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 시내 시중은행 영업점에 대출금리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21일 서울 시내 시중은행 영업점에 대출금리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막기 위한 양적완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화석연료 감축 생산과 배터리 등 원자재 가격 상승, 기후변화와 전쟁으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업급여나 재난지원금을 시중에 풀면서 소비와 투자가 늘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에는 다른 추가적인 요인이 있다. 우선 조 바이든 정부 들어서 외국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우량 산업 일자리를 쓸어 가면서 경기도 좋아지고 일자리도 풍부해졌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어려웠던 서비스업이 다시 회복하면서 인력 채용도 늘었다. 2008년 이후 고정금리 대출이 보편화되면서 가계가 예전보다 금리 변동에 덜 취약해졌다. 당시에는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은 40%가 변동금리였지만, 최근에는 10% 미만으로 줄었다. 현재 주택담보 대출은 가계 부채의 70% 정도다. 변동금리 비율이 줄어 가계의 현금 사용에 여유가 생겼다. 2020년 이후 미국 정부가 5조 달러 이상의 재정 부양책을 시행하면서 현금이 풍부해졌는데 이중 상당 부분이 아직 사용되지 않고 가계를 지탱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금리를 올려도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다. 미국의 올 1월 물가 상승률은 기대치를 넘은 6.4%다. 이로 인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최고 5.25%가 아닌 5.50% 이상까지도 올릴 수가 있다고 한다. 그래도 미국 인플레이션은 당분간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작년의 '킹달러' 현상 같은 반복은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강하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2분기 중에 해소되고, 주요국 신용 스프레드 안정세, 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의 경기 반등 가시화 등으로 달러화가 다시 약세로 전환할 전망이다. 미국도 좋아진 경기를 바탕으로 수출을 늘리려면 강달러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일본은 2013년 이후 제로에 가까운 금리(최근 ±0.5%)임에도 관광객과 수출이 늘고, 일본 자산에 투자하는 해외자본이 오히려 늘고 있다. 오히려 최근 저평가되는 엔화와 인플레이션을 반기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이 없던 일본은 인플레이션 목표가 2%인데 작년과 올 1월 41년 만에 4% 초반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일본 증권가에 따르면 당분간 물가가 2% 이상 유지된다면 일본도 금리를 올리겠지만, 국채 상환이자 부담이 커서 최대 1% 이상은 못 올린다. 일본 금리가 인상되면 엔화대비 미국 달러 가치는 하락한다. 이는 달러대비 원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원화가치 저평가 문제를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강하다. 일본의 인플레이션과 금리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작년 1.1% 성장에 이어, 올해도 1%대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 작년 2.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9%를 밑도는 상태에서 올해 1.6% 성장(한국은행)을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주요국은 경기 약화 흐름이 완만해지는 데 반해, 한국경제만 하방 위험이 커져 1%대 초반으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한다.

국내 가계와 기업의 연체율은 높은 시장 금리로 인해 계속 늘어나고 있다. 4대 은행의 가계 신규 연체율 평균은 작년 6월 0.04% 수준에서 올 1월 0.07%까지 올랐다. 기업 신규 연체율 평균도 작년 9월 0.06%에서 올 1월 0.10%까지 높아졌다.

정부는 금융권에 기준금리보다 지나치게 높은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압박을 하여 금리가 약간은 내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경제가 의식할 수준에는 크게 못 미쳐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금리는 평균 5.47%다. 그러나 가계대출은 2021년 말 3.66%보다 절반이나 올라 월 200만원 이자가 300만원이 되었다. 이마저도 신규대출 위주로 적용된다. 이자 부담이 1.5배 커지면서 가계 소비지출은 그만큼 줄었다. 심지어 저축은행 대출금리는 최근 연 17.14%다.

고금리로 경기가 침체되어 세수가 줄고 있다. 올해 1월 국세 수입은 42조 9000억원으로 작년보다 6조 8000억원이 줄어 역대 최대폭 감소다. 부가가치세와 부동산·주식시장 침체로 인한 자산 세수의 감소가 대부분이다.

무역 적자도 작년 3월부터 12개월째 연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2월까지 두 달 동안의 무역 적자가 작년 전체의 38%에 달한다. 이대로 가면 올해 무역 적자는 작년의 두 배를 넘어선다. 1995년 1월~1997년 5월 연속 적자를 낸 이후 25년여 만에 처음이다.

OECD에 의하면 작년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중은 한국이 72.3%로 미국 31.4%, 일본 37.5%의 두 배가 넘는다. 원화가치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수출이 감소한 것은 지나친 고금리 영향이 크다. 중·소 수출 기업에 대해 낮은 금리의 정책지원을 당장 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글로벌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대되고 있다. 주요국 경제의 경기둔화 완화 기대와 신흥국의 안정된 성장세에 힘입어 회복세로 전환되는 시기가 당겨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친 시장 금리 때문에 가계와 기업이 망가지면서 회복세에서 멀어지는 분위기다.

우리는 고용상황이 좋은 미국 금리정책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우리의 고금리 정책 이유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미국과의 금리 차를 좁혀 해외자본 유출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고금리는 인플레이션도 못 잡으면서 경제를 어렵게 해 수출이 무너지고 한계기업 속출, 대출 부실이 증가하고 있다. 막연히 미국 금리 인상만 좇다보면 국민경제의 상당 분야가 파산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당분간 받아들이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금리정책으로 가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대처하기 힘든 대외적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지나친 고금리로 인플레이션을 당장 잡으려다 보면 금융 시스템이 망가진다. 물가는 올랐다가 멈추고 다시 오르는 현상이 1970년대처럼 반복될 것이다.

다른 인플레이션 요인은 해소된다고 해도 에너지만큼은 해결이 어렵다. 탄소제로를 위해 친환경과 화석연료가 겹치는 현 에너지 위기는 역사적으로 가장 심각하고 아직 해답도 없다.

정부·가계·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들은 지나친 위기의식으로 자기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기의식을 조장하여 고수익을 챙기려는 주체들을 통제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기준금리 동결과 지나친 시장 금리를 내리는 노력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미흡하다.

고금리로 피폐해가는 가계와 기업이 살아나는 수준까지 시장 금리를 내려야 한다. 인플레이션도 잡고 미국과의 금리차를 좁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은 인플레이션보다 경제라는 한 마리 토끼라도 잡아야 한다. 결국 경제가 살아야 모든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다.

●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프로필

▲한양대 도시대학원 겸임교수 ▲도시계획가협회 부회장 ▲도시계획가협회 부회장 ▲건설주택포럼 명예회장 ▲ULI 코리아 명예회장 ▲한국도시부동산학회 부회장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weeklyhk@hankooki.com