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경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현재로서는 공기업 민영화를 검토한 적이 없고 추진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경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현재로서는 공기업 민영화를 검토한 적이 없고 추진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권이 바뀌면 항상 등장하는 화두가 있다. 공공개혁이 그것으로, 특히 보수정권이 집권하면 어김없이 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 윤석열 정부도 시급한 개혁 과제의 일순위로 공공개혁을 지목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우선 공공기관의 운영이 방만하다는 비판을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낭비적 요인을 철저히 제거하고 직원들의 노동강도를 높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 비해 공공기관은 설립 목적이 다르다 보니 비용이나 이윤에 둔감하다. 

공기업이 적자를 기록하는 경우 채권을 발행해 비용을 보전하게 되는데 이것이 누적되면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이 투입될 수도 있다. 아니면 서비스 요금을 대폭 올려 이를 만회하려고 시도한다. 어떤 형태이든 국민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공공기관의 서비스 품질이 형편없다는 비판도 있다. 대부분 공공기관은 독점이다 보니 경쟁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자를 압도하기 위해 기술 개발이나 품질 개선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공공기관도 경영평가를 받지만 서로 다른 업종을 비교하는 것이다 보니 진정한 경쟁 압력으로 작용할지 의문스럽다. 

낙하산 인사도 언제나 지적되는 폐해다. 정치적 보은이나 관료들의 수명 연장 수단으로 공기업의 임직원 자리가 활용돼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열심히 일할 유인이 있을 리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공개혁은 잊을 만하면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는 했다. 가장 극단적인 공공개혁은 공기업의 민영화다. 이는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실현수단으로, 미국과 영국 등 자유시장경제를 주창하는 국가부터 도입하기 시작했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새로운 성장산업을 발굴한다는 명분으로 전력, 통신, 수도, 가스 등 공익 부문의 국유기업들이 줄줄이 민영화됐다. 대부분 독점이었던 이들 분야에 새로운 기업들이 진입하면서 경쟁체제가 확립됐고 공익이 아니라 이윤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외환 위기 당시에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 조건인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 일환으로 공기업의 민영화를 본격 추진했다. 포스코, KT 등 거대 공기업이 민영화됐고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전기·철도·가스 산업도 그 직전 단계까지 갔다. 

한국전력공사는 발전 자회사를 5개로 나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철도에서는 수서고속철도(SRT)를 설립해 한국철도공사와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가스산업의 경우에는 가스 수입에 민간기업의 진출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부분적인 민영화가 이뤄졌다. 

공공개혁은 정권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갔다. 노무현 정부는 이전 정부의 민영화 조치를 중단시키며 흐름을 되돌렸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민영화에 시동을 걸었으나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성공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민영화에서 한발 물러나 ‘합리화’를 내걸고 공기업의 부채관리와 경영효율화에 집중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공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선도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윤석열 정부는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건 적이 없다. 그러나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지분 30~40%를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야당에서는 이것이 민영화의 밑밥을 까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치적 이슈로 삼고 있다. 

본래 공기업은 국민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다. 대부분 독점으로 운영되며 그 대신 정부의 엄격한 규제와 감독을 받는다. 따라서 공기업을 민영화하려면 경쟁체제 하에서도 공익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고 덤으로 효율성이 올라가야 한다. 

공기업이 민영화되면 과연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민간기업은 이윤을 올리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고 비용을 억제할 유인이 있으며, 공공성을 띠고 있더라도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은 접으려는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영국의 철도산업 민영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민영화가 완료된 이후 영국 철도기업들은 차량 및 선로의 유지보수 비용을 억제하고 요금 인상에 나섰다. 그 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으나 요금은 크게 올랐다. 결국 영국 정부는 철도를 정부 관리의 비영리기관으로 전환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운영이 문제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우선 공공기관의 규모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띈다. 2007년 298개이던 공공기관은 지난해 350개로 늘었고, 임직원도 24만9000명에서 44만2000명으로 증가했다.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는 2016년 499조원에서 지난해 583조원으로 늘었으나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16조 1000억원에서 10조 8000억원으로 줄었다. 최소한 재무적으로 볼 때 공공기관의 경영은 악화일로를 걸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공공기관으로부터의 배당을 늘리고 있다. 올해 기획재정부가 39개 정부출자기관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총 2조 4541억원에 이르는데, 이는 당기순이익의 40.38%다. 더구나 그 비율은 해가 갈수록 높아져만 가고 있다. 

이는 정부가 공공기관의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단지 정책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한전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지난해 5조80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는 적자 규모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연료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전기요금을 동결한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더구나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제도(RPS) 의무이행 비율 상향으로 원가 구조는 더욱 악화됐다. 한전공대의 설립도 과연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한전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9조6700억원에 달한다. 

공공기관을 개혁한다면 먼저 그것이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한전의 예를 들자면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원가보다 지나치게 낮은 요금은 소비자 수요에 적절한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낭비적 사용을 부추긴다.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켜는 매장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된다. 

공공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치에 휘둘리는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인사와 예산이 독립되고 준칙에 따라 움직이는 감독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도 각종 위원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사실상 정부의 입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잃고 과도하게 정치화되면 정작 중요한 측면은 놓치게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그러한 예로 ‘철밥통을 가진 공공기관의 직원이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사익만 추구한다’는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자칫 공공기관은 적을수록 좋으며 민영화하고 시장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극단적 결론으로 이어질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공공개혁의 방향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