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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칼럼] 셰인 로리의 디오픈 우승과 아일랜드

  • 제148회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셰인 로리. 연합
68년 만에 북아일랜드의 로열 포트러시의 던루스 링크스에서 열린 제148회 디오픈 챔피언십은 역대 대회 중 가장 많은 비화와 풍부한 디테일이 정교하게 짜인 드라마로 골프 역사에 남을 것이다.물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우승자 셰인 로리(32^아일랜드)다. 그러나 셰인 로리에게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게 한 것은 아일랜드라는 신비하고도 매력 넘치는 무대였다.골프황제들의 추락, 특급선수들의 부진, B급 선수들의 대약진 속에 아일랜드 선수가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대회에서 최초로 우승했다는 역사적 의미는 아일랜드는 물론 영국에 속한 북아일랜드까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이게 했다.

북아일랜드가 고향으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되었던 로리 매킬로이의 컷 탈락으로 실망에 빠졌던 홈팬들은 아일랜드 토박이 셰인 로리의 위대한 우승으로 오랜만에 아일랜드의 영광을 소름 끼치도록 만끽할 수 있었다.물론 아일랜드인의 디오픈 우승은 여러 번 있었다. 2007년 아일랜드의 파드리그 해링턴이 아일랜드인 최초로 디오픈의 클라레 저그(Claret Jug)를 품에 안은 뒤 이듬해 2008년에도 연승에 성공해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어 북아일랜드의 대런 클라크가 2011년 디오픈 제패에 성공했고 2014년엔 북아일랜드의 로리 매킬로이가 클라레 저그를 쟁취했다.셰인 로리는 범 아일랜드계로는 네 번째 선수, 오리지널 아일랜드 인으로 두 번째 선수인 셈이다. 그러나 아일랜드 땅에서 열린 디오픈에서 우승한 아일랜드인은 셰인 로리가 최초다.

지배권과 영토분쟁으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로 나누어졌지만 하나의 섬에 경계선만 그어져 약간의 갈등과 함께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양쪽 다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도 특별하다. 아일랜드 일간지 ‘The Irish Times’는 셰인 로리의 우승 순간을 “아일랜드는 물론 북아일랜드는 거대한 파티장을 방불케 했다”고 표현했다. 로열 포트러시에 모인 2만여명의 홈팬들은 ‘올레 올레 올레’를 외치며 아일랜드 삼색기를 흔들었고 이날 저녁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선술집은 환희에 찬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고 상세히 소개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존재하지만 아일랜드인의 마음 속에 국경은 없다”는 시민들의 기분 좋은 토로는 아일랜드인의 기질을 엿보게 한다.셰인 로리도 우승 직후 북아일랜드 팬들 앞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골프에 있어서 우리는 한 나라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죠. 이 우승컵은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섬나라와 로마 가톨릭을 상징하는 초록, 화해와 단결을 의미하는 하양, 개신교(프로테스탄트)를 상징하는 주황색으로 조합된 아일랜드 국기는 아일랜드의 굴곡진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일랜드는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나라와 너무나 닮았다. 우리나라는 36년간의 일제 지배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펼치고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겪었지만 아일랜드는 무려 800여년간 영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며 고난의 역사를 이어왔다. 아일랜드인의 정서는 더더욱 우리의 정서와 잘 통한다. 비극을 안으로 새겨 한의 이슬로 빚는 마력은 우리와 너무 닮았다. 그래서인지 셰인 로리의 디오픈 우승이 남의 일 같지 않게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게 사실이다. 학창시절 즐겨 부른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울려 나오고…’의 ‘Oh Danny Boy’는 아일랜드의 민요다. 초등학교시절 애창곡이었던 ‘등대지기의 노래’ 고향도 아일랜드다.

뉴에이지 음악의 대표주자인 엔야(Enya)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로 ‘Anywhere is’ ‘Only Time’ ‘Orinoco Flow’라는 노래를 불러 한국 음악 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Nothing Compares 2 U’로 우리 귀에 익숙한 시너드 오코너(Sinead O’connor), 숲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우수에 찬 목소리로 ‘Orange Tree’라는 노래를 불러 우리의 귀를 놀라게 한 린다 쿨렌(Lynda Cullen)도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가수들이다.시야를 더 넓히면 아일랜드는 그야말로 문학의 보고다. 영문학도가 아니더라도 학창시절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 등 그의 시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윌리엄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소설과 연극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시인이자 작가 교수를 역임한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 등 네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

‘인간과 초인’ ‘피그말리온’등 많은 작품을 남긴 버나드 쇼는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란 평가를 받았으나 우리들에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내용의 묘비명으로 더 유명해졌다. 학창시절 난해한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즈’ 등의 두꺼운 소설을 읽는 고역을 안겼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도 나의 아일랜드 이미지 구축에 기여했다. 그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인간 내면의 미묘한 심리를 묘사해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소설의 분기점에 선 작가였다. 한순간 아일랜드의 영웅이 된 셰인 로리 역시 전형적인 아일랜드인으로 태어났다. 오팔리 카운티 클라라에서 태어난 그는 13세 때 삼촌 지도로 골프를 시작, 15세에 싱글 핸디캐퍼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브랜단 로리는 아일랜드의 유명한 갤릭(Gaelic) 풋볼 선수로 거의 모든 스포츠를 섭렵, 아들에게도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도록 했다. 갤릭 풋볼은 럭비와 축구를 혼합한 경기로 아일랜드의 국기(國技)다. 셰인 로리가 우승할 때 그린 밖에서 지켜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로 다져진 몸과 얼굴이 아일랜드인다웠다.셰인은 더블린대학을 졸업한 뒤 유러피언 투어로 프로생활을 시작해 3승을 거둔 뒤 2015년 PGA투어로 진출했다. 그해 월드골프챔피언십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첫승을 거둔 뒤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다 올들어 RBC 캐나디언오픈 공동 2위, RBC 헤리티지 챔피언십 공동 3위, PGA챔피언십 공동 8위 등 상승세를 타다 이번에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탄생했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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