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미도·압구정현대’ 한강뷰 대장 아파트 사이에서도 정책 희비 엇갈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에서 바라본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은마 밑에 철마?

서울 강남구의 소위 ‘한강뷰 대장아파트’들 사이에서 단지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의 도시 개발 정책 희비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건설과 재건축 층수제한 해제 등 ‘지각변동’을 방불케할 정도의 변화가 강남에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는 지하를 지나가는 GTX-C의 노선 변경이 무산될 위기로 비상이 걸리면서 시공 건설사는 물론 정부와도 극한 갈등을 불사하고 있다. GTX-A 노선 설계 때 지역 주민의 민원이 빗발칠 것을 우려해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관통하는 노선이 변경됐던 점과 대조적이다. 은마아파트 건너편의 미도아파트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세운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최고 50층 재건축 구상에 한발짝 가까워졌다. 강남 지역의 대장 아파트들이 정책적 유불리에 따라 들썩이는 모양새다.

정의선 집 찾아간 은마 주민들
원희룡, 주민 반발에 강력 경고

최근 은마아파트 주민들은 GTX-C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을 상대로 공사 반대 의견을 직접 행동으로 옮겨 눈길을 끌고 있다. GTX-C는 경기 북부의 양주와 남부의 수원을 연결하는 85.9㎞ 길이의 노선이다. 서울을 남북으로 가르지르면서 양재역, 삼성역, 왕십리역, 청량리역 등을 지나간다. 이 가운데 삼성역∼양재역 구간에서 은마아파트 지하를 약 50m 관통해 지난해부터 주민 반발이 불거졌다.

해당 구간에는 지하 깊숙이 터널을 뚫는 TBM 공법이 사용된다. 주민들은 준공 후 40년 지난 구축 아파트인 단지 성격상, 지반 침하 등 손상이 우려된다며 노선의 우회를 요구하고 있다. 은마 재건축추진위(추진위) 등은 지난 12일부터 현대건설의 오너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파트 건물 외벽에는 영정 사진 프레임에 ‘이태원 참사사고 은마에서 또 터진다. 현대그룹 명심해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결국 현대건설은 추진위와 협상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해 “GTX-C 노선 추가 우회안을 정부에 제출하지 않겠다”고 추진위에 통보했다. 원래 현대건설은 해당 공사 구간은 지하 60m에서 공사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주민 반대가 거세지자 우회안 제출을 검토했던 것인데, 정 회장 자택으로 항의 방문이 이어지자 없던 일로 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C 은마아파트 간담회에 참석해 은마아파트 주민대표들에게 GTX-C 공법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수도권광역급행철도 GTX-C 은마아파트 간담회에 참석해 은마아파트 주민대표들에게 GTX-C 공법의 안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GTX-C노선은 지난 3월 시공에 들어가 2028년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주민 반대가 계속 이어질 경우 순조로운 사업 진행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급기야 정치권에서도 진화에 나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오후 강남구민회관에서 GTX-C 노선과 관련해 은마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근거 없는 주장으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면 사법 조치를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원 장관은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나 주민들을 선동하는 식으로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고 방해하는 행위가 계속된다면 행정조사라든지, 사법 조치도 할 것”이라며 “특히 한 세대의 1만분의 1밖에 안 되는 지분을 가진 분이 앞장서 국책사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 공금을 동원한 불법적 행동을 하고 있는 데 대해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사자인 추진위 등은 이날 현장에 없었다.

GTX 리스크, 압구정은 피해갔다
35층 족쇄 풀린 미도아파트 50층까지

서울에서 집값이 제일 비싼 지역인 강남구의 대표 단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도 매매가 하락 사례가 등장했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압구정 현대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11일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본 압구정 현대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은마아파트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정부의 덕을 톡톡히 본 곳도 있다. GTX-A를 설계하던 2018년 당시 정부는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주민 반대 여론을 의식해 노선을 변경했다.

당초 GTX-A노선은 삼성역~서울역 구간에서 은마와 마찬가지로 현대아파트 밑을 가로지르는 설계였지만 검토 후 계획안을 수정해 단지 옆 올림픽대로로 우회하도록 바꿨다. 예비타당성조사안에서 6㎞ 650m였던 해당 노선의 길이는 변경된 설계를 반영한 기본계획안으로 넘어오면서 6㎞ 900m로 연장됐다.

국토부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에서 검토결과 “예타안은 서울역과 종점을 잇는 최단거리 노선이나 압구정 현대아파트 직하부 통과로 사유지 저촉이 다수 발생하여 집단 민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타안의 압구정동 주택단지 우회통과계획에 따라 노선 연장이 250m 증가하나, 올림픽대교 하부 활용으로 압구정 현대아파트 및 대단위주택단지 저촉을 최소화하고 한남재정비촉진지구 접촉을 최소화해 민원 측면에서 유리한 기본계획안 선정”이라고 적었다.

지난 1976년 ‘개발기본계획’ 제도를 바탕으로 지정된 압구정아파트지구는 해당 지역이 ‘지구단위계획’ 방식으로 바뀌면서 단계적으로 축소 및 폐지 수순을 밟게 될 예정이다. 서울시는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지구의 규모를 기존 115만1188㎡에서 91만8896㎡로 23만2292㎡ 축소하는 변경안을 이달 초 공개했다. 이에 따라 현대아파트 등 단지들은 재건축이 이전보다 수월한 지구단위계획으로 전환하게 된다. 

은마 건너편의 미도아파트도 신속통합기획에 참여해 최근 규제 완화의 물꼬를 텄다. 은마아파트 건너편에 위치한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는 지난 21일 서울시가 신속통합기획안을 확정하면서 최고 50층으로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약속했던 한강변 ‘35층 높이 제한’ 규제 폐지가 처음 적용되는 단지가 될 전망이다.

1983년 준공된 미도아파트는 면적 19만 5080㎡에 2436세대를 갖춘 대단지 아파트다.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대치역, 양재천과 맞닿아 있어 한때 대치동의 ‘대장’ 아파트로 불렸다. 은마는 현행법대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반면 미도아파트는 신속통합기획에 동참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속도를 내게 됐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