울시는 예상 가능한 허점을 최대한 보완해 혈세 낭비를 막는 한편, 여성들이 불안을 안고 지하철에 오르는 걸 막아야 한다.



장진남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