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한 슈퍼마켓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런던의 한 슈퍼마켓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요즘 식품, 유류비, 외식비 등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심상치 않다.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 전년 대비 3%를 돌파한 이후 상승 추세를 지속하다가 지난달에는 4.8%로 10년 4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사실 물가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선진국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지난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8.5%에 이르렀고 유로존은 7.5%, 영국은 7.0%에 이른다. 모두 다 기록적인 수준이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공급 측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우선 지난해부터 원자재 가격이 상승 기조로 돌아섰다. 이는 석유, 곡물, 금속 등 3대 부문에서 공히 발생했는데 우연적인 요인도 있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의 회복 추세, 그리고 과다하게 풀린 유동성이 투기적 수요를 자극한 탓이 컸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훼손도 중요한 요인이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생산 공장에서 봉쇄가 잇달았고 운송과 창고 등 물류도 원활하지 않았다. 수요는 회복되는데 공급이 그에 따르지 못하니 가격이 인상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정치적 불안정도 한몫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그에 대응해 취한 서구의 경제 제재는 석유와 곡물을 중심으로 공급 부족을 초래했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끼얹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중국에 부과한 관세가 역풍을 부른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도 원인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통화정책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으나 그 규모와 속도는 비교하기 어렵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자산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몇 년에 걸쳐 1조달러 미만에서 4조5000억달러로 늘어났으나 코로나19 위기 때는 불과 몇 달 만에 급증했고 그 규모도 9조달러에 이르고 있다. 

2008년과 또 하나 다른 점은 당시는 부동산 버블 붐이 꺼지면서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에 늘어난 유동성이 주로 주식과 채권 시장에 유입됐으나 이번에는 부동산 시장으로도 흘러 들어가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주거비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품목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한 재정지출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8월 기준으로 미국의 코로나19 관련 재정지출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25.5%에 이르렀는데 이는 한국의 6.4%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 돈의 상당 부분이 소비에 지출되거나 지출될 전망이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지만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은 금리를 올리고 통화량을 거둬들이는 일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통화정책은 공급 측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앤드류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통화정책은 반도체 칩 공급도, (풍력 발전을 위한) 바람의 양도, 트럭 운전사도 늘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글로벌 공급망 복구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오히려 수요를 억누를 전망이다. 금리가 인상되고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흡수된다면 주식과 채권, 그리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하락을 면하기 어렵다. 이는 자산 효과로 유지되던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다. 당연히 기업의 투자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수요의 감소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공급 회복은 쉽사리 이뤄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기에 끝난다고 하더라도 경제 제재 때문에 원자재 난은 계속될 것이다. 아프리카 등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시간이 소요된다. 

공급 위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요마저 줄어든다면 이는 경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과 경기불황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오는 것이다. 중앙은행으로서는 굉장히 곤란한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연준은 한꺼번에 금리를 0.5%포인트씩 올리는 빅스텝과 더불어 월 최대 950억달러어치의 보유자산을 감축하는 양적긴축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상당히 오랫동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다가 2017년에 들어서야 완만하게 양적긴축에 돌입한 것과 크게 다르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원인의 상당 부분이 공급 측면에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미국 정부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등 대규모 재정지출을 추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있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미국, 영국 등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통계 작성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과는 달리 자가주거비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자가주거비는 자기 소유의 집에 살면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의미한다. 집을 임대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임대료 수익, 주택 구입을 위한 차입에 따른 이자 비용, 감가상각비, 세금, 관리비용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소비자물가지수가 반영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더구나 새 정부는 소상공인 등에 대한 33조원 규모의 손실보상금을 포함해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계획하고 있다. 이 돈이 풀리면 물가를 더욱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 이뿐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이뤄진 공약들은 모두 상당한 재정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재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큰데 이것이 소비자물가지수에 완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지난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8.8%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전이될 것이다. 향후 소비자물가지수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며 피크를 치고 내려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현재의 상황을 조목조목 짚어보면 그러한 기대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해 각국은 금리 인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그러한 기조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불러올 경기후퇴 때문에 생각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이 인플레이션과 경기후퇴 사이에 존재하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내길 기원한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